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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영 Nov 06. 2023

주름살(Wrinkles)

주름살은 그 사람의 경험이다.

주름살(2005)

오늘 맘껏 살아가지 못한 이들의 넋두리가 오가는 고깃집

하루 살아남은 것에 대한 소소한 건배 소리가,

역한 고기 내음과 얽혀서 환풍기 너머로 사라진다.

얼굴의 깊은 선이 어색하게 접히고,

마지막 고깃덩이가 목구멍을 넘어간다.

만남의 끝은 허무하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그 끝에 생각이 걸린다.

종이학을 접을 때도

종이배를 접을 때도,

우리는 선부터 만들지 않았는가.

지나간 청춘 앞에 더 진하게 웃어 본다.

그제야, 오늘이 훑고 지나간 선들이

오롯이 자리 잡는다.




고등학교 시절, 문학 동호회에 참여했었다.

교지에도 이름 석자 걸기도 했었고 나름 '글쓰기'에 진지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 후 처음으로 썼던 글이 '주름살'이다. 

당시를 회고하자면 80년대 배경의 드라마에서 중년 친구들끼리 삼겹살을 구워 먹는 장면을 봤다.

짙어진 주름살이 울그락불그락 움직이는 모습이 기괴하게 느껴졌다. 내게 마치 말을 거는 느낌이랄까.

20대 초반 세상 때 묻음 없던 시절, 뭘 안다고 힘든 척했나 싶기도 하다.


돌이켜 보면 미디어를 통해 비친 부모님 세대에 대한 이해를 표현하고자 했었는지 모르겠다.

나무가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면 나이테 한 줄을 만들어 내듯.

우리네 주름살은 그간의 고단함을 상징하는 선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 같다.

사실 벌써 20년 가까이 지난 터라 그때의 감정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한번 그때의 글을 새롭게 해석해보고자 한다.


'라테는~' 꼰대 부장님의 일장연설 시작이다.

그렇다. '세대'란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나'란 존재의 영험함이 지금 시대에는 진부함일 수 있다.

벌써 마케팅 업계에서는 제네레이션 제트를 넘어서 알파세대를 공략해야 한다고 한다.

20대 초반 파릇한 아이들을 공략해야 하는 주름살 깊어지는 아저씨는 고민이다.


주름살이 하나씩 늘어가는 지금,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꼰대인지는 모르겠으나, 주름살의 방향과 깊이 그리고 개수가 표현하는 것은

한 사람의 경험이지 않을까.


손금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 윤곽이란 것이 있다

때문에 운명을 점칠 때 손금을 보기도 하지만,

주름살이 그렇지 않다. 삶을 살아가며,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생물학적으로는 피부 노화에 따른 탄력성을 잃게 되면 생기는 것이지만,

모든 사람의 주름살이 모두 같지 않은 것도 그 사람만의 경험이 녹아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삶 속에서 '점'을 만든다.

점은 하나 둘 이어져 '선'이 된다.

'선'은 그리고 우리를 만든다. 우리를 이야기하고 노래한다.


'인상(人相)'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얼굴에 책임져야 한다고 한다.

피부과에서 빳빳하게 얼굴을 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의 경험에 따라 얼굴의 상이 바뀌기 때문에 인생의 경험을 올곧게 하라는 뜻이다.


주름살은 인상을 결정한다.

인상은 그 사람을 대변한다.

주름살은 그 사람의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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