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터뷰8. 언젠가 빠지 사장이 될 직장인 이야기
필자의 친구 [하쿠나마타타]님과의 업터뷰. MBTI EEEE의 남성. 끼가 넘치는 인간 스폰지밥.
이 글은 인터뷰 진행 후 작가의 서랍에 묻혀 있다가 1년 후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아래 내용은 2023년의 하쿠나마타타가 답변한 셈이다.
첫 직장은 뭐였어?
호텔이었어. 난 대학 졸업 전에 취직한 케이스야. 사실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를 한 건 아니었는데, 아버지가 근무하셨던 호텔에서 사람을 뽑는다는 걸 알게 돼서 지원했어.
전공이랑은 크게 상관이 없네. 왜 호텔을 가기로 결심했어?
내 꿈이 나중에 빠지를 운영하는 거라서 먼저 레저 쪽으로 지식을 쌓아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리고 아버지가 일했던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도 큰 동기부여가 됐고. 나름 중견기업이라 일하는 사람이 엄청 많았는데, 신입교육 때 상도 받았고 일하면서 인정도 받았어. 일은 하우스키핑(객실 청소·관리 담당)도 하고, 컨시어지(고객 서비스 담당)도 했어.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하나 있었어.
무슨 사건?
그때 기숙사에 살았는데, 3층이 남자 숙소고 2층이 여자 숙소였어. 어느 날 술을 새벽 2시반까지 먹고는 층수를 헷갈려서 내 방인줄 알고 여자애들 방문을 두드린거야. 그 일로 징계를 받게 됐지. 엄청난 감봉이 있다거나, 승진에 타격을 준 건 아니었는데 내 인생에서 너무 큰 실수를 했다는 생각을 했어. 술에 대해서 정신을 차려야겠다 결심한 계기였지. 그 일이 있고 정신 차리고 열심히 몇 년을 더 다녔고, 보람 있었던 일도 많았어. 목표가 있었는데, 아버지보다 더 높은 직급까지 가보자는 거였어.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네. 왜 그만뒀어?
코로나가 터져버린거지. 일을 많이 시키고 돈을 적게 주는 것도 아니고, 일을 아예 안 시키더라고. 돈을 못 버니까 여기서는 내 고정지출을 감당할 수 없겠구나 싶어서 빠르게 취직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았어.
어떤 일을 찾았어?
다음은 영업직을 선택했지. 내가 워낙 활동적이라 영업직이 나랑 잘 맞을 거라 생각했거든. 그래서 보험영업에 도전했어. 처음 두세 달까지만 해도 엄청 잘 됐는데 그 이후로는 잘 안되더라고.
보험영업은 99% 잘 하더라도 1%를 못하면 계약이 안 되는 건데, 내가 그 1%가 없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지.
그래서 그만둔 거야?
거기에 더해, 친구들을 만나는 데도 영업을 해야할 것 같은 압박감이 생기는 거야. 놀 때 마음 편히 놀지도 못하는데 이 일을 계속할 필요가 있을까? 싶더라고. 그 시기에 안 좋은 일들이 겹쳤는데, 어느 날 아는 분이 점심 먹자고 찾아와서는 같이 일해볼 생각 없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이직한 게 지금 회사야.
지금 하는 일에 대해 설명해 줘.
나는 지금 행사대행사에서 일을 하고 있어. 기관이나 기업에서 여러 행사를 하는데 행사에 대한 전문 지식은 없으니까 그걸 대신해 주는 게 우리 회사 같은 행사대행사야. 우리는 국가기념식이나, 농업인, 전통시장 행사처럼 공공기관에서 주최하는 행사의 입찰을 따와서 운영하는 편이야.
지금 일에 대해서는 얼마나 만족해?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이 좋으면 웬만한 일은 다 잘 할 수 있거든. (역시 스폰지밥) 생각해보면 나, 대학교 때 취업 상담해 주는 곳에 가서도 “사람 좋은데 가고 싶어요” 그랬어. 지금은 같이 일하는 사수가 좋아서 전반적으로 크게 불만 없이 다니고 있어.
사람이 중요하구나. 그 외에도 회사를 선택할 때 중요한 게 있어?
작은 거부터 얘기하면 화장실이 깨끗했으면 좋겠고, 회사에 딱 들어오면 사무적인 느낌이 났으면 좋겠어. 일이 체계적으로 돌아가야 회사에서 일하는 느낌이 드는데 사실 지금 회사가 그렇지는 않긴 해. 갑자기 야근시키고, 금요일에 ‘주말 출근 가능하냐’고 물어봐. 하라면 또 웃으면서 하지. 할 수는 있는데..하기는 싫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겠네. 일하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어?
작년에 트래킹 행사를 했어. 트래킹 행사는 참여한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으니까 보험에 가입하거든? 근데 실제로 한 참가자가 부상을 당한거야. 사소한 이유였어. 걷다가 보도블록 잘못 밟아서 넘어졌대. 보험처리를 해야 하는데, 그 분이 해외에 있어 서류를 계속 안 보내는 거야. 기간이 지나면 보험금 못 받는단 말이야. 그래서 알람 맞춰놓고 재촉해서 알려드리고 해서 결국 받으셨어.
크리스마스 전쯤, 그분이 장문의 편지와 3만원 짜리 기프티콘을 보내주신거야. 그걸 받고 나니 아, 이런 맛으로도 일할 수 있구나 하는 걸 느꼈어.
두 달 전쯤 친구가 ‘너는 이 일이 보람 있어?’ 라고 물었어. 그때 대가리 한 대 맞은 거 같더라. 이 일을 보람 있어서 하나? 처음 회사 들어갔을 때는 정신없으니까 빨리 시간이 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쳐냈지. 여유가 생기니까 안 보이는게 보여. 이 일을 왜 했었지? 내가 얻는게 뭐지? 가끔 월급이 밀리기 까지 하는데.. 요새 문득 생각해. 행사가 끝나면 무슨 느낌인가. 근데 방금 말한 썰 말고는 보람이 없네.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럼 지금은 이직이 고민되겠네?
이직보다는 포트폴리오를 제대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
우리는 대부분 겨울에 제안서를 쓰는데, 그때 시간이 여유가 있어서 지금까지 해온 일을 정리해 보려고 해.
내가 제안서를 쓰면서 느꼈던 벽이 있는데, 체급 차이는 무시할 수 없다는 거야. 방송사랑 경쟁하면 100% 져. 큰 회사는 제안서 쓰는 팀도, 운영하는 팀도 우리보다 더 전문적이잖아. 회사 재정도 차이 나고.. 그래서 한 1~2년 더 다녀 보다가 생각이 변하지 않으면 더 큰 행사대행사로 이력서를 넣어볼 생각이야.
또 행사대행사네?
왜냐면 아직 보람을 못 찾았으니까. 느껴보고 싶거든. 지금 당장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을 거 같고, 이 일을 보다 더 전문적으로 했을 때 보람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해. 지금은 회사가 중소기업이다 보니 일을 빨리 배우는 건 좋지만 주먹구구식으로 하는 게 많거든.
10년 뒤의 너는 어떤 모습일 것 같아?
이 일을 계속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진 않아. 나는 매일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과 못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는데, 예를 들어 음식과 관련된 일은 못 할 거 같아. 의식주에 관련된 일은 영업이 빠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영업을 잘 못하거든. 대신에 주어진 업무를 임기응변으로 쳐내는게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어서 레저나 문화쪽 일을 계속할 거 같아.
근데, 왜 최종 꿈이 빠지야?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서 빠지에 놀러갔거든? 거기에 제트보트가 있었는데 운영시간이 지나서 우리는 못 탔어. 그때 갑자기 제트보트에 시동이 걸리는 거야. 그러더니 손흥민이 오는거야. 손흥민 때문에 그걸 운영한 거지. 사장님이 우리를 보고 찡긋하면서 브이를 날렸는데 그게 존나 멋있다고 생각했어. 빠지를 움직이는 권력을 갖고 싶은데, 내가 손흥민이 되는 것보다는 빠지사장이 되는게 아무래도 빠를테니까.
그리고, 꼭 빠지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놀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싶어. 나는 내 집에 사람 초대하는거 좋아하거든? 일로서도 사람들이 내 공간에 와서 재밌게 놀다 가면 보람을 느낄 거 같아.
초등학교 때 꿈 기억나?
장래희망 같은거 발표하면 항상 대통령이라고 했던거 같아. 견장 차는거 좋아하고 반장, 회장 이런거 좋아했거든. 맨날 앞에 서다 보니 대통령 하겠다는 생각이 컸어.
최근에 민원 24에서 생기부 볼 수 있는거 알지? 생기부 보니까 로봇공학자라고 해놨더라. 수학을 잘하긴 했어.
진로를 고민중인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 줘.
나는 졸업하기 전부터 일을 쉼 없이 해왔거든. 남들이 일 쉬는거 보면 부럽고 용감해 보여. 나는 쉬어본 적이 없으니까 방법이나 장점은 잘 모르겠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뭘 모르겠으면 뭐라도 했으면 좋겠어. 알바를 하든, 생산적인 활동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걸 찾는 거지. 뭘 모르겠으면 일단 뭘 해라! 뭐가 됐든 눈에 보이지 않을까?
[그때 그 순간]
나름 갤러리를 뒤져봤는데 결과보고용 사진뿐이라..행사 때 만난 고양이라도.
-하쿠나마타타-
위 내용은 2023년 말 인터뷰로,
그 후 1년이 지났다.
이제야 발행하기 위해 글을 정리하며 [하쿠나마타타]에게 보내주자, 아래와 같은 톡이 돌아왔다.
카카오톡으로 나눈 추가 인터뷰(?)로 업터뷰 8편을 마무리한다.
벌써 1년이 지났네. 인터뷰 때 말한 대로 포트폴리오는 정리했어?
아니. 그때랑 좀 달라졌어. 지금 회사에서 배울게 더 생겼다는걸 깨달았지.
어떻게 달라졌는데?
1년 전의 난 우물 안의 개구리였어. 행사의 ‘ㅎ’ 정도만 알고 다른 회사 가겠다고 배부른 소리한 거 같아. 알면 알수록 내가 알아야 할 것들이 많더라고.
전까지는 위에서 시키는 일만 앵무새처럼 따라 갔던 것 같아. 이제는 내가 하고 싶고 잘할 것 같은 행사를 찾고 싶어.
그리고, 수익을 많이 내서 몸값을 더 올리고 싶어. 내가 혼자서 얼마큼의 매출을 낼 수 있고, 회사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지를 파악해서 내 위치도 알고 내 밥그릇도 챙길 수 있을 때쯤 이직할 것 같아.
이번 한 해 동안 혼자서 a부터 z까지 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많이 깨달았기 때문에 지금 회사에서 더 갈고 닦일 예정입니다!
아, 칼퇴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