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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업터뷰

직업은 결국 고기서 고기

업터뷰3. 진지하고 진중한데 정전된 사람 이야기

by 섬감자

필자의 학교 선배이자 현재 고깃집을 운영하는 [딥빡박선생] 님과의 업터뷰. 딥빡박선생은 주변인들이 혀를 내두를 직장 내 갑질의 피해자다. 온갖 억까를 당해왔지만 잘 자라준(?) 인물이다. 그에게 들은 여러 에피소드 중 매운맛 '중' 단계로 조정한 썰을 업터뷰에 담았다.


첫 직업과 그 직업을 선택한 이유를 알려줘.

첫 번째 직업은 제약회사의 영업 사원이었어. 우리 과에 제약 영업을 하는 선배들이 많았거든. 학과에서 취업설명회를 했는데, 돈 많이 버는 영업 사원 선배들이 와서 핑크빛 미래를 보여주는 거야. 그때 난 돈이 우선이어서 아무리 힘들어도 돈이면 다 될 거라 생각했어. 방학 동안 스터디도 하고, 기업 분석도 하고 그게 잘 돼서 이름있는 제약회사에 들어갔지.

또, 가족의 지인중에 의사가 많아 우리 지역에서 일하게 되면 유리한 조건일 거라는 생각도 있었어.


첫 회사는 어땠어?

거래처 사람들 부탁 들어주는 게 일상이었지. 나이 지긋하신 선생님(50대, 남성)이 심심하다고 영화 보러 가자고 해서(동성이다) 함께 범블비 보고 밤 11시에 퇴근한다거나, 퇴근 후 양복 입은 채로 농사를 도와드린다거나 하는 일들 말이야.

그때 우리 회사에 선·후배 위계질서를 중시하고 술을 강요하는 문화가 있었어. 워크숍에 갔는데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 대 맞은 일도 있었다? 또, 일반적으로 그런 건 아니겠지만 유흥을 즐기는 문화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어. 나는 그런 게 안 맞더라고. 내가 가고싶었던 지역도 배정이 안 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

실수가 잦아지고, 그러다 보니 위축됐어. 선배는 내 업무를 확인하겠다면서 통화목록, 카톡 대화 내용, 녹음기록을 다 보내라고 했어. 퇴근하면 그때부터 작업해서 내가 오늘 뭘 했는지 서류로 보고하고, 따로 전화도 하는 게 하나의 일과여서 정말 쉴 틈이 없었지.

어느 날은 점심시간에 알밥을 시켜놓고 먹으려다가 선배한테 전화가 와서는 막 혼나다가 “나중에 진짜 한대 쳐맞는다”는 소리까지 들었고, 결국 한 숟가락도 못 먹고 그대로 남기고 가니까 주변에서도 엄청 안쓰러워했던 기억이 나. 그런 식으로 점점 선을 넘는 게 느껴져서 그만뒀어.


다시 취직하기 싫었겠다.

놀면뭐하니? 첫 번째 직장에서 돈이 우선순위가 아니란 걸 깨달았거든. 두 번째 직장은 본격적인 이직 전 중간 단계로 생각하고 간 거야. 아예 아무것도 안 하기보다는 돈이라도 벌면서 준비하자는 마음?

두 번째 직업은 생산/연구직이었는데, 생산 보조로 일용직 아르바이트 주임님들(a.k.a. 어머님들)이 계셨어. 그분들 사이에 파가 생겨서 새로운 생산 보조가 들어오면 텃세를 부린다지, 그래서 사람 관계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았어. 정직원vs생산 보조 로도 파가 나뉘어 있었고, 생산 보조 내에서도 파가 있었지. 텃세 때문에 그만두는 분도 있었고, 싸우는 일도 있었고... 피곤했지만 일단 퇴직금을 위해 1년만 다니자는 생각으로 버텼고, 퇴직금 받고 깔끔하게 그만뒀어!


그래서 다음은 어디로 갔어?

아버지가 원래 고깃집을 하셨는데, 어느 날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평소랑 다르게 이상하셔서 검사를 받아보니 몸이 좋지 않아서 가게를 계속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 그런 와중에 나도 무슨 일을 할지 고민, 아버지도 가게를 어떡할지 고민인 거지. 평생 해온 가게를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가족회의처럼 얘기를 나눴고, 어차피 나도 뭐할지도 몰랐던 상황에서 그러면 내가 맡아보자는 결심이 섰어.

효심만으로 그런 건 아니고, 실질적으로 얼마의 매출을 벌 수 있을까를 계산해보고 전 회사나 앞으로 생각하는 회사의 연봉보다 괜찮은 수준이라는 확신이 들었어. 또, 평생직장을 찾아야 할 나이(딥빡박선생의 주관적인 생각임을 밝힙니다)인데 어정쩡하게 이직하기보다는 정착해야겠다 싶었어. 그래서 가게를 맡게 됐지.


회사 다닐 때랑 많이 다른 삶을 살 것 같네.

어떤 얘기부터 들려줘야 하나? 썰들이 참 많은데 말이야.

자잘한 물품이 없어지는 경우도 많고. 옛날엔 김치도둑이 든 적도 있어. 우리가 고깃집인거 알지?

저번에는 동네 일대가 다 정전이 됐어. 모든 기구가 다 정전되니까 확 조용해지면서 동네가 깜깜해졌어. 내 눈앞도 캄캄해졌지. 손님들이 불편해하실 거 아냐? 처음엔 우왕좌왕했는데, 갑자기 손님들이 분위기 있다면서 핸드폰 라이트 켜고 마저 드시는 거야. 연기가 안 빠져서 캑캑-하면서도 즐겨주시더라고. 색다른 경험이었어. 우리 가게가 오래됐잖아. 25년 전쯤에 비슷하게 정전된 적이 있어서 그때 양초를 구비해 뒀었거든. 25년 만에 그걸 써먹었지. (이론상 2048년에 또 쓰일 예정)

또, 한 번은 어떤 손님이 계산할 때 돼서 고기가 별로라고 트집 잡으면서 돈을 못 내겠다는 거야. 우리가 고기만큼은 정말 청렴결백하고 자신 있거든. 그래서 “그냥 가시고, 다신 오지 말라”고 했어. 그런데 일주일 뒤에 똑같은 레퍼토리를 가져오는 사람이 있더라고. 하하.


지금의 일은 어때?

생각보다 할 게 많아서 힘들지만, 살면서 했던 일 중에 제일 만족하고 있어. ‘중간에 하다 안되면 다시 회사 생활해야지’라는 마음이었으면 시작도 안 했을 거야. 내 사업이고 가게가 잘돼야 내가 잘되는 거잖아? 요즘 들어 느끼는 건, 내 직장의 우선순위는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곳이었던 것 같아. 소속감을 가지고 충성해서 온전히 쏟아부을 수 있는 직장이 필요했던 거지. 단순히 ‘꿀’ 빨면서 돈 벌기보단 성취감을 느끼면서 돈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걸 원한 거였어. 힘들더라도 보람이 있는 일 말이야.


마지막으로, 진로를 고민 중인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한 마디는?

어떤 일을 할지 고민과 계획은 필수지만 진로가 딱 한 가지로 정해진 사람이 아니라면 계획에만 목숨 걸지 마세요. 강박을 버리면 시야는 넓어집니다. 꼭 그래야만 하는 사람은 없어요. (세 마디인데..)




[그때 그순간]

정전됐던 그날의 분위기(?) 있던 가게. 사진은 손님 제공

-딥빡박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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