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터뷰4 (하). 누구나 그럴듯한 계획이 있다. 세상에 처맞기 전까지는.
https://brunch.co.kr/@potato/8 (상)편과 이어집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해줘.
지금은 제약회사에서 영업직으로 일하고 있어. 병원은 아니고, 약국 영업이라고 보면 돼. 쉽게 말해 약국들 돌아다니면서 우리 회사 제품 조금 더 써보라고 추천하는 일이지. 약국 영업이 영업 직군 내에서는 꽤 힘든 편이라고들 하는데, 지금 회사는 좋은 편이야. 기본적으로 잘 나가는 상품들이 있잖아. 영업사원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약국에서 박카스나 타이레놀 같은 걸 다 빼버리지는 않을 거 아냐?
드디어 이번 회사는 오래 다닐 각이 보이는 건가?
그건 아닌 것 같아. (역시..) 전통이 있는 회사라 그런지 사상이 낡은 분들이 조금 있어. 근데 그게 전부는 아니야. 따끈따끈한 오늘의 결심인데, 기술이나 전문성이 필요한 일을 해야겠어.
요즘 젊은 약사들은 인터넷으로도 주문을 많이 하거든? 회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영업사원을 둘 이유가 점점 없어질 것 아니야.
사실, 일이라는 게 다 힘들잖아. 수험생활할 때는 대학 입학을 보고 달리다가, 대학가면 수험생활이 끝나지. 군대가면 전역을 보고 달리고. 취준할 땐 취업을 보고 달리잖아. 취업을 하고 나니까 보고 달려갈 게 없어. 죽어야 끝나. 난 그러한 사실이 몹시 숨이 막힌단 말이야? 30년동안 이짓거리를 해야 한다고?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그런데 기간을 정해놓고 일을 하면 회사에서 누가 억까를 해도 ‘1년 있으면 그만둘 거니까~’ 하는 생각으로 버티기도 좋지. (이직이 천성) 근데 지금 하는 일은 나이를 먹어서까지 여러 회사를 옮겨 다니면서 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
퇴사한 회사 중 계속 다녀볼걸 하고 후회되는 회사도 있어?
수입차 딜러도 해봤었는데, 그건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사실 내가 지금껏 해왔던 영업이랑 지금 하고 있는 영업이랑 직종은 같은 영업이지만 성격이 좀 다르거든. 전에 해왔던 영업들은 뭐 화려한 언변이라든지 멀끔한 외모라든지 이런 것들이 좀 중요하고 세상 사람 모두가 내 고객이 될 수 있는데, 지금 하는 일들은 고객들이 딱 정해져 있고, 화려한 언변이나 기술보다는 꾸준하게 매일 방문해서 얼굴도장 찍는 성실성이 더 필요하더라고. 사실 나라는 인간이 성실성이랑은 거리가 좀 멀다 보니...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데 전자의 경우 기본급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인센티브로 먹고사는 구조다 보니 어느 정도의 자본금이 필요하더라고. 난 그게 없어서 포기했지.
전 직장 중 잘 나왔다! 하는 곳은?
한 회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줄게. 원래 업무는 아니었지만, 코로나가 심할 때 코로나 구호 키트를 포장/배송하는 업무를 했었어. 구호 키트? 코로나 확진돼서 자가격리 중인 사람들한테 시에서 보내주는 건데, 김, 햇반, 장조림 같은 레토르트 식품들을 담은 박스였어.
회사에서 배송하라는 업무가 내려와서 하긴 하는데, 배송트럭도 따로 없어서 그냥 직원들 개인차로 배송을 하는거야. 아침에 출근하면 “오늘은 확진자 몇 명 있고-”하면서 주소 쭉 받아서 포장하고 싣고 출발하는 거지. 포장할 만한 공간도 따로 없어서 옥상에서 눈 맞아가면서 포장한 적도 있어. 배송지가 개인 주택이면 양반이야. 대문 앞에 두고 사진 찍고 벨 누르면 되거든. 근데 아파트 같은 경우엔 현관 출입 비밀번호를 모르잖아? 인터폰에서 호수 찍어서 호출한 다음에 “코로나 구호물품 배송왔습니다”라고 얘기를 해. 열어줘서 위로 올라가면 이 사람들이 자꾸 문 열고 나오는 거야! 그럼 어어 들어가세요!! 하면서 상자 놓고 가고 그랬지.
그러던 어느 날.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던 때였어. 자취방 가스비 고지서를 받았는데 가스비가 너무 많이 나온 걸 보고 그만 기절해 버렸어. 보일러 꺼버리고 기절했다가 다음 날 정신을 차렸는데, 감기 기운이 있는 거야. 보일러를 끄고 자서 그렇구낭 헤헷-★ 하고 뜨끈한 점심을 배달시켜 먹으려고 찾아보다가, 마라탕을 먹어보자 싶었어. 동네에서 처음으로 내돈내산 마라탕을 시켰거든? 근데 너무 맛이 없는 거야. “아, 역시 남들이랑 먹었던 곳이 맛집이구나, 여긴 니맛도 내맛도 아니네, 정말 문제구먼”했는데 문제가 있는 건 내 쪽이었지! 코로나 검사 키트에 보이는 선명한 두줄..ㅋㅋ
그래, 업무가 맨날 확진자 집 찾아다니는 거였는데 코로나 안 걸리는 게 문제 있는 거 아냐? 확진자 동선 파악해서 공개하던 옛날처럼 내 동선도 공개됐으면 정신 나간 놈인 줄 알았을 거야.
근데 대박인 건, 회사 업무하다가 걸린건데 내 연차를 사용하라 해서 연차를 모두 소진하고 격리됐지.
직업을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은 뭐야?
직업은 그냥 돈벌이 수단이라고 생각하지만 회사를 고르는 기준은 그래도 어디 가서 “저 땡땡회사 다녀요” 라고 했을 때 한 번에 알아먹었으면 하는 바람이 좀 있지. 구구절절 어떤 회사 다니는데 이런 일을 해요. 회사는 뭐 이런저런 회사고...하면서 얘기하는 게 귀찮기도 하고 좀 사짜 냄새가 나는 거 같아서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 내 처우나 복지 이런 것보다도 남들이 봤을 때 오 그 회사! 하면서 바로 알아먹는 게 참 좋더라고. 그리고 너무 똑같거나 반복되는 지루한 일은 또 내 스타일이 아니야. 하루하루 다르고 재밌게 살아보고 싶은 세상이니까.
앞으로도 영업직으로 일할 계획이야?
언젠가 내가 좋아하거나 재능있는 분야에서 사업을 해보고 싶어. 평생 월급 받으면서 회사생활 하는 건 재미 없으니까. 주위에 사업하는 사람도 없고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다 보니 선택한 게 영업이거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 중에서 페이가 제일 많기도 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고, 근무 시간에 내 개인적인 시간도 유동적으로 쓸 수 있으니까. 자기개발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이랑 대화하는 것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다행스럽게도 성격적으로 영업직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서 참 다행이지.
지금은 내 일을 찾고 싶은데 과연 뭘 해야 할지 고민 중이야. 아버지가 하고 있는 일을 나도 따라 하면서 노하우를 좀 배워볼까 싶기도 한데, “에라모르겠다 도전!” 하고 나오는 건 내가 말한 퇴사 제2원칙에 위배되는 행위거든(업터뷰4 (상)편 참고). 그래서 일단 1~3년 정도 지금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나와서 내 일을 찾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
마지막으로, 진로 고민을 하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줘.
사실 요 며칠 동안 계속 고민한 내용인데... 언제 어떤 일자리를 가져도 평생 할 일을 찾기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현재 취업시장이 어렵고, 목표로 한 회사를 못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좌절할 필요가 없어요. 그 회사도 생각과 다를 수 있고 들어갔더라도 나와야 할 수도 있으니까요.
한 가지 회사나 직업만 보지 말고 여러 가지 일을 해보세요. 그 과정에서 사람도 만나고 배우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이것저것 재면서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도전하세용.
[그때 그순간]
논밭뷰 회사 자랑해 봅니다.
-첫 출근만 백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