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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mja Jan 27. 2023

이맘때쯤 샹그리아 향수병

스페인 샹그리아, S와 스페인 레스토랑





평소 달달한 술을 좋아하진 않지만 샹그리아만은 예외다. 인생이 쓸 때 소주가 당기듯 인생이 달 때는 샹그리아가 생각난다. 만땅으로 취하고 싶지는 않고 약간의 알딸딸함 정도는 필요할 때. 위스키보다는 연하게, 그러면서도 우아하게 오랜 시간 즐기고 싶을 땐 다름아닌 샹그리아가 답이다. 간만에 만난 지인 S와 강남의 한 스페인 레스토랑에서 샹그리아를 주문했다.


하고 많은 달달한 술 중에 왜 하필 샹그리아냐 하면, 스페인의 술이기 때문이다. 나는 스페인이라는 나라를 유독 이상하게 좋아한다. 까따빠싸, 된 발음이 거센 스페인어가 듣기 좋다. 스페인어를 말하는 스페인 사람들의 열정적인 제스처가 보기 좋다. 스페인에서 나는 올리브, 하몽, 맥주, 와인이 좋다. 변덕이 심한 나로선 이것저것 조금씩 맛볼 수 있는 타파스 안주도 취향에 딱이다. 여름이면 과일 음료처럼 술술 들어가는 샹그리아가 좋다. 언젠가 스페인에서 샹그리아를 주문하리라는 소박한 꿈 때문에 한동안 스페인어를 배운 적이 있다면, 나의 스페인에 대한 애정을 조금은 증명할 수 있을란가 모르겠다. 





20대 초반에 갔던 스페인 여행의 기억 또한 무한으로 되새김 추억 중이다. 당시 스페인에 사는 친구 L네 집으로 놀러 간 적이 있었는데, L은 바르셀로나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지로나(Girona)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 때마침 꽃 축제가 열리는 시즌이라, 우리는온 동네가 꽃으로 둘러싸인 계절을 함께 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타파스에 과감히 도전하고, 시원달달한 샹그리아를 양껏 마시며. 낮부터 저녁까지 골목을 걷다가 다리가 아파오면 카페에 들렀다가.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고 재미졌던지, 그리 중하지도 않은 시시콜콜한 이야기의 연속이었겠지만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람과 햇볕이 참 좋았다. 그해 초여름의 기억들이다.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날이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샹그리아가 당긴다. 창이 큼지막한 어느 골목 노천식당에서 이것저것 타파스와 샹그리아를 주문하는 상상을 하며. 여기는 물론 도시 한복판, 2층이다. "좀 더 마시고는 싶은데, 한 잔 다는 못 먹겠구." 창가에 나란히 앉은 S와 반반 나눠 마시는 걸로 평화로운 합의 하에 샹그리아 한 잔을 더 주문한다. 사각사각 얼음에 오렌지, 사과 등 과일이 아낌없이 듬뿍 들어간 이 한 잔의 술에는 언제나 사람의 기운을 북돋는 재주가 있다. "이번 여름엔 집에서 샹그리아를 한 번 만들어볼까?" 올해도 또 작년과 같은 공수표 아닌 공수표를 날리고 있는 걸 보니 실감이 난다. 또 한 번의 여름을 지나고 있는 것이다.




RECIPE

샹그리아 만들기

꼭 레시피에 있지 않아도 집에 있는 과일을 자유롭게 활용하면 좋다.


재료

드라이한 레드 와인(저렴한 걸로)

사과, 오렌지, 귤, 배, 레몬, 딸기 등 집에 있는 과일(단 바나나 등의 무른 과일은 피할 것)

사이다(탄산수+설탕/꿀 조합으로 대체 가능)

시나몬 스틱(취향껏)


만드는 법

1. 베이킹소다를 이용해 준비한 과일을 깨끗이 씻어낸다.

2. 잘 씻은 과일을 껍질채 슬라이스한다.

3. 소독한 유리병에 슬라이스한 과일을 넣고 레드 와인을 붓는다.

4. 하룻밤 정도 숙성시킨다. 바로 먹어야 하는 경우에도 최소 2시간 정도는 둘 것.

5. 먹기 직전 사이다를 취향껏 탄다. 인위적인 단 맛이 아예 싫다면 사이다 대신 탄산수를 넣고, 탄산수+설탕/꿀 조합으로 당도를 조절해도 좋다.

5. 와인잔에 담는다. 과일 건더기가 같이 섞여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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