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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mja Apr 03. 2024

벽 앞에서 비로소 할 수 있는 일들




두려움에 익숙해질 뿐,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요가원에서의 머리서기를 할 때의 이야기다. 나름 5년이 넘게 꾸준히 요가 수련을 해왔지만 ‘시르사아사나’를 할 때면 늘 긴장감이 앞선다. 팔꿈치로 바닥을 지지하고 머리를 팔과 팔 사이에 쏙 박고서 다리를 올려 막대처럼 꼿꼿하게 버티는 물구나무 자세. 머리가 곧 발이 되고 발이 곧 머리가 되는 시르사아사나를 앞둔 나의 매트 위엔 불안감이 깔리곤 했다. 척추가 뒤로 휙 넘어가진 않을까, 잠시 힘이 풀린 새 허리가 덜컹 꺾여버리진 않을까. 다리를 천장 쪽으로 서서히 들어올릴 때마다 나의 걱정 지수도 덩달아 천장으로 치솟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수련 시간. 그날 따라 선생님은 뒤에 벽을 대고 시르사아사나를 해보라 하셨다. ‘벽이 필요한 정도는 아닌데’라며 내심 속으로 우쭐대던 나는 쭈뼛쭈뼛 매트를 벽 쪽으로 옮겨갔다. 마치 운동선수들이 경기 전에 하는 의식처럼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서 팔꿈치를 최대한 매트에 튼튼하게 붙였다. 서서히 다리를 들어올려 펴다 만 폴더 폰처럼 조금 구부정한 각도에서 멈춰 들숨 하나, 날숨 둘. 엉덩이는 집어넣고 허리는 더 곧게, 들숨 아홉, 날숨 열. 호흡이 제법 이어지던 차, 문득 감각했다. 비로소 머리가 발이 되고 발이 머리가 되었다는 것을. 중요한 건 나는 그 순간 두렵지 않았다는 거다.


달라진 거라곤 그저 벽일 뿐인데. 아무리 뒤로 고꾸라진들 심하게 넘어지지도, 다치지도 않을 걸 알았던 나의 몸은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하게 뻗어나갔다. 벽에 닿거나 기대는 일 없이 무사히 (그리고 웅장하게) 해냈다는 건 고로, 나는 벽이 있으나 없으나 충분히 그 자세를 소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그동안 못해서 못한 것이 아니라, 못한다고 믿어서 못했던 거라고. 날숨 열아홉, 들숨 스물. 호흡이 점점 거칠어질 무렵 매트 위에서, 단지 뒤에 벽이 없다는 이유로 내 스스로 그동안 그었을 수많은 한계선들을 세기 시작했다.


들숨 스물하나, 여기서 더 이상은 절대 무리라며 멈춰버렸던 지난 주말의 조깅. 날숨 스물둘, 늘 젬병이라 치부하며 소홀히 했던 않았던 재테크(일부 사실적 근거가 존재하긴 하지만). 들숨 스물셋, 직장인이 다 그렇다는 합리화로 온갖 간편식으로 돌려막았던 나의 소중한 끼니들. 들숨 스물넷, 이보다 뭘 어떻게 더 잘 하냐며 무심코 떠나보낸 인연까지도. 그 모든 것들의 뒤에 지금처럼 벽이 있다고 여겼다면, 지금쯤 나는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날숨 서른. 다리는 비로소 바닥으로 떨어졌고 등줄기에 땀은 미끄럼틀 타듯 쪼록 흘렀다. 짧고 긴 시간이었다.


우리는 모두 각자만의 벽을 세울 필요가 있다는 것, 이날의 수련은 그렇게 꽤 단단한 깨달음을 남기고 마무리됐다. 어디서 뭘 하든, 누굴 만나든 뒤에서 버텨줄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면 여유롭고 당당할 수 있을 테니까. 넘어져도 다치지 않을 걸 확신한다면 굳이 피할 필요도 마다할 필요도 없을 테다. 그러니 일단 시작하자, 버티고 또 부딪혀도 보자는 고요한 다짐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 꽃이 피든 말든 무심하게 내리는 봄비를 뚫고 나는 차곡차곡 나만의 벽을 세웠다. 그리고 그날 밤, 책꽂이에 한동안 잠자고 있던 시집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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