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 X 무랄라스 드 몬까오 화이트 와인
여름이면 소비뇽 블랑과 맞먹는 상큼한 ‘그린 와인’을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린 와인은 비뉴 베르드(Vinho Verde)를 해석한 또 다른 이름인데요. 포르투갈어로 비뉴는 와인, 베르드는 젊음으로 덜 익은 포도를 수확해 6개월 이내의 짧은 숙성을 거친 포르투갈 북서부 지역의 어린 와인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초록빛을 띄는 와인은 아니고요, 젊음에서 느껴지는 푸릇함이 자연스럽게 그린 와인이라는 애칭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대체로 풋과일 특유의 경쾌함과 톡톡 튀는 산미, 떫지만 가벼운 바디감, 아주 미세한 스파클링이 더해져 혹독한 여름, 입에 달고 살고 싶은 와인입니다. 여름과 그린 와인. 여기에서 지나칠 수 없는 영화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입니다.
사실 상큼미 터지는 그린 와인은 여느 하이틴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와 함께해도 무난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를 유독 예찬하는 이유는 열일곱, 오직 첫사랑에 대한 감정선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단순한 스토리 때문입니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그린 와인을 물처럼 마시더라’는 포르투갈을 여행한 사람들의 훌륭한(?) 목격담처럼, 그린 와인은 편안하고 쉽게, 아무 생각 없이 꿀떡꿀떡 마시고 싶은 와인이거든요. 복잡한 인물 관계도가 없고, 치열하게 결말을 추측해보지 않아도 괜찮은 작은 갈등마저, 현실판 첫사랑과 달리 복잡하지 않아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영화에 알바리뇨 100%로 만든 그린 와인, 무랄라스 드 몬까오 화이트 와인을 매칭했는데요. 초반에 훅 치고 올라오는 청사과향과 딱딱한 복숭아향, 입안에 0.5초 정도 머물다 사라지는 아주아주 미세한 버블은 션자이(천옌시)와 커징텅(가진동)의 풋풋한 열일곱 학창시절을 쏙 빼닮았습니다. 알 듯 말 듯한 두 사람의 사랑이 시작되는 시점부터는 이내 풋내를 감추고 상큼한 시트러스 계열의 산미를 환하게 펼칩니다. 영화는 성인이 된 주인공들이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공식을 따르며) 결말을 낼 때까지도 사랑스러운 분위기를 잃지 않는데, 이에 맞춰 와인의 경쾌한 산도도 잘 유지됐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아무런 의미 없이 흐르지 않습니다. 그 사이 커징텅은 좋아했던 여자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줄 만큼 성숙한 남자가 됐고, 그 사이 성난 여름의 열기도 다소 누그러진 것 같습니다.
이제 와 까마득한 첫사랑에 대한 기억이 떠오릅니다. 영화 속 커징텅은 션자이에게 “그때 널 좋아했던 내가 좋아”라고 말했지만 안타깝게도 현실판 제 첫사랑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았고요. 첫 이별부터 큰 교훈을 얻은 것으로 위로를 삼아 봅니다. 우리 모두, 그렇게 조금씩 성숙해지는 거겠죠.
2024.08
Letter From 여니고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경험주의자. 안타깝게도, 다행히도, 한두번 경험으로도 쉽게 만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살면서 가장 끈기 있게 해온 것은 한 회사에서 10년째 글을 쓰고 있는 것. 그리고 그보다 더 오랫동안 와인을 좋아했습니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혼술로 충전하는 시간을 (거의 매일) 갖습니다. 맛있는 와인을 발견하면 한때 직장동료였던 감자가 자주 떠오릅니다.
개봉ㅣ2012, 대만
장르ㅣ멜로/로맨스
감독 | 구파도
출연 | 가진동(커징텅), 천옌시(션자이)
한줄평ㅣ그 시절, 우리가 상상했던 모범적인 첫사랑의 장면들
무랄라스 드 몬까오 화이트 와인 (Muralhas de Monção Vinho Verde Branco)
산지ㅣ포르투갈, 미뉴
품종ㅣ알바리뇨
도수ㅣ12.5%
특징ㅣ청사과, 딱딱한 복숭아, 시트러스, 미네랄, 미세한 버블
가격 | 1만원대
한줄평ㅣ여름이 가기 전, 지나칠 수 없는 상큼미 팡팡 터지는 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