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하려던 일도 누군가 옆에서 말 한마디 보태면, 괜히 마음이 식어버리고 하기 싫어지는 그런 심보가 있다.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있던 일이라도 이상하게도 결정적인 순간에 툭 건네는 한마디가 나의 의지를 꺾어버릴 때가 많다.
'내가 알아서 하려던 건데 왜 네가 흐름을 끊어?' 하는 마음이 은근히 올라오는 타입이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은 건 스스로 찾아서 해왔다.
배우고 싶은 것도, 진학하고 싶은 학교도 누가 추천해 준 게 아니라 내가 직접 알아보고 발로 뛰며 결정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삶은 내가 사는 거다’라는 마음가짐이 아주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누가 대신 책임져주는 것도 아닌데, 남이 끼어들어 방향을 틀어버리는 게 늘 못마땅했다.
정작 그 사람들은 별 뜻 없는 조언일지 몰라도, 나는 그 말이 내 삶에 발자국을 남기는 것 같아 예민해진다.
특히나 중요한 선택일수록 더 그렇다.
내가 감당해야 하는 일인데 남이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게 영 거슬리고, 그 순간부터 오히려 그 선택이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곤 한다.
그런 내게 가장 큰 시련이 찾아왔다.
사실 나는 아기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지나가는 아기들은 무척 귀엽고, 아기 엄마 몰래 까꿍을 해준 적도 있지만 막상 제대로 ‘놀아줘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
울기라도 하는 날엔 머리가 새하얘져버린다.
조카바보가 되기엔 조카가 없고, 친구들 중에 가장 먼저 결혼한 터라 주변에 아기 있는 집도 없었다.
결혼 생각도 거의 없던 사람이었으니 아기를 가져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본 적도 당연히 없다.
딱히 딩크족을 계획했던 건 아니지만, 여유롭게 결혼한 것도 아니었고 집 문제로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먼 곳으로 이사 오면서, 나는 또다시 사회초년생이 되었으니 당장 2세를 생각할 여유도 마음도 없었다.
‘2년 후쯤이면 직장에서도 자리 잡고, 가계 흐름도 안정되겠지.
신혼 초 조율과 다툼도 어느 정도 지나가 있을 테니 그때가 아기를 계획하기 좋은 시기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나만의 생각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손주를 기대하는 기색을 은근히 보이시던 어른들은 점점 더 노골적으로, 그리고 빈번하게 아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것도 유독 나.에.게.만.
처음에는 “아직 이르다”, “우리 계획대로 하고 싶다”라고 차분히 설명했다.
그러나 내 설명을 듣기나 하는지, 아기 이야기는 지독하게도 나를 따라다녔다.
결국 “안 생기면 시험관이라도 해보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 마음이 걱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면서도, 듣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이건 내 삶을 흔들어 놓으려는 월권이자, 이미 세운 나의 계획을 무시하는 것이었다.
전화만 하면 아기 이야기로 끝나니, 일부러 양가에 전화를 피하던 시기도 있었다.
나는 어른들께 아기를 봐달라 부탁할 생각도, 금전적 지원을 받을 계획도 없다. 내 아기는 결국 내가 직접 키우는 것 아닌가.
부모가 온전히 책임지고 돌볼 수 있을 때 아이를 맞이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 상황은 내게 꽤 큰 스트레스였다.
사소한 잔소리 정도로 넘기기엔 반복이 너무 잦았고, 그때마다 내가 세워둔 삶의 질서가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 속도와 계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이며 꿋꿋하게 2년을 버텨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 ‘나만의 싸움’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흔들리지 않고 버텨낸 나 자신이 때로는 놀랍고, 한편으로는 대견하기까지 했다.
고집스러운 나 자신, 참 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