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4]마지막과 시작

알감자의 등장

by 감자밭일지

지독한 계획형 인간인 내게 미래 계획은 언제나 한 치의 오차 없이 흘러가는 것이 당연했다.


“결혼 후 2년쯤, 내가 30대가 되기 전에 아기를 가지자.”

막연히 세운 계획이였지만, 아기가 생기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 것도 아니었다.


주변에는 이미 난임 시술을 받는 부부가 둘이나 있었고,

“피임만 안 하면 바로 임신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라고 말하는 인플루언서들의 이야기도 여러 번 들었다.


그래서 우리도 당연히 한 번에 생기진 않겠지, 하고 생각했다.


일도 가정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이제 드디어 2세 계획을 시작해볼까 마음먹은 지 고작 2주쯤 되었을까.

묘하게 감기 기운 같은 느낌이 들어 설마 하는 마음으로 테스트기를 봤는데, 아주 희미한 두 줄이 나타났다.


알감자와의 첫 조우였다.


곧바로 병원에 가서 혈액검사를 했고, 수치는 17.91

의사 선생님은 “임신은 맞지만 수치가 너무 낮아 유산될 수도 있고, 그냥 생리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괜히 기대를 주고 싶지 않으셨던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 순간엔 꽤 마음이 상했다.


물론 내가 몸에 (과하게)예민한 탓에 너무 일찍 병원에 갔다는 건 인정한다.

그렇지만 잘 자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서운함이 들었다.


지금 와서 역산해보니, 그때 태아의 나이는 겨우 3주 0일.

대부분 임신 낌새조차 느끼지 못하는 시기, 착상이 막 끝났을 때였다.

의사 선생님께 잘못은 없었지만 괜히 심술이 나서 그 이후 검진은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그렇게 시작된 임신 기간은 놀라울 만큼 평온했다.


열 달 내내 특별한 이슈 없이 건강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한 아이가 무사히 태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여러 번 깨닫게 되었다.


입덧, 임신당뇨, 임신중독, 소양증, 환도 통증…


임산부가 견뎌야 하는 수많은 산들을 떠올리면, 나의 임신은 정말 평탄한 편이었다.

숨이 차고 다리가 붓는 정도의 불편함은 있었지만, 이 정도면 나도 ‘임신 체질’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덕분에 출산 2주 전까지 출근하며 휴직 기간을 최대한 뒤로 미룰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남편과 내가 둘이서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기도 했다.

아기와 함께하는 삶은 아직 실감 나지 않았고,

외식이나 여행조차 마음 편히 하지 못할 것 같아 둘이서 보낼 시간을 더 아끼게 되었다.


주말이면 더 열심히 여기저기 다녔고, 태교여행이라며 홍콩에 가서 디즈니랜드를 휘젓고 다녔으며 하루 3만 보 가까이 걷다가 거의 남편 어깨에 반쯤 실려서 숙소로 돌아온 날도 있었다.


인신 초기만 제외하면 매일 커다란 배를 안고 헬스장에서 덤벨을 들었고, 웬만한 일은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해낸 덕분에 남편은 임신이 그렇게 힘든 일인지 체감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그때 밤마다 둘이 손잡고 산책하던 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조만간 셋이 함께 걷겠지, 어떤 아이일까 상상하며 나누던 대화들은 참 따뜻했다.


우리가 부모가 되더라도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정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절대 흐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젠가 현실에 지치고 익숙함에 무뎌지는 순간이 오더라도, 다시 손을 잡고 두런두런 밤 산책을 나설 수 있는 부부로 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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