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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tatohands Oct 31. 2023

내가 좋아하는 약간 심심한 시간

일기가 쓰고 싶어지는 때

약간 심심한 시간 나는 일기가 쓰고 싶어진다.

나를 찾는 연락도 내가 해야하는 일도 더이상 보고싶은 유튜브 영상도 인스타그램 피드도 없어지면 창밖을 보며 일기가 쓰고 싶어진다.


요즘 나의 삶은 단조롭다.

임신 18주차 몸도 에너지도 예전 같지 않아서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를 꼭 써야하는 곳과

가끔생기는 약속에만 쏟다보니 자연스럽게 삶의 우선순위가

정의되고 단조로워졌다.


이 단조로움에는 평안함이 깃들어있다.

지루함과 단조로운 평안함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만족하는 마음이 있을땐 지루하지 않고 평안해진다.


심심하지만 평안할때는 일기가 쓰고 싶어지고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고 책을 읽고 싶어진다.

지루하고 무료할때는 의욕이 없어진다.


지루함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내가 원하는 때에 되지 않을때 그 기다림을 지루하고

무료하게 느끼게 된다.


요즘에는 모든 때가 다 그럴만한 때에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임신, 결혼, 취업, 해외생활 등이 더 빨리 또는

더 늦게 되지 않고 그럴만한 때에 이루어진것이 감사하다.


내가 할만큼 했다면 안되는 것도 그때가 아니여서 그런것이고 되는 것도 그럴만한 때여서이다. 임신기간동안 내가 뱃속아기를내의지대로 키울수가 없다. 열심히 먹을테니 40주보다 빨리 건강한 상태로 태어나게 할 수도 없고 입덧때문에 못먹을테니 주수에 맞게 덜크라고 할 수도 없다. 내가 입덧을 해서 못먹어도 내가 많이 먹어서 배탈이나도 알아서 뱃속에서 주수에 맞게 자라고 있다. 때에 맞춰 무엇을 하라고 내가 말해주지 않아도 뱃속에서 알아서 잘 크는게 신비롭다.


남편은 아빠가 될 준비를 한다. 체력이 좋아야한다며 운동을 하고 연애할때도 잘 안잡아주던 내손을 잡고 걸어주고 손마사지를 해주며 임신한 나와 뱃속의 아기를 돌봐준다. 이렇게 다정하게 임산부를 돌볼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럴만한때에 이런 무뚝뚝사람에게서 다정함이 나오기도한다.


이럴만한 때가 되어서 우리는 엄마와 아빠가 되었다.

사랑을 아기에게 줄수 있을 만한 때가 되어 우리에게 생명이 생겼다.


얼마전까지만해도 분주할 일들이 많아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는 일기를 쓸만한 때가 아니였다. 오늘은 조금 여유가 생겨서 일기를 쓸만한 때가 되었다.


지난주에는 단풍놀이를 다녀왔다. 아름다운 가을의 때를 만나 나무들은 노랑 빨강색으로 물들었다.

단풍의 아름다움을 즐기다 보니 가을의 때를 즐기는 이 시간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막연하게 무섭게만 느껴진 임신이지만 임신기간동안 다정한 남편의 모습과 일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는 이때를 즐겨야겠다.


오늘은 일기를 쓸만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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