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른 밭의 감자가 되었다

퇴사 후에야 알게 된 나의 무게

by 왕감자감자


사람을 세 명이나 뽑는대요


회사를 떠난 지 몇 주 뒤였다.
후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대리님 있잖아요, 지금 감자 대리님 하시던 일에…
사람을 세 명이나 뽑는대요.”


나는 잠시 멍했다.
세 명이라고?


한 명은 수출입 담당,
한 명은 내자 구매,
그리고 한 명은 품질 및 현장관리 담당.


각기 다른 포지션,
하지만 결국 내가 혼자 맡아했던 모든 역할이었다.


"그걸 지금에서야 나누는구나…"


웃음인지 허탈함인지 모를 감정이 올라왔다.


퇴사 전,
나는 한 번도 여유 있게 휴가를 다녀온 적이 없었고
업무 시간 외의 저녁에도
ERP를, 통관문서를,

공급사 대응을 계속해야 했다.


가끔은
“이걸 정말 혼자 다 해야 하나”
싶었던 그 수많은 날들.


그때는 몰랐다.
이 자리에 원래 세 명이 필요했단 걸.


회사는 최종 적으로 2명을 뽑았고

수출입 업무는 다시 SCM팀으로 배정해서 돌린다고 했다.





조직은 말한다.
“충원해 줄게. 인력 넣어줄게. 너를 인정해 줄게.”

하지만 나는 알았다.

그건 보상이 아니라,
내가 ‘버틴 시간’에 대한 뒤늦은 수습이라는 걸.






감자는
하나의 줄기 아래

땅속에는
무수한 감자가 숨어 있다.


티 나지 않게,
소리 없이 퍼지고,
묵묵히 자란다.


어쩌면 나는
그 땅속 감자 중 하나였다.


보이지 않았지만,
필요했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누군가는 나에게 말했다.
“지금 감자 대리는 본사에서

뭐든 할 수 있는 자리에 있어.”
“왜 떠나려고 해? 이런 기회 흔치 않아.”

그 말,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팀장 자리 제안,
인력 충원 약속,
결재 전권 위임.


그건 진심이었고,
고마운 제안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계속 뿌리내리는 대신
다른 밭을 택하기로 했다.





#20.png



감자는
거꾸로 심어도 뿌리를 내리고
흙 속에서도 자신만의 속도로 자란다.


울퉁불퉁하고,
수확도 쉽지 않지만
한번 자리 잡으면
절대 가볍게 뽑히지 않는다.


그리고 하나의 줄기 아래에는
얼마나 많은 감자가 숨어 있었는지는
캐 보지 않으면 모른다.


나는 조용히 회사를 떠났고,
새로운 회사에서
다른 이름의 감자로 다시 심겼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자랄 수 있는 밭에서.



좋댓구알2.png

오늘 글이 좋았다면

‘라이킷’과 댓글 그리고 구독으로 응원해주세요 :)

왕감자의 성장은 여러분의 응원에서 시작됩니다.


keyword
이전 19화그래도, 퇴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