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팀장도 아니고 전무도 아닌데…”

결재의 시작부터 마감까지 은밀한 실무

by 왕감자감자


“이제 결재 지연도 끝나겠지.”

팀장이 새로 온다는 소식에

처음으로 기대했던 건 단 하나,
‘누가 결정을 내려줄 사람이 생긴다’

안도감이었다.


팀장이 없는 팀에서
업무는 늘 손에 잡히지 않았고
보고는 엇갈렸고
결재는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니 팀장이 온다는 말에
우리 팀을 비롯해 업무가 연관 팀 전체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던 것도 당연했다.






팀장은 생겼지만 책상은 없었다.



새로 부임한 팀장은
지방에 위치한 자회사의 구매팀장으로

우리 팀 팀장직을 겸직하게 되었다.


원래 한 달에 한두 번

본사회의에 참석하거나

자회사의 거래처 방문을 하는 일정을

소화하고는 했는데

겸직 발령으로 우리 팀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즉,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만

팀장과 대면이 가능했고

본사에서는

굳이 팀장의 자리를 만들지 않았다.

그러니까 사실상 본사에 없는 팀장이었다.






본사와 자회사의 차이


“감자님, 본사 ERP는 왜 이래?

ERP 로그인하려면

방화벽 해제하고

VPN 켜고 인증받고

뭐가 이리 복잡해..."


팀장은 낯선 시스템과 불편한 접근환경에
하루가 멀다 하고 진땀을 흘렸다.

지방에서 본사 시스템에 접속하려다 보니

보안 문제로

어쩔 수 없는 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야근이 일상인 본사와 달리

현장에 위치한 자회사는 야근을 하지 않아

저녁 7시 8시에 올라가는 결재 건들은

아예 대응 자체가 불가능했다.


가끔은 서버 문제로

본사가 아닌 외부에서는

접속도 안 되는 경우도

빈번히 발생하였다.


매일 적게는 수차례 많게는 수십 차례의

내부 ERP 결재를 받고 진행되는 업무인데

팀장 부임 후 이런저런 문제로

일처리가 더욱더 늦어지게 되었고

업무가 연계된 다른 팀들은

우리 팀에 불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감자님이 다 하세요. 책임은 제가 질게요”


한 달 남짓 지난 팀장은

본사 미팅 참석 후 나와 개인면담을 가졌다.


“지금 ERP 결재문제로 안팎으로 시끄러운 것 같은데

많이 고민을 했어요

감자님도 벌써 3년 넘게 이 업무를 했으니깐

저보다 더 잘 알 테고...


흠...

감자님이 전부 다 하세요.

감자님이 결재 올리고

제 계정으로 승인하세요

전무님 계정까지 열어드릴 테니깐...

책임은 제가 질게요"


사실상 전권 위임이었다.

기안부터 최종 결재까지 전 과정을

나 혼자 진행하게 되었다.


사실상 팀장도 전무도

우리 팀의 실무는 잘 몰랐다

자회사는 생산 위주의 업무였지만

본사의 우리 팀은 직접적인 생산보단

공급망, 원자재, 수출입까지 포함된

또 다른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모든 업무를 설계하고, 판단하고, 실행해야 했다.




#17.png


결재선은 복잡했지만, 아웃풋은 빨라졌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매일 아침
팀장 명의의 ERP 계정을 열고
결재를 대행했다.

내가 쓴 기안을 승인 처리했다.
그리고 전무의 결재까지

내가 관리했다.


수입, 수출, 발주, 통관, 마감까지

하루 많게는 수십 건의 ERP 결재를 처리하고

기안부터 최종 결재까지 전담하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최종 결재까지 며칠은 걸 리가 도 했지만

이제는 몇 분이면 끝나게 된 것이었다.


본사의 다른 팀은 이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업무 속도는 달랐다.
업무가 척척 진행되고,

납기나 일정도 지체됨이 없으니
자연스럽게 모두가 눈치를 채게 되었다.


"요즘 팀장님하고

전무님이 결재를 엄청 빨리 해주시네?

완전 AI인가 봐. 자동이야 자동..."


누군가가 그렇게 말했을 때
그건 웃으며 넘기기엔

뼈가 있는 농담이었다..





본사와 자회사, 두 방식의 경계에서



자회사의 문화는 ‘믿고 맡기는’ 스타일이었다.
신뢰를 전제로 실무자에게 결정권을 위임하는 구조.


반대로, 본사는 하나하나 결재를 받으며

마이크로 매니징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그 두 체계의 중간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었다.


내 명함엔 여전히 ‘대리’였지만,
나는 기안자이자 검토자,

결재자 역할까지 겸하고 있었다.






믿음인가, 방관인가



속도는 빨라졌다.
성과도 좋아졌다.
협업 요청도 더 많아졌다.

C팀의 실무 모든 것은 내가 통제했다.

본사의 유관 부서들도
우리 팀에 협조를 구할 때도

그냥 내게 말하면 해결되니
‘팀장 결재 대행'은

대외비에서 공공연한 사실로 변해버렸다.


대외적으로 팀장이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팀을 운영하는 건 '나'였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믿음과 방관사이

나는 그렇게 실무자와 관리자를 넘나드는

역량과 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오늘 글이 좋았다면
'라이킷'과 댓글 그리고 구독으로 응원해주세요 :)
왕감자의 성장은 여러분의 응원에서 시작됩니다.


좋댓구알2.png


keyword
이전 16화결재라인이 꼬였다, 조직이 기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