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은 부탁도 거절하기 힘들었다
SCM팀에 적응해 가던 중,
업무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내가 담당하는 아이템의
제품 구조와 운영 흐름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되었다.
아이템 특성상,
제품의 특성과 해외 거래선,
국내 영업 구조를 이해해야
전체적인 SCM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영업팀을 통해
교육을 받던 어느 날,
뜻밖의 제안이 날아왔다.
"왕감자님, 알바 한 번 해볼래요?"
영업팀장이 농담처럼 건넨 말이었지만
결코 농담은 아니었다.
이야기는 이랬다.
얼마 전 볼링 동호회에서 넘어지면서
영업팀장이 오른팔에 깁스를 하게 된 것이었다.
스스로 운전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출퇴근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영업팀은 외근이 잦은 부서였고,
자가운전은 필수였다.
업무야 영업팀 직원들이
팀장과 동행하여 거래처를 방문하며
다닐 수 있다 해도
출퇴근이 가능한 건 아니었다.
매일 같이 대리기사를 이용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SCM팀 소속이었던 신입사원인 나에게
조심스럽게 제안이 들어온 것이었다.
"왕감자님, 우리 집으로 와서 같이 출근하면 어때요?
집도 가까우니깐
왕감자님은 교통비 아끼고,
나는 대리비 아끼고,
서로 좋은 거잖아요."
공식적인 지시는 아니었다.
개인적인 부탁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회초년생이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이건 개인 심부름이니까 거절해도 된다"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부터,
이상한 출근이 시작됐다.
원래라면 7시 반쯤 집을 나서도 충분했지만,
영업팀장을 픽업하려면
7시 전에 도착해야 했다.
출근시간이 30분 당겨진 게 아니었다.
한 시간 이상 일찍 움직여야 했다.
아직 어둠이 짙은 새벽,
홀로 버스를 타고 영업팀장의 집으로 향했다.
도심 한복판에 위치한 회사 특성상
러시아워인 출퇴근 시간에는
편도 2시간,
왕복 4시간이 기본이었다.
긴장한 채 운전대를 잡고
깁스를 한 팀장을 조수석에 태우고
말없이 출퇴근을 반복했다.
가끔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차 안에서는
의외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영업팀장은 이동 중에도
회사 이야기, 제품 구조, 거래선 관리,
그리고 부서 간 미묘한 긴장 관계까지
쉬지 않고 들려주었다.
고객사와 통화하고
임원에게 진행 상황을
구두 보고를 하면서
SCM팀 아니,
신입사원인 내가
몰라도 되는 내용까지 알게 되었다.
누구도 공식적으로 가르쳐주지 않는
회사의 공기와 흐름을,
나는 운전석에서 조용히 배웠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늦으면 괜히 죄송했고,
교통체증에 갇히면
차 안에 어색한 침묵이 흐르기도 했다.
나는 SCM팀 소속이었고,
그는 영업팀 팀장이었다.
남의 부서, 남의 팀장,
남의 문제를 매일 짊어지고 다녔다.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를 견뎠다.
돌이켜보면
그 출근길, 운전대를 잡으며
조용히 세상을 배웠다.
사회초년생인 나는
그렇게 서툴고 어색한 방식으로
회사라는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오늘 글이 좋았다면
'라이킷'과 댓글 그리고 구독으로 응원해주세요 :)
왕감자의 성장은 여러분의 응원에서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