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아빠를 따라 용인에 처음 온 때는 1990년 여름이었다. 김량장동 용인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원삼면 죽능리까지 들어갔다. 남친의 부모님께 첫인사를 드리는 날이었지만 별로 긴장되진 않았다. 이런 걸 연분이라고 하나 보다. 낯을 매우 가리는 내가 나들이 가듯 무심하게 길을 갔으니 말이다. 느릿느릿 이어지는 평화로운 시골길이었다.
시할머님께서 90세로 소천하시자 신혼의 새댁이던 나는 끝없이 몰려오는 문상객들에게 절을 하고, 또 하고, 또 하며, 신고식을 했다. 시할머님을 모신 꽃상여가 원삼면 죽능리 청룡마을을 돌 때엔 뒤를 따랐다. 발인 후에는 선산에 모신 종중 묘마다 찾아가서 절을 하고, 또 하고, 또 했다. 평소에는 제사가 이어졌다. 다양한 의례에 호기심이 많은 나는 이런 생활 속 예식(禮式)들이 역동적이라고 생각했다. 집안 모임은 제사를 지키는 시부모님 중심으로 펼쳐졌다.
처인구 모현읍에 있는 해주오씨 시조단(海州吳氏始祖檀)은 내가 수십 년 참여한 시댁의 풍경을 수천 년 간직하고 이어가는 듯한 장소다. 이곳은 중국 송나라의 대학자로 984년(성종 3년)에 고려에 귀화했다는 시조(始祖) 오인유(吳仁裕)를 중심으로 가문을 빛낸 선조들의 비(碑) 15위를 모신 곳이다. 1987년에 완공해 시조단 제막식을 거행했다는 곳이니까 2024년 현재 37년 된 곳이다. 이런 시조단을 만드는 종친회의 가문 의식이 놀랍다. 밀레니엄을 앞두고 미래에만 관심이 쏠리던 시대 아니었던가. 오직 나, 개인에게만 중요성이 집중되던 시대 아니었던가. 그런데 오랜 과거를 되살리는 일을 이토록 꾸준히 했다는 건 경이롭다. 이곳엔 시조 오인유를 기리는 시조 설단비(始祖設壇碑)가 따로 있다. 2m가 넘는 큰 비(碑)다.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에 용 두 마리가 비석 위 머릿돌에 올라가 있는 귀부이수(龜趺螭首) 형이다. 웅장하다.
해주오씨 시조단 설단비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비현실 세계에 들어온 것 같았다. 고궁 같은 문화재라면 관람객이 어느 정도는 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이곳을 찾았을 때 방문객은 우리뿐이었다. 그러니 어느 초현실에 들어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과연 이곳은 현실이면서 현실이 아니었다. 고려에 귀화해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이라는 나랏일을 맡아 활약했다는 시조, 그 후 6 세손까지의 인물들 15명의 기념비라니 정말 현실 같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감자에게 열심히 강조했다. “너희 조상이셔, 너희 조상님들이셔. 멋지다. 와!”
해주오씨 시조단 15위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이 없는 유교에선 자손을 통해 내 존재의 영속성을 보장받는다. 조상과 후손의 삶이 이어진다고 여긴다. 그래서 조상숭배 사상이 강렬하다. 내가 죽어도 자손들이 나를 기억해 주길 바라는 장치가 제사이다. 해주오씨 시조단에서도 매년 음력 3월 15일에 대규모 제사를 올린다. 춘향대제(春享大祭, 이른 봄에 종묘와 사직에 지내는 큰 제사)라는 의식이다. 감자아빠의 사진은 이곳의 모습을 정말 아름답게 담았다. 과거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아름답고 찬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니 그렇게 여기고 싶다고 마음먹었다.
* 해주오씨 시조단 - 모현읍 오산로 61번지 29 오씨종가제실
해주오씨 시조단은 1세 인유(仁裕)부터 6세 종인(宗仁)까지 15위를 모시고 있다. 해주오씨 종친회에서 시조단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1987년 4월 12일에 시조단 제막식을 거행했다. 시조인 오인유는 송나라의 대학자이다. 984년(성종 3년) 고려에 귀화했다. 종친회는 매년 음력 3월 14일에 시조 오인유를 비롯한 선조들께 춘향대제(春享大祭)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