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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엄마 Mar 07. 2024

폴 발레리와 글래디에이터(Gladiator)

   


새벽형 인간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의 생애(1871-1945)는 단조롭다. 소시민(小市民)으로 산다. 46세인 1917년 「젊은 파르크」를 출간하며 국민 시인의 경지에 오른다. 수많은 강연 연단에 서며 유럽의 지성으로 불리는 공적 인물이 되지만 내적인 삶을 지킨다. 그 내면적 삶은 바로 ‘새벽 공부’이다. 발레리는 1892년 제노바의 위기 이후부터 ‘새벽 공책’을 쓴다. 매일 새벽 4시~5시경에 일어나 머리에 떠오르는 날것 그대로의 생각들을 쓰고 연구한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습관적으로 쓴 기록이다. 공책 기록은 74세로 사망하기 전까지 계속된다.  

     

폴 발레리가 50여년 간 쓴 새벽 공책은 모두 261권이 된다. 이 공책들은 폴 발레리 사후에 『카이에 Cahiers(프랑스어로 ‘공책', '노트’의 뜻)』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의 『폴 발레리 카이에 I, II 권』 외  29권의 사진 복제판 등으로 발행됐으며, 지금도 추가 출판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그가 공책에 다룬 주제는 자아, 언어, 철학, 심리학, 감수성, 기억, 시간, 수학, 과학, 문학, 시, 예술과 미학 등이다. 폴 발레리를 시인, 작가에 제한하지 않고 늘 ‘20세기의 지성’이라고 부르게 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글래디에이터」는 폴 발레리의 『카이에』에 시도된 수많은 주제 항목들 중의 하나이다.      


발레리에게 ‘글래디에이터’는 무엇을 뜻했을까? 우리에게 ‘글래디에이터’는 배우 러셀 크로의  포효하는 몸짓과 표정, 갑옷, 칼, 한스 짐머의 신들린 음악, 그리고 콜로세움에서의 피 튀기는 격전 장면이다.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초췌한 지식인 폴 발레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우리는 『카이에』의 「글래디에이터」 항목에서 몸 훈련 방식으로 정신의 창조적 가능성을 발전시키려는 의지로 가득 찬 아포리즘들을 발견할 수 있다.      


청소하는 사람

발레리-글래디어이터는 ‘청소하는 사람’이다. 그것도 새벽에 청소를 한다. 집안을 청소하는 게 아니다. 사유(思惟) 청소, 즉 뇌를 청소한다.       


“청소 – 매일 아침 스스로에게 규율을 부여하지 않는 자는 가치 없는 인간이다. 미친 듯이 관념들을 채찍질하는 게 얼마나 좋으냐. 멜랑콜리를 장화발로 굴려 버리고, 광기와 광란을 녹이고, 우상을 벗기고 깨어나는 것은 얼마나 좋으냐. 뒤로는 발길질을 해라, 영광, 희망, 후회, 불안, 재능에는 발길질을 해라. 빗자루질을 하자. 나를 빗자루질하자. 이 문 앞에서! 지금은 하루를 다시 시작할 때이다.”      


명상하는 사람 

발레리의 글레디에이터는 ‘인간에게 정신의 힘이 얼마나 극대화될 수 있는가’를 연마하는 ‘자아’이다. 그에게 자아 조련은 명상이자 체육이었다.

      

“사람들은 명상이 체육을 의미하는 걸 잊곤 한다. 명상이 특별한 결과를 지향한다고 상상한다. 특별한 것의 체육은 없다. 명상의 결과는 없다. 넌 어떤 주제의 생각을 몇 시에 끝내니?”    

 

"나의 철학은 체육이다. 체육에 대한 생각이 중요하다. 바로 그게 내 철학이다.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그리고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이행하기. 두 가지 상반된 중요한 작업들의 일관된 조작이다."       


결과를 추구하지 않기

발레리-글래디에이터는 지키는 법칙이 있다. ‘항해일지’라는 이름을 단 공책에 새벽 사유(思惟)를 담기 시작한 첫 해인 1894년 메모에는  “정신의 완벽이나 정신의 힘을 절대로 어떤 결과 안에서 추구하지 않는 것”라는 구절이 있다.  작품이라는 결과보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즐기고 중시했던 발레리의 문학관이 담겨있다.      


"작품을 추구하지 않기 – 그러나 힘을 추구하기, 인식은 조련 가치로만 가치가 있다." 


"원칙 – 진리를 찾지 않는 것, 그러나 진리를 만들거나 찾는 데 사용되는 힘과 기관들을 경작할 것. 진리가 있다면 발견될 것이다. 이게 내 투쟁 원칙이다."

     

자기 응시

1899년의 메모엔 ‘위버멘쉬(Uebermensch)로 향한 길’이라는 짤막한 글귀도 있다. 당시 유럽 청년들 중 니체가 제시한 ‘위버멘쉬’, '초인'을 지향하지 않은 젊은이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카이에의 글래디에이터는 위버멘쉬 식 깨어난 시민의식엔 큰 관심이 없다. 발레리식 자기 응시 방법이 곳곳에 발견될 뿐이다. 발레리는 초인을 ‘인간을 인식하는 인간에 대한 결과이다’라고 정의한다. 

     

“나는 나를 무한히 섭렵한다. 나는 나를 섭렵하는 나를 바라본다. 그리고 그다음도 그러하다.(...) 내적 인간은 상상 속 자기 손아귀에 바다를 움켜쥔다. 예술, 인식, 덕 등. - 평범한 아침들의 훈련들 – 운동과 웰빙, 용이함과 어려움의 감각이 홀로 울려 퍼지는 투명한 날들."   

   

"초인은 존재한다. 초인은 인간을 인식하는 인간에 대한 결과이다"

      

"우월한 인간, 슈퍼맨은 재능 있는 인간이 아니다. 이 행운을 되돌려주는 인간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범위 안에서 스스로를 조직한 자이다."

     

생각의 지배자

발레리-글래디에이터는 자아의 끊임없는 변모를 응시하면서 자아의 힘을 강화하는 사람이다. 여명의 시간에 정신 훈련을 하는 인간, 이게 발레리식 글래디에이터이다. 그는 ‘인간에게 정신의 힘이 얼마나 극대화될 수 있는가’를 연마한다. 그렇게 해서 ‘자기 생각의 지배자’가 되길 원한다. 그의 무기는 정신이다. 그 정신은 몸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카이에』의 「글래디에이터」 주제에서 유럽의 한 청년이 자기 자신과 사투를 벌이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배우 러셀 크로가 연기한 글래디에이터 못지않게 비장하다. 니체식 위버멘쉬의 프랑스식 버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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