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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엄마 Jan 30. 2024

호암미술관과 마망(Maman)

                                                             


"이렇게 작고 아름다운 불상들이 있단 말이지!"


 호암미술관 〈야금(冶金) 전시회〉에서 감자와 감자엄마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2021년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코로나19가 조금 풀리는지 거리 두기가 완화되고 미술관들은 다시 문을 열었다. 이때다 하고 우리 모녀는 가까운 호암미술관을 갔다. 말이 필요할까. 그냥 좋았다. 좋고 또 좋고 또 좋았다. 미술관 가는 길, 단정한 전통 정원, 신선한 공기, 위풍당당한 석조 본관, 구불구불한 돌계단, 고적한 가을 풍경, 모든 게 좋았다. 집콕, 방콕에 질린 몸과 마음이 기지개를 쭉 폈다.      


  전시장에서 우리 모녀가 ‘헉’하고 경탄한 대상은 미니어처같이 작은 고려 불상(佛像) 들이었다. 가야의 위풍당당한 금관보다 왜 이런 작은 불상들이 눈에 더 들어왔을까. 왕권(王權) 보다도 신권(神權)이나 영성(靈性)에서 경외심을 느끼는 심성이어서 일까? 아마도 우리 모녀가 소울메이트(Soul mate)이기 때문일까? 〈은제 아미타여래 삼존좌상〉이라는 어려운 제목의 불상을 좀 볼까. 14세기 고려시대 불상이란다. 은으로 만들어 도금한 세 불상이 연꽃 안에 사뿐히 단아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렇게 작은데 살아있는 듯 생생하고 신비한 불상 본 적 있니? 없다. 중앙의 아미타여래 상이 가장 키가 크다. 높이가 19.3cm 란다. 양옆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 상은 그보다 작다. 이건 불상 인형 아닌가. 이토록 높은 경지의 초월미가 이렇게 작은 물상(物像) 속에 이처럼 생생하게 담길 수 있단 말인가?       


 야금 장인들이 추구한 것은 어떤 고차원적인 경지일 것이다. 백성도 왕도 함께 우러러보는 경지 말이다. 일상의 삶 속에 그런 경지가 녹아있길 바랐기 때문에 이런 작품을 만들어 보관하고 쓰다듬고 관상(觀想) 했을 것이다. 불상은 가장 이상적인 소재가 아니었을까. 그 앞에선 모든 인간이 평등해지는 그런 영적 차원을 야금으로, 불상으로, 종교로 구현했겠지. 감자엄마는 이런저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하여튼 이런 어려운 주제는 미뤄두자. 감자와 나는 2층 로비 소파에 앉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서로 멋있다고 칭찬하면서. 자 이젠 예술보다도 차 한 잔이 급하다. 카페에 가자. 카페에서 또 사진을 연신 찍었다. 카페 내부의 흰 벽면에는 검은 나뭇가지 철제 조각이 벽 장식처럼 붙어 있었다. 멋졌다. 한국 화가 조환의 철제 사군자 조각이었다. 감자는 이 철제 조각을 배경으로 클로즈 숏을 찍어 달라고 내게 주문했다. 젊은 감각엔 저 검은 조각품이 ‘시크(chic, 프랑스어로 '멋진', '세련된'의 의미)’ 해 보였나보다. 그 앞에 있으면 자신도 ‘시크’해 보인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카페를 나왔다. 한국식 전통 정원의 조경을 한껏 즐기며 산책했다.           


  미술관을 나왔다. 더 경악했다. 프랑스 태생의 미국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geois, 1911~2010)의 거미 구조물 〈마망 Maman(프랑스어로 ‘엄마’를 의미)〉이 저 멀리 산 속에 거대하게 박혀 있었다. 초대형 거미 조각. 기괴하면서도 기막히게 압도적이고 아름다운 조각품 말이다. 갑자기 과거 전통사회에서 미래 가상현실로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았다.  ‘엄마’를 ‘거미’에 은유한 발상이라니. 과연 예술가는 예술가다. 감격했다. 가까이 가서 보면 거대한 거미가 뱃속에 알을 잔뜩 품고 있다고 한다. 그 알은 이 거미에서 모성애를 읽게 하는 코드이다. 평생 묵묵히 태피스트리를 짜면서 가정경제를 일구어나갔던 작가의 엄마를 투사했다고 한다. 루이즈 부르주아 개인의 엄마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존경과 애정을 거대하게 드러낸 것이지만 이 세상 모든 엄마에 대한 찬가이기도 하다. 이런 조각을 감자와 함께 보게 된 감자엄마는 마냥 좋았다. 엄마에게 감사했고 이 순간을 감사히 여겼다.   


  

마망(Maman), 루이즈 부르주아, 1999, 스테인리스 스틸과 청동.      



  그런데 이게 뭐지? 감자아빠가 호암미술관이라고 찍어온 첫 사진. 눈을 씻고 보아도 호암미술관 같지 않았다. 사진은 ‘빼기의 미학’이라고 한다. 다 보여주는 게 아니란다. 아. 그러고 보니 희원의 모습이로구나. 전통정원 희원에 있는 연못! 그래도 그렇지 우리가 보고 온 그 많은 광경들이 하나도 없다. 희원을 분명 둘러보긴 했는데 이렇게 사각형만 담긴 정원이었던가? 그래, 그랬던 것 같다……이렇게 유추해야 했다. 감자아빠에겐 사각 연못이 있는 정원이 호암미술관의 독보적 개성인 것 같았다.   


    

 호암미술관 전통정원 희원      

  

  사진은 어느 장소나 인물을 있는 그대로 정말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매체다. 하지만 사진은 아주 조금만, 그 장소나 인물의 아우라(aura, 후광)만 보여줄 때가 있다. “그 장소 맞아? 그 사람 맞아? 그래 맞긴 맞아” 한다. 그 장소, 그 사람을 다시 바라보게 된다. 다시 인식하게 된다. 뭘 다시 보고 뭘 다시 인식하는 걸까. 이런 게 사유이고 성찰이 아닐까. 뭔지 모르지만 자꾸 더듬어가는 것 말이다. 어쨌든 감자아빠의 사진 덕에 호암미술관의 인상엔 희원만 남았다. 감자와 호암미술관에 다시 가려고 한다. 희원을 찬찬히 다시 바라보게 될 것이다. 다음엔 어떤 전시품이 있을지 기대도 된다. 이럴 때 마음 부자가 된 것 같고 행복하다.         


  호암미술관 

경기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 562번길 38   

☎ 031-320-1801  www.hoammuseum.org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李秉喆)이 30여 년간 수집한 한국미술품 1200여 점을 바탕으로 1982년 4월 개관했다. 수려한 자연 경관 속에 자리하고 있는 호암미술관은 1년 반 동안 리모델링을 마친 후 2023년 5월 18일부터 9월 10일까지 김환기 회고전 ‘한 점 하늘_김환기(A dot a sky Kim whanki)’를 열었다. 전통 정원 희원의 관음정 옆에는 프랑스 설치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oniel)의 <황금 연꽃>과 <황금 목걸이>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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