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어비리에 저수지가 있다. 이동저수지이다. 어비리저수지 또는 송전저수지라고도 불린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에겐 최상의 낚시터로 유명하다. 용인 8경 중 하나인 ‘어비 낙조’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해 질 녘 이곳의 석양이 그토록 아름다워서 뽑힌 절경이다. 광대한 호수이니 해질 때뿐 아니라 해 뜰 때도 장관일 터이다.
공보관실에서 언론 홍보 업무를 하던 때였다. 어느 날, OO 일보 O 국장이 부서 직원들을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장소는 이동저수지 인근 식당이었다. 점심시간은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였고, 그동안 청사가 있는 삼가동에서 이동읍 사이를 오고 가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모두들 우르르 떠났다. 우리들은 ‘저수지가 있구나’라며 풍경을 둘러볼 틈 없이 식당에 앉아 음식을 기다렸고, 먹고, 이야기했다.
닭 요리 전문 식당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좌석을 꽉 채우고 있었다. 맛집인 걸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식당 주인이 토종닭을 직접 키워서, 손수 잡아서, 요리해서, 대접하는 식당이라고 했다. 오랜 세월 터를 잡고 식당업을 한 곳이었다. 붉게 양념된 대형 토종닭 접시가 여럿 나왔다. 우리는 정말 맛있게 먹었다. 감각이 뛰어나고 취향도 분명한 언론인의 맛집 리스트에 꼽힐 만했다. 우리는 제대로 즐겼다. 고마운 추억이다. 먹고 난 후엔 잠시나마 이동저수지를 바라보았다. 모두들 입을 모아 “와, 정말 좋다! 좋구나!”를 연발했다. 그리고 서둘러 일터로 돌아갔다.
내게 이동저수지는 이때의 인상뿐이었다. 시골 외진 곳에 평온한 호수가 있다는 것, 맛있는 토종닭 요리와 강단 있는 언론인, 그리고 공보 활동에 온종일 부산한 부서 직원들과 보낸 1시간여의 짧은 장면이다. 그런데 감자아빠가 찍어서 컴퓨터 화면에 올려놓은 사진 속 이동저수지는 이곳이 아니었다. 아니 이동저수지 그곳은 맞는데 또 그곳이 아니었다. 이거 참 요술이로군! 그 안엔 정중동(靜中動)과 색채가 있었다. 사진은 움직이지 않는 정지 화면이지 않은가. 그런데 움직임이 있었다. 새벽의 호수는 모든 게 잠든 안식처인데, 그런데 소란이 숨어있었다. 아침을 향해, 낮을 향해, 하루를 향한 시작이 새벽에 담겨있으니까. 흰색은 색이 없는 색, 무채색이다. 그런데 여기에도 색이 있었다. 총천연색이 어딘가 내재해 있다가 나타났다.
사진술은 발생 초기에는 피사체 육신의 외관들을 양파 벗기듯 벗기면서 심령체를 노출시킨다는 풍문까지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인간희극(La Comédie humaine)》의 작가 발자크(Honoré de Balzac, 1799~1850)는 “매번 사진이 찍힐 때마다 육체라는 것은 자신의 환영 중 하나를 차례차례 상실한다. 즉 자기 본질의 일부를 잃어버린다”고도했다. 내가 보기에도 사진은 피사체를 재현한 사실적인 기록만이 아니었다. 분명 뭔가 있었다. 이게 뭘까. 그게 사진 매체가 가진 마술적 능력일 것이다. 독일의 문학평론가이자 철학자, 미디어사상가인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사진 속에 “이미 지나간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공존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특별한 차원의 시간성”이 있다고 했다.
감자아빠의 이동저수지 사진을 보니 그 시간성이 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았다. 그냥 이동저수지에 다시 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곳의 사진은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기도 했다. 내가 보는 게 전부일까? 뭔가 그 이상이 이곳에 깃들어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지금 이 장소에 영적 차원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는, 사진이 불러일으키는 자각은 내 의식 속에 그 장소 자체를 변화시켰다. 우리는 가까운 곳엔 그다지 신비감을 갖지 않는다. 산책도 여행도 뭔가 다른 곳, 먼 곳으로 가야 제맛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정말 소중한 것은 가까이 있지 않은가. 사진은 그런 가까운 것을 소중하게 보게 한다. 이동저수지를 다른 눈으로 찬찬히 보아야겠다.
* 이동저수지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어비리 357
경기도에서 가장 큰 인공저수지다. 1972년 준공된 이동저수지 유역 면적은 9300ha이고, 농수 용수를 쓰는 (관개) 면적만 2156㏊, 유효 저수량은 2090만 6000t이다. 한국농어촌공사가 시설을 관리한다. 용인시는 오는 2026년까지 이동저수지를 산책할 수 있는 13㎞의 둘레길과 생태공원을 만든다고 한다. 시는 우선 저수지 주변에 산책할 수 있는 둘레길을 만들고 있는데 현재까지 마무리한 구간은 송전레스피아~송전낚시터 입구와 사계절낚시터 인근, 총 2㎞의 산책로이다.
마음정원, 1 감자아빠의 힐링포토 - 용인 명소 산책 1 용인 이동저수지의 추억, 부크크,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