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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엄마 Feb 06. 2024

나무의 영성과 갈곡마을 느티나무

 


나무는 인간의 은인이다. 나무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줄기, 가지, 잎, 뿌리에 저장한다. 그 대신 신선한 산소를 내보낸다. 나무는 베인 후에도 목조 건축물이나 가구 재료로 이용돼 대기 중 탄소를 꾸준히 흡수한다. 나무 부산물을 모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면 화석연료 이용도 줄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나무는 시인들에겐 창작 과정의 인내를 상징한다. 20세기의 지성으로 불리는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Paul Valéry, 1871~1945)는 〈종려나무(Palme)〉라는 시에서 참을성 있게 느릿느릿 성숙해 가는 나무를 통해 지난(至難) 한 괴로움 끝에 거두는 시 창작의 승리를 노래했다. 나무의 역할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영적 존재로 신격화된다.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갈곡마을 느티나무가 그 한 사례다.               


  수백 년 풍상을 이겨낸 갈곡마을 느티나무는 지역의 영원한 랜드마크가 됐다. 나무를 신성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 덕분이다. 시시때때로 나무 아래서 만나 술잔을 기울이며 정을 쌓던 고향 친구들은 어느 날부터 그들만의 모임을 지역 잔치로 확장한다. 잔치는 느티나무 앞 고사제를 시작으로 민속놀이, 축하공연 등으로 이어진다. 지난 수십 년간 마을 변천사를 담은 사진전도 함께 열린다. 백미는 먹거리 장터다. 절굿공이로 떡 메치기를 해 콩고물을 묻혀 낸 보드랍고 따뜻한 인절미가 상에 오른다. 새우젓에 찍어 먹는 고소한 수육 접시가 연달아 나오고, 막걸리 잔이 쉴 새 없이 오고 간다. 농악대는 징과 꽹과리를 울리고, 색소폰 밴드는 색다른 흥을 돋운다. 도시의 단체장부터 아파트 주민들까지 한마음으로 어울리는 시간이다. 


갈곡마을은 고층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 차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고장이 됐지만, 느티나무 아래는 예나 지금이나 오가는 이들이 잠시 쉬어가는 휴식처다. 사람들은 신성한 나무 앞에서 벅찬 숨을 고르고, 더 나은 앞날을 다짐한다. 느티나무처럼 변치 않은 존재는 시공을 뛰어넘는 진정한 힐링 명소의 명맥을 이어준다. 나무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 덕분이다.    

           


  갈곡마을 느티나무 공원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 580번지 


  김령 김 씨 집성촌이었던 갈곡마을은 1990년대 말 택지 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아파트 단지로 변모했다.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마을 한가운데 거목으로 자란 느티나무들은 수백 년 풍파에 아랑곳없이 마을의 전통을 지키고 있다. 갈곡마을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향 친구들의 모임인 갈곡 전통문화보존회는 2006년부터 매년 11월경이면 이 느티나무 군락지에서 ‘갈곡마을 느티나무 전통문화 보존행사’를 개최한다. 경기도는 1988년 이곳 느티나무들 중 350년생 느티나무를 보호수로 지정했다. 용인시는 2007년 이곳 느티나무 군락지 일대 1,691㎡를 공원으로 지정해 주민 쉼터로 꾸몄다. 

                                                          갈곡마을 느티나무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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