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암미술관과 겸재 정선

by 감자 엄마

고품격 조선 문화를 재발견했다. 자랑스러웠다. 4월의 어느 날, 호암미술관의 「겸재 정선전」을 둘러보며 감자 가족 세 식구는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 정선(1676~1759)은 산천을 직접 답사하여 사실 그대로 묘사하는 진경산수(眞景山水) 화풍을 창조했다. 이전의 중국식 산수화와 달리 실경(實景)을 바탕으로 조선 산천의 자연미를 생생하게 그렸다. 조선의 화성(畵聖)이라고도 불린다. 그의 그림을 165점이나 모아 놓다니. 이만한 전시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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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


전시장의 첫 작품으로 걸린 「인왕제색도」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림은 강렬하고 환상적이었다. 인왕산은 서울 종로구에서 서대문구에 걸쳐 있는 화강암으로 된 바위산으로 흰색을 띤다. 「인왕제색도」는 비가 그친 인왕산의 모습을 그렸다. 여름날 한바탕 비가 지나가고 산 아래엔 물안개와 비구름이 자욱이 피어올라 사라져 가는 순간을 포착했다. 이런 움직이는 형상을 흑백의 명암으로 잡아내는 게 가능할까? 가능하다. 「인왕제색도」는 기적에 가까운 작품이다. 신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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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전도」


「금강전도」는 웅장하다. 그러면서도 말할 수 없이 섬세하다. 신비하기 그지없다. 금강산 전체를 그린 그림으로 산의 전체적인 풍경을 조망하는 구도이다. 그림 속 금강산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이 생생했다. 광활한 구도이면서도 구석구석 묘사는 치밀하다. 「금강전도」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중 최고봉으로 평가된다. 겸재 정선이 실제로 금강산을 유람하고 그 감동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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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봉」


「비로봉」은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과 그 주변의 작은 봉우리들을 그린 그림이다. 수직으로 솟은 봉우리들이 가득 차 있다. 상승하는 기운(氣運)이 솟구친다. 강렬하다. 겸재는 특히 기암괴석과 봉우리 묘사에서 자연의 질감을 강조하는 강렬한 필선과 독창적인 구도를 사용했다. 비로봉은 부드러운 필선으로, 작은 바위 봉우리들은 날카로운 수직선으로 표현하여 지형적인 특징을 대비시켰다.


감자 가족은 기념품 샵에서 겸재의 그림을 새긴 유리컵을 샀다. 유리컵이라고? 존재감 없다. 일상 속 흔하디 흔한 소품이다. 그런데 유리컵에 겸재의 작품을 입히자 그 어디에도 없는 고품격 유리잔이 됐다. 감자 가족은 거실 장식장 위에 겸재 유리잔을 올려놓았다. 집 안에 겸재의 고고한 향기가 번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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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도정」(좌) 「삼일호」(우)


유리잔에 담긴 겸재의 그림은 각각 「쌍도정」과 「삼일호」이다. 「쌍도정」은 경상도 성주 관아의 객사인 백화헌의 정자이다. 네모난 연못에 두 개의 인공섬이 있고 그 섬들을 가느다란 다리가 연결하고 있는 그림이다. 오른쪽 섬에 단아한 정자를 짓고 이를 「쌍도정」이라 부른 듯하다. 매우 특이하고 아름다운 인공 연못 속의 정자다. 유리컵에는 쌍도정의 근경은 담겨있지 않다. 원경의 산(山)만 아련하게 새겨져 있다. 은은하다.


「삼일호」는 강원도 고성군 삼일포리에 있는 자연 호수이다. 삼일포 구역은 섬과 땅으로 가둬져 있는 바다이기 때문에 호수처럼 보인다고 해서 삼일호로 불린다. 하루 일정으로 놀러 왔던 왕이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삼일 더 머물렀다는 일화에서 그 이름이 비롯됐단다. 관동팔경의 제2경에 해당한다. 감자 가족은 겸재의 세계에 압도됐다.


호암미술관 야외는 싱그러운 봄날의 푸른빛이 가득했다. 전통정원 희원은 구석구석 할 것 없이 단아하고 운치 있었다. 희원의 관음정 옆에 프랑스 설치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oniel)의 「황금 목걸이」도 빛났다. 감자 가족은 여느 사람들처럼 이곳저곳서 사진을 찍고 한가롭게 산책했다. 카페는 수제 양갱과 쌍화차, 팥빙수를 파는 장소로 변해 있었다. 알록달록한 예쁜 양갱들이 진열된 이곳엔 빈자리라곤 찾을 수가 없었다. 미술관 입구 호수 너머엔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대형 거미, 「마망(maman)」이 그 기괴하고 아름다운 형상을 뽐내고 있었다. 우린 호암미술관과 겸재 정선을 통해 시간이 멈춘 듯한 한나절을 누렸다.



* 호암미술관

경기 용인시 처인구 포곡읍 에버랜드로 562번 길 38

☎ 031-320-1801 www.hoammuseum.org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李秉喆)이 30여 년간 수집한 한국미술품 1200여 점을 바탕으로 1982년 4월 개관했다. 수려한 자연경관 속에 자리한 호암미술관은 2025년 4월 2일부터 6월 29일까지 「겸재 정선전」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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