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오리구이(베이징 카오야)가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것은 1970년대 미국과 중국의 수교 시절이다. 당시 중국의 이인자이자 외무부장이던 주은래는 음식 외교에 대한 철학이 있는 정치인이었다. 1971년 미국 국무장관 헨리 키신저와 식사를 하며 「전취덕(취안취더)」 식당의 북경오리구이를 대접했다. 맛은 물론 기품 있는 자태를 지닌 북경 오리구이를 국빈에 대한 극진한 대접이자 중국의 국가 위상을 과시하는 도구로 선택한 것이다. 전취덕과 북경오리구이는 이때 엄청난 유명세를 누렸다. 주은래는 1972년의 닉슨 대통령 방중 때에도 북경 오리구이를 국빈 만찬 메뉴에 올렸다.
하지만 중국 베이징 저잣거리에서 오리구이를 처음 팔기 시작한 곳은 전취덕이 아니라 「편의방(피엔이팡, 便宜坊)」이다. 전취덕이 1864년에 개업해 16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반면, 편의방은 명나라 영락제 14년(1416년)에 개업해 무려 61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편의방은 원래 산 닭이나 오리를 잡아 파는 가게였는데, 차츰 그것을 굽거나 조리해 팔면서 식당업을 굳혔다.
현재 사세는 외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전취덕이 훨씬 앞서 있다. 그 이유는 국공 내전 당시 전취덕은 모택동의 공산당, 편의방은 장개석의 국민당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편의방은 국민당 정권 몰락 후 움츠러들었으나 공산당의 요구에 잘 부응했던 전취덕은 급속히 세를 확대하며 원류를 뒤집을 수 있었다. 편의방은 문을 닫을 위기에까지 처했으나 총리인 주은래의 한 마디에 기사회생한다. 주은래는 “카오야(오리구이)의 뿌리를 끊어선 안 된다”라고 편의방을 추켜 주었다. 그리고 편의방과 전취덕을 외교 상황에 맞게 고루 선택하면서 북경 오리구이를 국빈 만찬, 음식 외교의 단골 메뉴로 격상시켰다. 닉슨, 김일성, 키신저, 카스트로, 옐친, 나카소네, 네루 등 세계의 리더들이 북경 오리구이를 맛보았다.
편의방의 경우 아시아의 지도자나 아프리카 신생 독립국 지도자를 접대할 때 주로 선택됐다. 전취덕은 서방 기자단이나 지도자를 맞을 때 이용됐다. 두 식당은 같은 북경 오리를 놓고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요리했다. 편의방은 오리를 오븐 속 뜨거운 공기로 천천히 굽는 밀폐형 방식을 사용해 기름기가 적고 담백한 맛을 내는 점에서 소박하고 전통적인 느낌을 준다. 이에 주은래는 서방보다 더 형제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는 음식 외교의 자리로 편의방 오리구이를 활용한 것이다. 반면 전취덕은 불 위에 오리를 매달아 굽는 개방형 방식으로 조리해 껍질이 바삭하고 고기가 기름진 편인 데다 식당의 분위기도 제국풍의 화려한 인테리어로 강렬한 인상을 준다. 이에 주은래는 서방을 대상으로 중국의 국가 위상과 고급 전통문화를 과시하는 음식 외교의 장으로는 전취덕을 활용했다.
감자 가족은 베이징덕(Beijing duck)의 원조를 찾아서 「편의방」으로 갔다. 우리는 넓고 쾌적한 식당에서 요리사가 직접 부위별로 오리를 썰어내는 시연을 구경하며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조각같이 얇게 썰어낸 오리구이가 테이블로 서빙된다. 부드러운 살이 붙은 오리 껍질 부위는 얇은 전병에 텐미엔장, 파채, 오이채를 올려 함께 싸 먹자. 독특한 식감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카오야 맛의 진수는 바삭하게 구워 썰어내는 오리 껍질에 있다. 오리 껍질만 설탕에 찍어 먹는다. 고소하다. 카오야를 만들면서 나오는 부산물인 오리목, 발, 머리, 살 발라낸 뼈 등은 튀김으로 변신해 등장한다. 정말 아낌없이 주는 오리로구나! 건강식이면서 미식이기도 한 국보급 요리라 할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