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개봉한 영화 「범죄도시」에서 빌런 장첸이 새빨간 가재를 먹는 장면은 무척 야만스러웠다. 난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나 충격을 받았지만 그 시대 트렌드라는 마라롱샤를 먹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베이징을 여행하면서 마라롱샤 음미는 필수 코스였다. 그런데 베이징 마라롱샤 원조식당인 구이제(鬼街)의 후다판관은 1999년에 문을 연 25년여 된, 비교적 신(新) 레스토랑이었고, 무엇보다 마라롱샤 자체가 중국의 전통 요리가 아니라 1980-90년대에 개발된 신(新) 음식이란 건 새로운 발견이었다.
마라롱샤는 마라 양념을 한 민물 가재 요리이다. 매운맛을 내는 중국 향신료인 마라를 작은 민물가재(샤오롱샤)와 같이 볶은 음식이다. 중국에서 맥주와 곁들이는 대표적인 야식이지만 2000년대에 대중적으로 확산된 새로운 요리다. 한국에서는 2010년대 들어 한중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마라탕, 마라샹궈 등과 함께 마라롱샤가 알려졌다.
마라롱샤의 원조 맛집 「후다판관」은 베이징 구이제(鬼街)에 있다. 귀신 거리라는 의미의 「구이제」는 베이징 둥청구에 있는 약 1.5㎞ 길이의 먹자골목으로 원래부터 야식, 해장 문화 중심지였다. 귀신 거리라는 이름은 성 밖으로 시체를 나르는 길목이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이 있지만 지금 이 이름은 밤이면 식당마다 새빨간 홍등을 내걸고 불야성을 이뤄서 귀신 나올 것 같은 거리라는 이미지와 맞물려 회자된다.
2000년대에 구이제의 거의 모든 가게는 마라롱샤 간판을 내걸고 가재 먹으러 오는 손님으로 밤새 북적였다. 그중에서도 「후다판관」은 독보적인 인기를 얻었다. 왜냐고? 구이제 전체가 마라롱샤로 유명해지는 흐름을 주도적으로 이끈 집이 바로 후다판관이기 때문이다. 후다판관은 1999년 9월 순위전이 베이징 구이제에 설립한 중식당인데 마라롱샤를 일찍 간판 브랜드로 내세우고 다른 식당보다 가격대비 푸짐한 양으로 승부했다. 또 매운맛, 마늘맛, 13 향 등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게 해서 인기를 얻었다. 넉넉하게 내주는 인심이 후다판관의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해준 것이다. 이후 여러 체인점으로 확장하면서 구이제 후다판관 본점의 상징성이 더욱 커졌다. 고객의 길게 늘어선 줄이 입장을 기다리는 후다판관은 구이제의 얼굴이자 구이제의 랜드마크가 됐다.
그런데 마라롱샤의 재료인 작은 가재(샤오롱샤)는 애초에 식용이 아니었다니 의외였다. 작은 가재는 북미 원산의 외래종이며, 일본을 거쳐 1930년대에 중국에 들어왔는데 초기엔 우렁이 혹은 개구리 사료, 논 오염 정화, 농업 활용 목적으로 사용되었고 번식력이 좋아 중국 전역에 빠르게 확산됐다. 식용으로 대중화된 시기는 1980-90년대로 후난, 장쑤 지방에서 농민과 길거리 음식점들이 값싼 단백질원으로 가재를 요리에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강한 향신료와 고추, 마늘로 냄새와 잡맛을 없애고 매운맛을 입히는 조리법이 발달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마라롱샤의 기원이다.
2000년엔 허시현에서 열린 ‘롱샤 축제’를 계기로 ‘마라롱샤’ 가 인기를 얻었고, 2002년 베이징 구이제에서 ‘마라롱샤 축제’가 열려 큰 인기를 끌며 전국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이는 중국의 2000년대 개혁 개방 정책에 힘입어 24시간 영업제, 야식업의 발전, 대도시의 밤문화, 맥주 안주 문화 등과 맞물린 현상이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후다판관에서 마늘향 마라롱샤와 석화 생굴구이, 랑차이(일종의 야채샐러드)로 오이무침을 주문했다. 비닐장갑을 끼고 마라롱샤를 까먹는 모습이 서툴렀는지 종업원이 접시를 가져가 손질해 가져다주었다. 영화 범죄도시에 나오는 장첸처럼 마라롱샤를 먹는 폼은 아예 내던져야 했다.
사료용이다가 식용으로 전환한 지 30-40여 년 된 음식을 현대적인 쾌적한 레스토랑에서 먹는 기분은 묘했다. 맵고 얼얼한 맛을 음미하기에 앞서 식재료의 역사를 되짚게 했다. 석화구이는 우리 입맛에 잘 맞았고, 오이무침도 새콤하고 아삭해 가재의 매운맛을 중화시켜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