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바게트 안에 별의별 토핑이 다 들어있다. 베트남 샌드위치 ’반미(Banh Mi)‘다. 쌀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만든 베트남 바게트에 고수, 돼지고기, 당근, 오이 등 절임채소, 느억맘 소스 등 베트남 식재료를 듬뿍 넣은 샌드위치이다. 우리 가족은 하노이에 머물면서 반미 트람 등 반미 맛집을 즐겨 드나들었다.
프랑스는 1860년부터 약 100년 간 베트남을 지배했다. 이때 프랑스 식문화도 베트남에 영향을 주었다. 짧은 바게트에 고기와 채소를 넣는 샌드위치의 일종인 ’반미‘는 프랑스 바게트가 베트남인의 입맛에 맞춘 변형을 거쳐 현지화‧세계화된 경우이다.
19세기 후반 베트남에 프랑스 식민지 시대가 시작되면서 프랑스 빵 바게트는 고급 음식으로 베트남에 전파된다. 20세기 중반엔 베트남 국민 음식 ’반미‘로, 서민 음식이지만 계층을 초월해 사랑받는 음식으로 확장된다. 지금과 같은 베트남 반미의 형태는 1950년대 사이공에서 완성된 것으로 알려진다. 75년여 된 음식인 것이다. 쌀이 주식원인 베트남에서 쌀가루를 섞은 가볍고 바삭한 베트남식 바게트가 탄생했고, 바게트를 반으로 갈라 베트남 식재료를 넣은 ’반미‘가 선보였다. 반미는 베트남 전쟁 이후 해외 이민자들과 함께 미국, 프랑스 등으로도 확산되었는데 현재는 서울을 비롯해 세계의 대도시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글로벌 스트리트 푸드로 뿌리내렸다. 제국주의의 산물이 베트남의 시그니처 메뉴로 탈바꿈한 것이니 베트남 국민의 정체성에서 집요한 실용성과 문화적 개방성을 엿보게 된다.
간단한 음식이지만 간단하지 않다. 새로운 음식은 새로운 대중적 미각을 탄생시켰을 것이다. 아니 후자가 먼저일 수도 있다. 겉바속촉의 바게트에서 보다 더 부드러운 바게트가 베트남 바게트이다. 돼지고기나 햄, 파테 등 육류 토핑에서는 짭짤하고 감칠맛이 난다. 고수와 고추 등 신선한 허브와 채소가 청량감을 준다. 절인 당근이나 무에서는 새콤함이 솟는다. 게다가 베트남 느억맘 소스 특유의 달고 짠 여운이 '반미'를 새로운 차원의 바게트 샌드위치로 만들어준다. 간단한데 간단하지 않다. 마치 이면을 숨긴 음식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