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기차를 타면

by 감자나무

어디에서건 간격을 자주 둘 수 있었으면 좋겠어. 자주 오지 않는 버스를 하나 놓치더라도 기사님이 나를 버리고 갔어- 낄낄 웃으며 다음 버스가 오기 전까지 버스 노선대로 따라 걸어갈 수 있는 내 몸속에 다양한 맛의 여유가 남아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게. 만약, 다음 버스가 없으면 택시를 타면 되지! 그래, 오늘의 말랑한 베개가 내 옆의 부드럽고 익숙한 냄새가 눈을 벌떡 뜨기 전 꾸었던 꿈속의 서글픈 눈빛은 누구의 것인지 궁금해지더라도 우선 코레일톡을 확인해 보는 거야. 좀 더 이른 시간의 자리는 없나. 차라리 버스를 타고 갈까- 어떤 옷을 입고 가는 것이 좋을까. 맛있는 것을 꼭 먹고 와야 하는데. 이번에는 치실을 챙겨가는 것을 잊지 말아야지. 기차역을 겸하는 전철역에 읽고 싶은 책을 판매하던 중고서점이 있었어. 당신처럼 살면 안 된다고 어쩜 그렇게 똑똑한 머리로 모든 것들을 비틀고 그렇게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냐고 내뱉을 용기가 없는 나는 아니, 당신의 분노가 나를 향하기를 바라지 않는 나는 책에 이끌려 누구에게도 이야기로 들리지 않게 연필로 직 직 사각사각 너의 모든 것들에게 반듯한 방향을 찾지.

네 인생을 오답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니? 한 번도 합리화하지 않았단 말이야? 운명이고 팔자라고 종종 중얼거렸잖아. 내가 생각하는 정답은 네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인 것뿐이야. 나는 지금이 반듯해.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나는 꿈꾸고 있는 나를 찾는 것뿐이야. 완벽하진 않아도 가까워지고자 노력은 할 수 있잖아. 그래, 백날 천 날을 그렇게 떠들어 봐. 여기서나 거기서나 들리지도 않지. 귀를 막아버릴 필요도 없어. 그래서 멈추지 못하겠다고?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네 눈에는 찢어 죽여버리고 싶은 것들이 없나 봐. 지금 나를 가지고 가만두지 못하는 너도 어두컴컴한 속을 가지고 있을 텐데. 네 인생이나 신경 써라. 지겹지도 않냐. 언제까지 무해한 사람인 척 붙어 있을래. 언제까지 간 보다가 앗 이건 내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며 도망만 치고 다닐래. 그러다 낭떠러지라도 만나면 뛰어 죽을 생각이야? 죽을 용기도 없잖아. 언제까지 뭔가 달라졌다는 너를 받아들이지도 못하고 흔들릴래. 방향을 바꿔. 네 인생이나 깽판 쳐 보란 말이다. 지금 낙서하고 있잖아. 내게 갈겨버리고픈 마음을 네게도 던져. 왜 너는 네가 아닌 것 같다고 중얼거리고만 있니. 돌릴 수 없다는 걸 모르지 않잖아. 지금에서도 네가 어디에 있는지 지도는 그리지 못해도 약도 정도는 그려볼 수 있잖아. 지금처럼 네게만 들릴 말을 해도 괜찮아. 아무도 찾아 듣지 않을 거야. 하고 싶은 말을 해. 네게서 멀리 떨어진 나만 보고 있지 말고 가까운 너를 볼 시간인 것 같단 말이야.

항아리 모양으로 크기를 가렸던 바나나맛 우유는 컸어. 벅벅 몸을 긁고 있잖아. 그게 다 우유를 마셔서 오뎅을 먹어서 밖에서 애들이 남겨주던 만두를 먹어서 그런 거야. 거지처럼 왜 주워 먹고 다니는 거야? 너 집에서 먹을 만큼 다 먹잖아. 먹으면 안 되나? 거지면 집이 다 부서지나? 애들이 다 돈 주고 사 먹는 걸 나만 돈이 없어서 못 먹으면 거지 아닌가? 거지이면 안 되나? 책을 사고, 서점 옆에 있던 커피집에서 바나나맛 우유보다 큰 사이즈의 커피를 샀어. 달콤할 필요는 없지. 인생은 쓴 것이 맞으니까. 보이는 것을 보인다고 말해도 되잖아. 머리를 감지 않은 것 같으면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으면 툭 툭 때리는 애들이 있는 것 같으면 나를 쳐다보는 눈이 손으로 콕 콕 쑤셔버리고 싶을 정도로 미우면 물어볼 만도 하잖아. 왜 안 되는 거야? 하지 마. 듣기 싫어. 나 바빠. 나도 더 말하기 싫어. 더 듣기 싫어. 왜 나만 들어야 해? 왜 나로 벽을 만든 거야? 왜 직접 들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어? 나는 이제 당신의 모든 것들이 다 이상해. 내게 기대지 마. 내게 바라지 마. 어색해. 내 말을 들어준 적이 없잖아. 똑같은 말이었잖아. 왜 울어? 나는 울고 싶지 않아서 울지 않은 것이 아닌데. 왜 나보다 더 못 참는 거야? 왜 돌려본 적이 없어? 왜 앞으로 나와 본 적이 없어? 네가 거지냐, 왜 먹다 남은 것을 받아먹는 거야? 눈을 왜 그렇게 떠서. 너랑 어디도 못 다니겠네. 사람들이 우릴 거지인 줄 알잖아. 먹고 싶은 마음대로 행동하고 싶은 마음대로 이끌어 줄 생각은 할 줄 몰랐나 봐. 당신은- 이제 말하지 마.

지고 싶지 않았어. 무엇에 지고 싶지 않았던 건지 나도 물어본 적이 없어. 의자에 붙어 있는 테이블을 꺼내어 커피를 마시고 책에 낙서를 했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쳐다보든 피식 웃다가 여기 존재하지 않는 너를 증오했어. 미워했고, 칼로 너를 쑤시듯 연필로 모자라 자를 대어 색연필로 문장에 줄을 긋고, 어느 페이지는 인덱스로 목줄을 채웠지. 후련함은 어디서 오는지 아직 잘 몰라. 다시 들쳐보지 않을지도 몰라. 영원히 그대로 그렇게 있어. 나는 넘어가도 넘어갈 수 없으니까 너와 나는 똑같지. 옆에 앉은 남색의 옷을 입은 승객을 보고 등에 하얀 비듬이 쏟아졌던 아빠를 떠올렸나. 이제 나는 거기 없어. 거기가 어딘지를 아는 네가 문제야. 모든 것들에게서 안녕을 고하지 않아 다시 네가 원하지 않아도 불쑥불쑥 튀어나와 너는 어디에도 머무를 수 없는 것 같다는 착각에 빠져 무서워하는 거지. 다시 돌아갈까 무섭지. 넌 이미 나왔는데, 아무도 너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인정할 수 없지. 저 사람은 가볍게 지나갔는데 너 혼자서만 똑같은 이유로 그에게 묻는 것도 구차해 먼 곳에 치워둔 거지. 다시 너무 먼 곳에 있을 때마다, 네가 이곳에 있는 것이 맞는지 확인하고 싶을 때마다 끝나지 않는 소리들이 너를 부르지. 더러운 년, 쟤랑 짝하기 싫어. 머리가 간지러워. 냄새난단 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