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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나무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사람이 좋을까? 얼굴을 때리는 한낮의 햇빛과 여유롭게 마주할 새도 없이, 그에게 미운 말 한마디 내뱉을 수 없는 밤이 찾아오면 지루한 마트에서 언제나 똑같은 물건들을 집고 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벗고 바로 바닥에 누우면 어느새 아침이 찾아오는 잠의 궁전에 깊이 빠져 사는 것이 더 효율적일까. 이제 나는 새벽에 잠들지 않았던 시간을 그리워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잠들었던 늦은 밤, 나만 잠들지 못했던 시간을 원망했었던 내게 재미있는 책 한 권을 건네주며 이야기할래. 이거 읽은 다음에 같은 제목의 영화를 봐. 완벽하게 맞물리지 않은 행동들을 발견하는 것도 즐거웠지만, 책을 읽는 동안 입안에서 맴돌았을 목소리와 지금 네 눈이 보고 있는, 살아 움직이고 있는 풍경이 바닥에 깔아 둔 이불 옆의 못생긴 그림에 수채화 색연필로 연하게 색을 칠하기 시작하니 그동안 먹어왔던 것보다 맛있는 눈물을 먹을 수 있었어.

연하게 색칠한 그림 옆에 연하게 적어둔 어제의 열망을 조용하게 속삭여보았지. 열기가 눈을 뜨겁게 만드나. 아니, 일기를 쓰지 않았어. 그 책임 없는 열망이 꾸준히 쌓아두었던 일상을 가볍게 지워버렸지. 차갑게 식은 장작더미를 들춘다. 뜨겁게 튀던 불씨와 얼굴을 데우던 열기에도 눈을 크게 뜨고 기다렸던 불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었지? 내가 어제 무엇을 먹다 잠에 들었던 것 같은데. 감자였어. 그 옆에 시큼 텁텁한 와인에 껍질이 얇은 오렌지와 상처 난 배, 손으로도 쉽게 벗겨낼 수 있는 키위를 던져 넣고 온종일 끓였다고 했지. 무엇을 하지. 왜 일어나야 했지? 한 입 베어문 감자의 껍질을 벗긴다. 짓물렀거나 졸여진 과일을 혀로 자르다 검댕이 묻은 손으로 하얀 일기장을 넘겼어. 하얀 컵에 길게 묻은 붉고 짙은 물방울처럼 예쁜 흔적이 있을까. 어제의 자국이야. 어디로든 자리를 옮기기에는 이미 힘을 잃었어.

돌아가신 날이 왜 1년마다 계속 달라지는지 물어보아도 깨끗한 정답을 찾아낼 수가 없어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어린 시절의 어떤 밤에는 아빠와 친한 먼 동네의 어른들의 차를 타고, 늙은 나무 덩굴로 덮인 머리카락과 겨울마다 피가 흐르는 손처럼 갈라진 벽들로 장식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지. 가까운 신문보급소에서 파본들을 한 곳에 모아두더라도 가벼운 바람에 흩날린다면, 그 주변은 곧 쓰레기장이 될 거야. 그냥 종이야. 무서운 것이 아닌데. 허연 귀신도 아니고, 회색 귀신같아. 비라도 내리면 바닥에 철썩 들러붙어 더럽게 벅벅 일어나고는 결국 뭉개지겠지. 자그마한 실내 인테리어 가게는 꼭 출입문 옆에 누런 뼈 같은 변기통을 모아두었어. 누런 뼈에 거뭇거뭇 묻어가는 먼지들. 찾아간 기억이 없는 집 옆의 성당은 올라가 본 적 없는 골목 끝의 창문에 붙어있는 스테인드 글라스만 눈에 보이는 거야. 붉은 부분들만 보고 이를 덜덜 떨었어. 어째서 빨갛지?

아래층 아줌마와 아저씨가 무거운 눈으로 우리 집을 찾아와 조금만 부드럽게 걸어주면 안 되겠냐고 투정을 부리시곤 했어.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가 우리들의 동동 동동 발걸음 소리에 엉엉 울었었던 모양이야. 시끄럽다고 엉엉 울어요. 달래주면 이번에는 똥을 뿌댁 쌌다고 엉엉 울어요. 기저귀를 갈아주면 다시 시끄럽다고 엉엉 울어요. 달래주면 배고프다고 엉엉 울어요. 밥을 먹이면 시끄럽고 똥을 싸고 오늘이 며칠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요. 우리 애가 자라서 너희들이 레고를 깨부수고 이불 동굴에서 콩콩 뛰어다니면 자기도 같이 놀고 오겠다 말할 수 있게 될 때까지만 소곤소곤 놀아줄 순 없을까? 무서운 어른들이 우리에게 말을 걸기 전에 미리 작은 방 문을 닫고 숨었지. 어떤 날은 정말 조용히 놀았는데 또 찾아오신 거야. 이제 좀 조용해졌는데, 우리 애도 잠을 더 깊이 잘 수 있는데. 적응되고 나니까 이제 집이 사라진다는 거야. 너희 아빠네 아빠가 이 빌라의 회장님이라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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