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할아버지가 물려준 집. 진영아, 나는 느이 아빠에게 해준 것이 없어. 다른 놈들은 하기 싫어도 버틸 줄 아는데, 지 먹고 살 방법 하나씩 만들어 가는데 이놈의 자식은 학교에 보내기만 하면 계속 밖으로 나오는 거야. 때리고 울고 협박하고 별짓을 다 해 보았지. 집을 나가더라고. 그놈만 찾아다니겠다고 온 동네를 쏘다니며 하루를 버릴 수는 없잖아. 배고프고 아프면 알아서 돌아오겠지. 한두 달을 돌아오지 않더라니까. 그렇게 먹고살기 힘들 때도 가는 길마다 먹을 것을 내어주고 잠잘 곳을 봐주었던 이름도 모르는 어른들이 있었대. 내 아들이었지만 나는 그 자식이 뭔 생각으로 사는지 알 수가 없었어. 그래서 마음이 쓰여. 여전히 어떤 일에 힘들어하고 있는지 말 한마디 하지 않겠지. 말하더라도 그게 왜 힘든 일이냐 묻는 사람들을 보고서는 말을 잃었을 거야. 지는 불편한데, 불편한 마음을 어디에 어떻게 내보내야 할지 몰랐겠지. 큰돈을 세어보는 아빠를 쳐다보았다. 하나 두울 세엣 넷 마흔두울 마흔다섯, 화장실에도 어두컴컴하고 물 냄새가 나는 진영이 방에도 천장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지. 우리 집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옆집도 아랫집도 다 뚝뚝 떨어졌거든. 보일러를 틀고 따뜻한 물을 빼내면 검은 물이 쏟아졌잖아. 이건 배관이 문제지요. 3~40년 된 건물에 무얼 바라겠어요. 돈을 모아서 수리하려 했는데, 그냥 집을 새로 짓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많았어. 우리 아빠가 진짜 집주인들을 찾아보기로 했대. 집을 빌려 사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끼리 떠들어도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 진영아, 우리 이제 곧 예쁜 새집에서 살게 될지도 몰라. 이 돈은 다시 은행에 넣어 둘 거야. 많지. 이 돈이면 붕어빵을 100개 넘게 사 먹어도 많이 남을 텐데. 붕어빵 말고 호떡을 먹고 싶다고? 어디 호떡 반죽을 해볼까?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도 너는 입을 다물고 엄마를 도와 식당일을 도왔지. 나도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를 모르겠어요. 나를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내게서 무얼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엄마는 지금 어떤 것이 필요한지 내가 알 수 있잖아요. 내가 엄마를 도와도 마음이 불편할 수는 있어도 몸은 불편하지 않잖아요. 나는 내게 익숙한 작은 방에서, 나의 도움이 의미 있는 사람들 주변에서 살고 싶어요. 나의 마음을 담을 수 없는 곳은 힘들어요. 지금 내가 앉아 있는 곳, 내가 손을 잡을 수 있는 곳에 서 있는 사람이 나를 보고 편하게 웃고 있다면 알 수 있어요. 내가 여기 있어도 되겠구나. 명령하고 싶지 않아요. 그를 끌어서 강제로 앉히고 싶지도 않아요. 그저 앉아서 물끄러미 나와 같은 것을 보고 있는 사람에게 여기 있는 게 불편하지 않냐고 묻고 싶은 걸 참을래요. 어떤 것이 필요해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는지를 그 사람의 표정에서 찾고 싶어요. 말끔하게 고쳐진 것들을 보고 함께 웃고 싶어요. 여기까지 넘어지느라 고생 많은 당신을 위한 자리가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자리를 치워두고 기다릴래요.
외투를 벗고 가방을 열어 노트를 꺼내고 휴지를 돌돌 풀어 코를 횡 풀 때 흩날리는 하얀 먼지가 햇빛에 빛나면 나는 모든 동작을 멈추고 싶었어. 네가 제지공장에 가서 휴지를 만들어 왔니? 휴지도 원래 휴지이고 싶은 적이 없었던 나무껍질이었어. 곱게 갈린 껍질이 먹고 싶지 않았던 것들을 먹고 허옇게 변해 늘어졌지. 어느 부분에 걸려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던 껍질이었는지. 아니, 나는 중앙부의 밝은 부분이었는데. 말을 잃고, 흩어져야 할 것들이 한 곳에 모여 평평하게 붙어 있으래. 평평하게 붙어 있으라고? 누구 좋으라고? 우린 다시 껍질로 바닥에 떨어져 땅으로 돌아갈래. 어디서부터 왔는지 알 수 없는 먼지가 내 주위를 감싸. 이 먼지는 이제 나의 것인가. 내게 머무는 것뿐이지. 먼지는 먼지의 것이야. 너의 것이 아니야. 높은 곳에 어느 깊숙한 곳에 숨어 있는 먼지를 미워해. 내가 만든 먼지가 아니야. 너에게도 흩날리는 먼지야. 나를 보며 눈을 찌푸리지 마. 나는 너를 보고 찌푸린 것이 아닌데 너는 왜 오해를 하니.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누굴 미워하는 이상한 사람이 아닌데. 너는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는구나.
회오리감자처럼 겹쳐진 나뭇잎을 보면서 가장 깊은 곳에서 피어난 잎은 계절이 변하는 것과 함께 붉게 변하다 모두가 바닥으로 떨어질 때 같이 헤어질 수 있을지 궁금해했어. 이윽고 무거운 눈이 내리고 그를 서서히 덮어갈 때조차도 눈과 얼음과 함께 얼어버리는 거야. 이제 잎이 아니야 낙엽이 아니야 눈과 함께 얼어버린 얼음. 떨어지더라도 더러운 얼음 안에 들어가 버린 겨울의 초록 잎. 그 어떤 관리법을 살펴보지 못하고 되는대로 볶아버린 머리에 엉킬 대로 엉킨 것을 살리지 못하고 잘라내 버렸었지. 괜찮다 이야기하는 사람을, 길을 안내하는 사람을, 먼저 걸었던 사람에게 말을 건넬 방법을 몰랐어. 방법이 있어? 그냥 소리 내면 되는 것을 파마머리처럼 꼬인 잎을 바라보며 다시 나와 같은 머리를 가졌구나. 가볍게 웃을 수 있을 때쯤 알아차렸지. 얼마나 꼬였던 것을 어떻게 풀어냈던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