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05화 / 10장 아나트라의 흔적
장편소설 빛의 여정 105화 / 10장 아나트라의 흔적
"피데라께서 미래가 어찌 될 줄 모르시니 내게 그 사명을 부여해주셨노라. 신 조차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있다니, 그때 당시 나는 이해 할 수 없었다." -선지자의 증언, 성 아나트라-
다음 날. 로이딘은 연습장을 들른 후, 오후에도 도서관에 머물렀다. 잠시 휴식 주간을 주던 베일런은 "조각과 관련하여 단서를 찾아보라"며 시테온과 루네는 자유롭게 놓아주고 로이딘은 다소 억울하게 도서관으로 향하게 했다. 수도원장 얀자도 조각에 대해서 피데라시스에 몰려온 최근 정보들은 그닥 신뢰롭지 않다 했기에 자료를 찾아봐야 했다. 그 날도 필사를 하거나 연구를 하는 수도사들이 옹기종기 책상에 앉아 깃펜을 잡고 있었다. 경전 "선지자의 증언"을 읽고 있던 로이딘은 아나트라의 생애를 따라가고 있었다. 몇 페이지를 자연스레 넘기다가 "피데라가 아나트라에게 사람들이 자신을 알 수 있도록 표징을 만들라 지시하셨다"라는 구절을 봤다.
평소에 이 구절은 넘어가는 부분이었지만 유난히도 그 날따라 그 문장에 꽂혔다. "표징"이라 함은 F자에서 아랫 부분이 빛 줄기로 갈라지는 피데라시스 문양을 의미했다. 아나트라가 치마자락에 그려넣어 깃발로 만들던 당시 문양도 바로 그것이었다. 수도원 내에 어딜 가나 보이는 문양이었지만 표징에 대해 얀자가 어느 날 설교에서 "우리가 피데라를 직접 보지도 듣지도 못하니 지혜로운 자는 표징을 통해 신심을 강화한다"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그 날도 일반적인 설교 혹은 지루한 설교의 한 부분이어서 자연스레 로이딘은 머릿 속 흐름에 맡겨두었다가 구절을 보면서 다시 기억이 떠올랐다.
로이딘은 묘한 끌림에 책상에 책을 펼친 채 다른 책을 찾으러 책장으로 향했다. 순간 그의 환상이었을 까? 아니면 직접적인 개입이었을 까? 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들 사이로 손이 닿지 않는 애매한 꼭대기 층 오른 편에 책등에 "조각난 표징"이라는 제목이 빛이 나면서 강조되고 있었다. 피데라가 로이딘에게 나타나 빛나는 글자로 그에게 말 할 때처럼. 새어나오는 빛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변 사람들도 분명히 목격했으리라 생각한 로이딘이 고개를 돌려 보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로이딘과 같은 책장을 바라봄에도 무심한 듯 있었다. 책을 들고 지나가는 수도사들, 책상에 앉아 정리하는 수도사들 등등 있었지만 빛을 본 이는 로이딘 뿐이었다. 이를 메시지로 금새 파악한 로이딘은 그 책을 빼내야 했다.
손이 닿지 않아서 옆에 있던 작은 발판의자를 가지고 와 딛고 손가락 길이의 두께만 한 책을 잡았다. 꼭대기의 책들은 관리를 잘 안하는 지 책이 빠져나올 때에 로이딘의 눈 가에 먼지가 휘날렸다. "푸푸!" 하며 옆으로 고갤 돌리며 먼지를 뱉어냈고 다시 발판에서 내려온 로이딘은 자신의 책상으로 향했다. 이번 책을 보아하니 가죽으로 된 일기 같아 보였다. 앞면엔 책등과 같이 디보싱(글자나 문양이 음각된) 처리를 한 "조각난 표징"이란 제목이 쓰여 있었다. 놀랍게도 저자는, 아나트라였다. 갑자기 보물을 찾은 듯한 로이딘의 입가에 미소가 띄어졌는데 왜 수많은 책장에 아나트라의 책이 방치되어 있는 지는 다소 의문이었다. 그는 급히 펼쳐보았다.
아나트라가 자신을 소개하며 피데라시스 교단의 많은 부분을 모두 설명하지 못하므로 그 중 오래 기억해야 할 유산인 표징에 대해 설명하고자 글을 썼다며 서장에서 의도를 밝혔다. 아나트라는 표징을 "정체성의 실체화"란 표현을 쓰며, 일반인들이 표징을 보며 신심을 강화한다는 얀자의 설명과 비슷하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중요성을 한 껏 드높이며 덧붙였다.
"시체가 언덕처럼 쌓여 있어도 그 가운데 표징이 그려진 깃발이 서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 가? 작금의 난세에선 많은 세력들이 저마다의 군기를 가지고 전투에 임한다. 군기를 빼앗긴 자들은 제 아무리 범과 같은 용맹함을 자랑하다가도 어느새 쥐 떼 마냥 사방으로 흩어진다."
여러 어려운 단어와 신학적인 용어까지 등장하면서 로이딘은 읽으면서 점차 지루한 역사책이 되어간다 생각했다. 그 때문인지 아나트라가 직접 지었어도 얄짤없이 책장 가장 위로 보내버렸나 싶었다. 어찌저찌 빠르게 훑으면서 페이지를 얼마 남기지 않을 무렵,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미세하게 두꺼운 촉감의 페이지가 손가락에서 넘겨지다가 잡혔다. 의식적으로 찾으려 한다거나 그 부분을 펼쳐 읽고 넘기지 않고서는 두께가 다른 페이지와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페이지 말미에는 아나트라가 심상치 않은 메시지를 남겨놨다.
"때가 차매 빛이 솟아나옴을 아는 자여, 그대가 지혜가 있다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알 것이라. 준비된 유산을 알게 될 것이라."
두 페이지가 붙여져 하나의 페이지로 되어있었다. 또한 오래되어서 종이 주변엔 얼룩이 퍼져있었고 약간의 부풀어진 내용물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서야 왜 페이지가 촉감이 달랐는지 깨달았다. 로이딘은 틈이 생긴 페이지에 손가락을 넣고 살포시 옆으로 밀어내며 뜯어냈다. 서서히 뜯어나간 페이지에는 편지로 보이는 종이가 접혀 가운데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는 그것을 꺼내었고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 지 없는 지 눈치를 봐가며 조심스레 펼쳤다. 읽으면서 편지를 쓴 사람도 내용물을 숨긴 사람도 아나트라 본인이었음을 밝혔다. 그녀가 쓴 편지의 내용에 점차 로이딘의 눈이 커져갔다. 그녀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예측이라도 했기 때문이다.
106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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