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906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구백 육번째
1월 달에 했던 한일정상회담, 양 국 정상은 한일교류의 현장인 사찰 "호류지"를 방문했다. 호류지는 다카이치 사나에의 고향이자 오사카 바로 옆 동네 "나라"현에 있는 사찰로 가장 오래 된 목조 건축물 중 하나다. 607년에 세워졌다하지만 건축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으니 퉁쳐서 7세기로 보자. 당시 천황의 차남이자 왕조의 섭정이며 실권자인 쇼토쿠 태자가 호류지 건설을 명했다.
쇼토쿠 태자는 일본사에 불교를 통치 이데올로기로 삼고 중앙집권적인 왕국으로 거듭나기 위하여 일종의 터닝포인트 역할을 했던 위인이라 보면 되겠다. 백제와 고구려의 승려들에게 사사를 받았고 한반도의 삼국 모두에게 영향을 받으며 인적, 기술적 교류를 활발히 진행시켰다. 여기서 인적, 기술적 교류로는 엘리트 지식인이였던 승려들과 손재주와 세공에 능한 장인들이 일본(당시 왜)로 건너가 도래인 제도(집단 이민)로 머물면서 현지인들에게 능력을 가르쳤다.
백제와 관계가 깊었고 불교와 기술을 전수받은 쇼토쿠의 일본은 백제에 지원군을 보내거나 철광석등의 자원을 보내는 것으로 화답했었다. 호류지란 사찰은 세워진 역사와 그 맥락을 살펴보면 당시 한일 교류가 어떠했는 지를 보여주는 상징물과도 같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금당(대웅전)과 목탑이 좌우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는 것. 이는 백제의 사찰 양식을 따른 것으로 고구려나 신라는 보통 중앙에 탑을 놓고 뒤로 대웅전을 배치하던 식과는 차이를 보인다.
또한 사찰의 기둥 중간부가 배가 부른듯 나온 배흘림 기둥양식은 백제 건축물의 주요 특징이었다. 처마가 완연한 곡선이라 하는데 거기까진 잘 체감이 되지 않지만 보통 사찰과는 다르게 스파링에 서 있는 복싱 선수들 마냥 금당과 목탑이 나란히 서 있다는 게 독특하다. 호류지는 일본 사찰 중에 가장 많은 문화재, 유물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는 배 아플 지경으로 아름다운 "백제관음상"이 경내에 마련된 박물관에 있다.
2미터가 넘는 크기에 녹나무 하나를 그냥 통째로 깎아 조각한 "백제관음상"은 백제 사람이 제작한 것을 정설로 여긴다. 녹나무가 한반도에 나지 않는다 등의 논리로 일본에서 제작된 것임을 강조하는 듯 하지만 외형으로 보아선 이미 백제의 손길이 진득하게 배어있다. 또한 도래인으로써 백제인 장인 집단이 정착하고 만든 예술품일 확률이 높기 때문에 당시 바다를 가운데에 두고 한반도와 일본이 서로 얼마나 왕래했는 지를 나름대로 추정해 볼 수 있겠다.
906화 오늘의 해석 : 문화는 열린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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