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08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108화 / 10장 아나트라의 흔적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108화 / 10장 아나트라의 흔적


"그렇다면 이그네움은?!"

아보테의 디고 궁정 안에서 소리가 크게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디일라의 군대가 쾌속진군을 하는 바람에 한 번 놀랬고, 누가 알려주기라도 한 것처럼 이그네움이 쌓여있는 창고 내지는 채석장이 위치한 지역까지 아디일라의 후방부대가 코 앞까지 도달했기 때문에 두 번 놀라게 하고 있었다. 국왕 아넬피스는 펼쳐진 대륙 지도를 보면서 다른 길로 새어나가지도 않고 마치 이그네움만 노리고 달려오는 것만 같은 진격로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총무대신 비잘과 다른 신하들은 조용히 눈치를 보고 있었으며, 직접 관리 감독을 맡고 있었던 아보 형제들 교단의 대주교는 이미 아나티리캄으로 갔던 지라 디고 대신전의 주교이자 교단 행정을 관리하는 총대리 "아코브"가 대신 국왕 곁에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드릴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경들은... 아냐... 말 좀 해보시오!"

답답한 마음에 아넬피스가 양 손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핏기없는 왼 손과 주름 진 오른 손이 동시에 드러났다. 순간 신하들은 손을 보았고 모른 척했지만 그의 두 손을 신경쓰고 있었다.


총무대신 비잘이 계속 아무 말도 못하고 있자 공작 미울이 말을 꺼냈다.

"아코브 주교, 어디 말 좀 해보시오. 대주교는 방비라도 안해놨소? 그간 우리 병사들 데려다가 교단에서 부려 먹더니 무슨 헛짓거리를 했길래 이리도 쉽게 길을 내주고 있냐는 말이오"

공작의 말에 아코브는 기분이 나빴다. 평소엔 대주교 앞에서 딸랑거리던 놈이 대주교가 궁정에서 사라지자 태도를 달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코브는 참으며 말했다.

"대주교님께서 몇 주전부터 이그네움들을 서쪽의 저장고를 우선으로 옮겨 채워나가라 하셨습니다. 지금은 동쪽에서 놈들이 깊숙하게 들이닥쳐 몇몇 채석장의 손실은 예상되나, 아보께서 축복해주신다면 우리 군에 밀려 침략자들이 더 이상 들어오진 못할 것입니다"

곰곰히 생각하던 비잘은 걱정이 되었다.

"이그네움에 대한 손실이 어찌되었든 불가피하다면, 폐하, 각지에 소집령을 내리심이 어떠하겠나이까? 지금 상주하는 군인들이 한 곳으로 모이기에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합니다"

아넬피스는 얼마만에 꺼내는 민병대 소집 명령인지 싶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미울이 기대감으로 물었다.

"폐하 그러면 제가, 민병대를 지휘합니까?"

탁자 반대편에 있던 아코브가 살짝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이미 그 또한 저희 교단에서 관리하고 있으니까요. 공작님. 아보테의 백성의 삶은 마을 중심이 아니라 신전 중심으로 재편된 지 오래란 걸 아시지 않습니까?"

미울이 무슨 소리냐며 공격적으로 묻자 아넬피스가 조용히 오른 손으로 제지하며 말했다.

"그만, 아코브가 맡도록 하게"

비잘과 미울은 말 없이 고개를 숙이며 아넬피스의 말을 듣기만 했다.


한편, 아나티리캄에 도착한 대주교의 부대는 광이 나는 갑옷과 무기, 화려한 검보라색 솔과 함께 아보의 군기를 높이 들고 이단 추적대 본부로 말 머리를 돌렸다. 대주교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오고 있단 소식에 꼴이 이도저도 아닌 본부의 상황과 몇 일간 잠을 못 잔 추적대장 파사니만에게 불똥이 떨어졌다. 파사니만은 대주교가 오고있단 소식을 검은 비둘기를 통해 접하자마자 대단히 크게 욕을 내 뱉었고 추적대 간부들은 그의 분노를 잠잠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박멸시키려는 이단자들은 보이지 않고 저항만 날로 거세졌다. 산발적인 기습과 함께 민병대인지 눈치 없는 도적떼인지 모를 군소세력들이 판을 치는 바람에 추적대는 예민해지고 일말의 자비조차 없어지고 있었으며 아나티리캄의 백성들은 양 쪽에 끼어서 말 못할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인력난에 아보의 형제들 교단에 광신도들 중 특출난 자를 명예 추적대원으로 앉혀 해소하고자 했지만 그 마저도 여기저기 도망치거나 숨어든 이단자들을 정죄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추적대 본부에서 회의를 할 때 어느 간부가 파사니만에게 가볍게 말을 던졌다.

"대장님, 혹시 메스머가 살아있는 겁니까?"

파사니만이 눈을 감고 있다 뜨지는 않은 채 의자에 앉아 되물었다.

"무슨 소리야? 얼마 전, 헤르논에서 집 무너졌을 때 말인가? 살아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자 그 간부는 말했다.

"굉장히 흡사한 녀석을 보았다는 목격담이... 아시잖습니까 뺨에 대문짝만한 흉터와 검은 갑옷"

파사니만은 눈을 떴고 점차 목소리를 높였다.

"메스머가 돌아왔다면.. 제 정신이 아닌거지. 그 배신자 새끼 잡으면 내 손으로 목을 칠거니까"

이윽고 화두의 중심은 메스머가 아니라 대주교였던지라 바뀌었다. 대주교가 디고에 있는 것 조차 불편한 데 여기까지 친히 몸소 찾아 온다하니 파사니만은 가시침대에 눕는 것만 같았다. 노래하듯이 욕을 하며 대주교를 비난했다.

"그 망할 가면쟁이는, 왜 우리들을 괴롭히는 거냐고! 거기서 이그네움이나 잘 관리할 것이지 말야"


본부로 향하던 대주교 일행은 노을이 지자 숙영했다. 따라온 교단의 간부들과 대주교의 친위대인 신전수호대를 집합시키고 예배를 드렸다. 저 멀리 보이지 않는 곳에 살짝 불과 연기만 날리고 있는 아나티리캄의 땅을 보면서 대주교는 나무로 만든 단에 올라가 설교했다. 마스크는 미동이 없었고 화려한 예복은 이 피비린내나는 음울한 땅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그대들이여, 우리는 구원으로 가는 종말 앞에 이제 담대히 섰고 그 현장에 왔노라. 이 곳 아나티리캄에는 불경하고 불순한 신들이 모여있고 그들을 따르는 우매한 종자들이 숨어 살고 있다. 국왕 폐하와 아보의 말씀따라 정죄를 통해 이 땅을 아보의 품으로 되돌려 보낼 것이다. 그대들은 정화자로 이 곳에 왔으니 아보께서 주신 말씀을 품고 전장에 나가 이단자를 정죄하라. 이단자는 육체의 무한한 고통앞에서 정화되거나 혹은 죽음으로써 땅에 묻혀 정화될 것이다. 이는 잔인함도 아니요, 탄압도 아니니. 되레 인류 모두를 위한 작은 공물일뿐이니라. 나와 함께 온 그대들에게 아보의 축복이 함께하길!"

환호성과 함성이 울려퍼졌다. 높이 든 창날과 할버드(도끼창)이 고슴도치처럼 모여있었고 아직 전투를 경험해보지 못한 갑옷과 무구들이 노을 진 햇빛에 빛이 나고 있었다. 요란한 함성이 들리고 말들이 묶여있는 숙영지가 있음을 알게된 아나티리캄의 난민들은 또 다른 학살자가 찾아왔는 지 두려움에 걸음을 재촉이며 근처를 벗어나고 있었다.




109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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