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09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109화 / 10장 아나트라의 흔적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109화 / 10장 아나트라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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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 수도사를 뭐라 정의할 수 있을 까?"

베일런이 간만에 훈련하는 전투 수도사들을 연습장에 모두 모이게 하고 구두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몇 달에 한 번씩 혹은 루네가 추정컨대 베일런이 내키는 대로 날을 잡아서 하는 이 날 수업은 수도사들이 정좌 자세에서 하품을 인내케 하는 또 다른 훈련이 되었다. 눈빛을 초롱초롱하게 만드는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주는 날도 있긴 했지만.

베일런이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았다. "전투 수도사란?"

연습장이 조용해졌다. 각자 생각하는 온갖 정의들이 있는 지 눈동자들이 이리저리 움직였고 아직 정리가 안된 모양이었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루네였다.

"전투 수도사란, 피데라시스를 수호하고 피데라님의 이상을 투영하는 자들 아닐까요?"

루네의 발언에 베일런이 조금은 놀란 건지, 기쁜 건지 입을 벌렸다.

"루네? 이상을 투영한다라니? 놀라운데...자, 박수!"

일어선 루네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시테온의 표정이 심드렁해보였다. 루네는 오히려 시테온의 표정을 즐기고 있었다. 로이딘은 살짝 질투가 났다. 왠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한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일런이 말을 이었다.

"정답 중 하나라고 말하고 싶지만 더 핵심적인 정의가 있지. 뭘까?"

시테온이 이때다 싶어 손을 들어 말했다.

"피데라시스를 수호하는 것! 육체와 정신을 갈고 닦아 교단에 이바지하는 투사들이요!"

시테온이 루네와 다르게 좀더 직관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베일런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동의했다. 하지만 박수를 독려하진 않았다. 실망한 시테온은 살짝 시무룩해졌다. 그는 팔을 내리면서 물었다.

"그럼 전투 수도사란 무엇인가요?"

베일런이 대답했다.

"지금 너희들이 말한 게 모두 맞아. 전투 수도사들은 각자만의 정의를 내리는 존재들이야. 예컨대 시험을 통과하고 전투 수도사로 거듭난 자들이 대륙 곳곳에서 다양하게 활동 한다는 걸 알잖니? 용병이 되기도 하고 방랑수도사에 해적까지. 그들은 그 나름대로 뜻을 펼치고 있는 거야"

그러자 시테온은 약간 실망스런 대답인지 입을 삐죽 내밀고 조용히 말을 듣고 있었다. 하지만 베일런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시대에 따라, 피데라시스 목적과 방침에 따라 전투 수도사들도 변해왔다 할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정의는 "살아남은 신성한 전사들"이야, 아 훔 라베스트로 인피로 피데라이!""

몇 백년 전의 사어를 구사하는 베일런은 마지막 말로 방점을 찍었다.

"살아남은 자만이 피데라께 만세토록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적들은 전투 수도사들을 비겁한 자들이라 욕했다. 방패를 둘둘 장비하고 다니며 화살을 맞기 싫어하는 겁쟁이들이라며 욕을 하고 조롱했다. 하지만 그들은 전투 수도사들의 생존에 대한 집념과 저돌적인 믿음이 어떻게 조화되는 지 이해하지 못한 채 결국 죽음을 맞이 하거나 도망을 쳤다.


베일런이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날 로이딘 일행을 염두에 두었는지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며 수업을 마무리 지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아 훔 라베스트로 인피로 피데라이! 너희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밖에 없는 목숨 잘 챙기고나서 피데라께 영광을 돌려라. 한 순간의 객기로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말고!"

수업을 마친 후 로이딘은 시테온과 루네와 함께 저녁을 먹고나서 신전 근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네가 검지로 밤 하늘을 가르켰다.

"햐! 저것 봐라 별똥별."

시테온이 초를 치는 대답을 했다.

"우리 동네 텝 오부자는 별똥별이 죽음의 사신이 땅으로 내려오는 거랬어"

눈을 잔뜩 흘기는 루네에게서 살기를 느낀 시테온이 말했다.

"봐바. 로이딘! 죽음의 사신이 바로 왔잖아!"

발로 차려는 루네를 피해 벤치를 빠져나온 시테온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다음 주라고? 조각이 그럼 거기 있다는 거야? 아니면.."

로이딘이 깍지 낀 두 손을 빼며 무릎에 대고 허리를 폈다.

"조각이 그곳에 있는 지는 모르지만 분명 조각과 연관성이 있는 성물은 있다는 거야."

그러자 루네가 말했다.

"야만인들이 내려올 줄은... 하긴 추위가 대륙을 흔들어 놓고 있으니 못 견디고 내려 올 수 밖에"

로이딘은 또한 얼마 전 나누었던 세라와의 대화를 공개하자 시테온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루네는 자신이 귀여워서 껌뻑 죽는 세라를 떠올리며 반가워 했다.

"요즘 감질나게 얼굴을 비치더만, 너한테 간거야? 으휴, 기집애가 어째 남자한테만..."

로이딘은 벤치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너한테도 찾아갈 걸? 마지막이 언제나 주인공의 차례잖아."



라베스트리아지도.jpg "성자들의 무덤"이 위치한 "라베스트리아"

다음 날 금요일 아침, 로이딘과 시테온, 루네가 얀자의 서재로 불려갔다. 마침 수도원 내 정기 회의를 하는 날이라 헤르논 수도원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어서 오게, 친구들"

로이딘 일행은 베일런과 바로사를 비롯한 간부들에게 목례하며 따로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바로사는 표정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얀자가 말했다.

"자네들을 부른 이유는, 아무래도 작전 설명 같은 거지. 우리 교단의 성지를 가장 위험한 때에 찾아 떠나니까 단단히 일러줄 수 밖에."

바로사가 흐트러짐없는 자세로 로이딘을 지그시 바라보다가 얀자에게 말했다.

"원장님, 외람된 말씀이지만 지금 시기에 이런 풋내기 수도사들을 보내면 너무 위험합니다. 그러다간 성묘 수호대와 우리 모두 위험해집니다."

루네가 그 말이 거슬렸는지 반박에 나섰다.

"수비대장님, 그건 좀.."

즉각, 베일런이 루네가 말을 함부로 꺼내기 전에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에 대해 풋내기라 한 것을 항의하는 차원에서 끼어들며 말했다.

"풋내기라니 바로사. 로이딘과 시테온, 루네는 다른 전투 수도사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잖은 가?"

자신의 서재 안에서 소리가 점차 높아질 것 같아 얀자가 서둘러 정리하며 말했다.

"자, 헛소리들 그만하고 모인 이유에 대해 집중하세나."

그러자 다들 살짝 붉어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고 이어서 얀자는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성자들의 무덤은 바슬라를 거쳐 북쪽 동토로 들어가 동쪽 바슬라 강의 끝 자락에 위치 해 있었다. 강의 이름은 바슬라와 인접해 있어 바슬라 강이라 불렸지만 사실상 강 건너의 영역은 모두 북쪽 야만인들이 분파를 이루거나 독립해서 세력을 유지하며 서로간의 견제와 국지전이 일어나는 무법지대였다. 덕분에 성자들이 묻힌 땅은 최악의 입지조건으로 변해있었다. 더군다나 하필이면 피데라시스의 최중요 성지였다. 아나트라와 피데라시스의 유명한 성자들이 묻혀 있는 건 기본이요. 역대 헤르논의 수도원장들이 서거 후에 그곳으로 가서 안식을 취했다. 영원한 추위가 오기 전, 백야의 날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바슬라 강 건너의 동쪽 땅 "라베스트리아"는 피데라시스 공동체가 모여서 도시를 이룬 곳이었으며 북쪽 땅에서 번영한 지역 중 하나였다. 지금은 야만인들의 소란과 약탈, 자연재해까지 겹쳐 폐허만이 우둑하게 서 있는 얼어붙은 땅이 되어 버렸고 성자들의 무덤은 과거 라베스트리아 도시 근처, 요새를 이루고 있는 동굴 무덤이다.

얀자의 설명이 끝나자 바로사가 추가 설명을 덧붙였다.

"라베스트리아"는 피데라시스의 자존심이었어. 그러나 한 순간에 무너질 줄, 더군다나 아나트라 본인께서 묻힐 땅을 직접 고르셨지. 그 땅이 바로 성자들의 무덤이였어. 헌데 이렇게 될 줄을 과연 아셨을까?"

"아셨을까?" 갑자기 로이딘의 머릿 속에 바로사의 말 한마디가 꽂혔다. 왜냐하면 로이딘은 아나트라가 장차 일어날 일들을 위해 준비했고 그것을 편지로 남겨놓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의 감정이 묘해졌다.



110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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