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13화 / 11장 성묘 수호대
장편소설 빛의 여정 113화 / 11장 성묘 수호대
황무지 진창에서 말들이 느리게만 걸어갔다. 달리고 쉬기를 반복하면서 체력 조절을 하는 말들 위에 올라탄 로이딘 일행은 탁 트인 곳에서 몰아치는 추위를 견뎌야 했다. 모두들 옷깃을 목 위로 잔뜩 잡아당겼고 전투용 장갑을 낀 채 온 몸을 둘둘 말고 안장 위에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앉아있었다. 진창을 지나가는 말굽이 튀면서 말의 허벅지와 다리에 진흙들이 묻었다. 간혹 높이 튀어올라 뒤에 따라오는 사람의 얼굴까지 날아오기도 했다. 그 피해자는 로이딘. 진흙이 뺨에 튀자 로이딘은 짜증이 났고 시테온에게 말을 좀 천천히 몰아 줄 수 없냐 말했다. 그러자 시테온은 돌아서 로이딘의 얼굴을 보고는 이내 수긍한 듯 사과하며 속도를 줄였다.
그와 별개로 루네는 거침없이 일행들 앞에 달리면서 시야를 확보해나가고 있었다. 주변 암석지대가 산과 이어져 있었고 녹고 얼기를 반복하니 갈라지거나 부숴진 돌들이 모여져 있었다. 그 앞으로 여전히 진창 혹은 빙판지대가 그들을 맞이했는데 하루 종일 가봤자 거기서 거기인 것 같은 위치에서 저녁이 되자 야영을 했다. 바람을 막기 위해서 암석지대로 들어간 그들은 이그네움을 활활 태웠다. 처음에는 이그네움의 고체 기름을 잘못 태우는 바람에 불길이 크게 솟아 말들이 놀라고 사람도 동시에 놀랐다. 멋쩍은 시테온이 사람들과 동물들을 진정시키며 다시 불 조절을 하며 모닥불에 부스래기들을 던져 넣었다.
세라가 피곤했는지 모닥불 옆에서 끔뻑끔뻑 졸았다. 아직 이야기 꽃이 활짝 피워진 상태에서 세라는 간만에 낯선 곳을 멀리도 왔던 모양인지 불 옆에서 옴짝달싹도 안한 채 석상처럼 있었다. 루네는 세라를 쓰다듬으려 했지만 곯아 떨어진 것 같아 손을 거두었다. 정작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로이딘과 시테온은 여전히 잠을 청하지 않고 있었는데 루네는 돌돌만 양모 담요를 냅다 덮고는 눈을 감으며 말했다.
"내 차례때 깨워.."
루네는 시간이 흘러 자신에게 돌아 올 보초 순서때를 말했던 것이다. 세라와 루네가 잠들자 시테온과 로이딘은 음량을 줄이고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우물가에 있던 그 여자 애 있잖아. 만신전에서 내가 마주쳤어."
시테온과 로이딘은 예전에 넋 놓고 잠시 바라봤던 이성에 대해 집중력을 한껏 끌어올린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루네가 일찍 잠에 든 이유였다.
로이딘이 만신전에서 그녀를 보았는 지 묻자 시테온이 고개를 저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디로 갔나 나는 몰라. 루네는 혹시 알까? 숙소 같이 쓰니까..."
그러자 눈을 감고 자는 줄 알았던 루네가 말 한마디를 던지자 모두 조용해졌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이제 다들 할 일이나 하자?"
조용히 로이딘이 일어섰고 시테온은 주섬주섬 자신도 양모 담요를 덮었다. 아니 그 전에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쑤신 채 땔감들을 더 넣고 담요를 뒤집어 썼다. 로이딘은 방패와 횃불을 든 채 걸어서 묶어 놓은 말들을 한번 살펴보고 다시 돌아와 모닥불 근처 돌에 앉아 뜬 눈으로 밤을 보내기 시작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들어왔다. 방금 말한 시테온이 마주쳤던 여자애도. 지난 아나티리캄에서 마주했던 세상을 떠난 갈리스도. 그리고 이단 추적대의 야영지에서 봤던 검은 불꽃 등. 그렇게 하나하나 생각을 하니 점차 눈꺼풀도 무거워졌다. 그러다 자신의 맞은 편 바위에 희미한 빛이 보이는 것을 잠들 기 일보 직전에 본 로이딘이 놀라 눈을 다시 크게 떴다. 뚫어지게 그 쪽을 향해 바라보았지만 방금 본 빛은 온데간데 없었다. 덕분에 정신이 말짱해진 로이딘이 계속 보초를 서며 문득 조각에 대해서도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가진 조각은 3개. 나머지 조각은 몇 개인지 알 수가 없다. 피데라는 환상으로 로이딘에게 이그네움 원본의 조각은 자신의 조각난 육체이니 이를 회수해 회복해야한다며 조각을 되찾아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런데 조각이 만약 수 백개라면 어떡해야 할까? 이 상태로라면 10개는 커녕 몇 개도 못 건지고 모든 게 끝장나지 않을 까 싶은 깊은 두려움이 일었다.
그는 잠시 목걸이로 만든 주머니를 풀어 조각을 꺼내 손바닥에 나란히 펼쳐 보았다. 안에 일렁거리는 주황빛의 수정들이 로이딘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다. 신이 회복해야 할 자신의 살점들. 백야의 날, 유성처럼 떨어진 피데라의 육신은 떨어지면서 산산이 부수어져 사방팔방 대륙 곳곳에 흩어져 버렸다. 지금의 피데라는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지 못한 채 불완전한 몸으로 이 땅을 배회하고 있다. 그런데 왜 로이딘만 조각을 구해야 하는 것일까? 그는 생각했다. 나와 같은 이들이 여럿 있으면 빠르게 구할 수 있지 않을 까? 그는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에 대해 회의감이 점차 들기 시작했다. 아직 바슬라의 중간은 커녕 막 발을 떼기 시작한 무렵에.
그는 그런 회의감에 피데라가 금방이라도 나타나 의문을 해소하고 답을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에 무력감을 느껴야 했다. 복잡한 마음이 들었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별이 빛나는 밤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 까? 그의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머리를 풀어헤친 루네가 일어나면서 머리를 다시 묶으며 로이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눈이 부은 채 말했다.
"병사, 수고했다. 들어가서 쉬도록"
114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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