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15화 / 11장 성묘 수호대
장편소설 빛의 여정 115화 / 11장 성묘 수호대
검은 비둘기가 달 빛이 비치는 고원을 지나고 해가 떠오르는 새벽을 지나 숲과 강과 바위를 통과했다. 날아가다 나뭇가지에 앉아 쉬기를 반복한 비둘기는 목적지를 잊지 않고 계속 북쪽으로 향했다. 로이딘 일행이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라베스트리아에 위치한 성자들의 무덤에 검은 비둘기가 도착했다. 망루에 있던 성묘 수호대원이 검은 비둘기가 자신의 팔에 안착하는 것을 보고 곧바로 수호대장을 찾아 망루를 내려와 성벽의 계단을 타고 본부로 향했다. 회색지대 같은 눈 덮인 바위산에 마치 꽃이 곳곳에 피어난 듯 일상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알록달록한 수호대원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동굴 입구 왼쪽에 자리한 2층짜리 건물은 성자들의 무덤 입구에 위치한 최후의 보루이면서 성묘 수호대의 본부였다. 이 건물이 무너지는 날엔 성묘 수호대가 끝장나는 날인 동시에 무덤의 입구가 무방비 상태가 되는 날일 것이다. 1층 안쪽에 위치한 수호대장의 사무실에 비둘기의 쪽지를 들고 온 대원이 도착했다. 그는 차분히 그 쪽지를 수호대장에게 건넸고 수호대장 "타리우티"는 그 쪽지를 펼쳤다.
"쉽지는 않겠네만, 그곳에 전투 수도사 3명이 찾아갈 것이네. 도착한 것만으로도 용하니 잘 살펴봐주게. 아나트라와 관련되어 있는 것이니 -헤르논에서 얀자가-"
타리우티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쪽지를 건넨 대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대장님.. 괜찮으십니까?"
타리우티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괜찮으니 돌아가도록. 이런 젠장"
괜찮다면서 뒷말을 내뱉는 대장의 눈치를 보며 대원은 망루로 다시 돌아갔다. 자리에서 일어난 타리우티는 성묘 수호대의 산 증인이었다. 그간의 전투 동안 살아남은 수호대원이었으며 가장 위험한 순간부터 가장 지루한 순간까지 모두 참아낸 수호대장의 적임자였다. 대원들은 그를 보며 편안히 대했고 "족제비 같은 거북이"라 놀렸다. 특유의 염소수염은 그에게는 눈 뜨고 눈 감을때까지 있어야 할 이곳 성묘에서 그나마 찾은 재밋거리중 하나였다. 알록달록한 옷은 남 부럽지않게 입었고 평생을 수호대원으로써 살아왔다보니 보통의 개성으론 눈이 차지 않아 평시에는 왕의 색깔이라는 할 수 있는 보라색 염료가 들어간 옷도 심심치 않게 입고 다녔다. 만약 다른 왕국의 일선 부대의 지휘관이 그런 옷을 입고 돌아다녔더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해임되거나 목이 잘려 나갔겠지만.
비단 옷은 어디서 구했는지 그날은 비단 옷을 입고 돌아다니며 성자들의 무덤을 시찰하고 있었다. 타리우티는 성묘 입구의 오른 편에 위치한 성묘 수도원 신전에 들어갔다. 돌로 된 의자들을 지나치고 가볍게 수도사들과 목례를 하고 지나치고는 수도원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수도원장은 파격적인 타리우티의 패션에 이제는 무감각해져서 조용히 묻기만 했다.
"그 옷은 또 언제 사셨소? 비단인가? 돈도 많으셔라"
날카로운 눈매의 성묘 수도원장 "로델로"는 경전인 "선지자의 증언"을 읽다가 그를 맞이했다. 타리우티는 문 턱에 기대어 한 손으로 쪽지를 든 채 나풀나풀 거리고 있었다. 가볍기 짝이 없는 대장의 모습에 로델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머리를 가볍게 저었다. 타리우티가 말했다.
"헤르논에서 골칫덩이를 보내는 건지 모르겠네만."
로델로가 다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얀자 원장님에게 편지가 왔나보오?"
타리우티가 끄덕이며 말했다.
"예, 근데 전투 수도사 3명이 이곳을 찾아온다 합디다. 염동설한에 아주 좋은 타이밍과 함께 찾아온다더군요"
로델로도 타리우티가 건네준 편지를 읽어보았다. 읽고선 말했다.
"아나트라? 아나트라님은 왜... 순례라고 하기엔 아닌 것 같은데."
타리우티가 말했다.
"무덤 입구를 열어달라고 한다면... 어쩔수 없지만 관에 손 하나 까딱대면 헤르논이고 자시고 어느 누구라도 내버려둘 순 없소"
로델로는 가만히 타리우티를 지켜만 보다가 다시 편지를 돌려주며 말했다.
"말 그대로 이곳까지 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인데...그럼에도 오겠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게 아니겠소?"
타리우티는 잠시 서서 생각을 했다. 아나트라와 관련된 유물이 한 두개가 아닌지라 그들이 오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머릿 속으로 짜맞추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로델로는 간단하게 말했다.
"뭘 그리 고민이십니까 형제, 그들이 와야만 알 수 있는 것을, 못 오면... 그냥 끝난거요"
그렇게 잠시 수도원장과 수호대장은 이므젠을 우려낸 뜨거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성자들의 무덤은 바위산 동굴이며 그 동굴 주변으로 반원형으로 돌 성벽으로 감싸고 수도원과 성묘 수호대원들의 막사와 본부가 위치해 있었다. 피데라시스가 아닌 자들의 눈에는 신성한 동굴을 지키는 요새마을처럼 보였으며 흑심을 품어 동굴로 들어가려는 자들은 요새를 넘지 못하여 뒤쪽의 바위산을 공략하기도 했지만 직각 구조의 절벽과 바위들은 산을 타기가 불가능했다. 설령 그렇게 넘어 오더라도 그 끝에는 등대처럼 위치한 작은 돌탑이 망루처럼 위치해있으니 그곳엔 극소수로 자리를 지키는 수호대원들이 전방의 성자들의 무덤과 뒤의 바위산 절벽까지 아울러 밤낮으로 눈동자처럼 지키고 있었다. 이곳의 수호대원들은 보초를 서고 차례가 끝나면 돌탑 앞 절벽에 놓여진, 성자들의 무덤 입구 근처까지 늘어뜨린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성묘 근처 돌로 된 성벽 한 켠의 마당에서는 수호대원들끼리 맨몸으로 훈련을 강행하고 있었다. 언제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같이 전투 훈련을 하면서 실제 무기를 가지고 잔뜩 긴장들을 한 채 실전처럼 싸웠다. 대원들은 호리호리한 체형의 족제비인 수호대장 타리우티가 어떻게 저리 싸움을 잘하고 거구들을 꺾어내는지 신기하게 바라만 볼 뿐이었다. 타리우티가 주문을 쓴 적을 본 사람은 거의 없지만 창칼을 다루는 대부분의 전투에서 날렵하게 이동하며 지칠 줄 모르는 체력으로 대원들을 이끌었다. 그 와중에 피가 튀긴 얼굴에 늘어진 염소수염은 전투가 끝나고 긴장이 풀린 대원들의 웃음소재가 되곤 했다.
성묘 수호대 외에도 오른 편에 위치한 수도원의 수도사들도 사실상 이름 값에 밀렸을 뿐 성묘 수호대 못지 않은 전투력을 보이거나 능가하기도 했다. 이들은 수호대원들과 같이 밥 먹듯이 훈련했지만 일상에서 해야할 일들이 더 많았기 때문에 비교적 비전투적인 역할에 집중했다. 한번은 풍년 기원제를 앞에 두고 기념으로 로델로와 타리우티가 1대 1 검 대련을 한 적이 있었다. 이어지는 로델로의 흐뜨러짐 없는 자세와 날을 튕겨내는 방어는 타리우티의 검술을 꺾을 뻔 했다. 수도원의 전투 수도사들과 성묘 수호대가 초창기에는 갈등도 있었고 폭력사태 또한 있었다. 그리고 수호대장이나 수도원장이 교체되면서 그들의 성향에 따라 세력다툼의 장이 된 적도 있었지만 계속 이어져 왔던 몇 번의 전투로 이제는 서로를 농담삼아 "집단 부부"라 말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116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당신의 좋아요, 구독은 작가에게 창작의 에너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