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16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116화 / 11장 성묘 수호대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116화 / 11장 성묘 수호대


11장성묘수호대타이틀.png

새벽. 대륙의 수많은 동굴 중 어딘가에 핏빛 늑대가 다시 시체를 물어왔다. 온기를 잃어버린 싸늘한 육체는 힘 없이 늘어져 있었고 목덜미를 물고 있던 핏빛 늑대는 시체더미에 가져다 내려놓았다. 절망의 추종자가 사는 이곳의 동굴은 여타 다른 동굴과 외형이나 구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이 날만큼은 예외적으로 무수히 많은 절망의 추종자들이 집단으로 모여 동굴 깊숙히 놓여진 제단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눈들이 배회하니 추종자 각자가 데려온 늑대들도 떼를 지어 동굴 속에 머물고 있었다. 동굴의 본 주인이 무리 가운데 일어서서 제단으로 향했다. 돌로 쌓고 인골로 이루어진 뼈 더미로 만든 제단에는 나무 그릇에 신선한 피가 모아져 있었다. 천장에서 바라보노라면 알 수없는 문양의 원형 진이 제단을 중심으로 응고된 피로 그려져 있었다.


동굴 주인은 그릇을 들고 손으로 피를 적셔 자신의 얼굴에 발랐다. 그리고 뼈와 피 칠갑의 동굴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한 검은 보석이 박힌 둥근 머리의 지팡이인 "홀"이 손잡이 반이 부러져 나간 채 제단 위에 고스란히 놓여져 있었다. 동굴 주인은 피로 적셔진 손으로 홀을 잡았다. 그리고 그들만의 주문을 읆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장 안쪽의 추종자들이 따라 부르기 시작하더니 바깥으로 퍼져나가듯 모든 추종자들이 주문을 읆조리며 동굴 안을 목소리로 가득 채웠다.


핏빛 늑대들은 자신의 털을 핥거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자들과 싸우면서 생긴 상처를 혀로 핥고 있었다. 아니면 누워서 잠을 자거나 시체 더미 중 하나를 골라 포식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인들이 무엇을 하는 지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동굴 주인이 모두가 합창을 하자 홀을 더욱 힘 있게 붙잡으며 또 다른 주문을 외웠다. 사방에는 추종자들의 주문이 울리고 제단 앞에서는 동굴 주인의 주문이 읆조려지자 제단 앞 빈 공간에서 일렁거리는 검은 안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문이 길어질 수록 안개는 보다 명료해지고 색감도 짙어졌다. 검은 안개가 더욱 더 커지다가, 홀을 높이 든 동굴 주인이 오른 손으로 치켜 들고 주먹을 쥐니 뒤에 있던 추종자들이 한 순간에 조용해졌다. 확장하던 안개도 멈추더니 일렁거렸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자 동굴 주인이 천천히 입을 뗐다.

"주인이여 말씀하소서"

추종자들은 감히 눈을 그쪽을 향하지 못한 채 바닥을 바라보며 자세를 낮추었다. 동굴 주인만이 안개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안개 속 존재가 말을 했다.

"오랜 세월 동안. 하늘은 갈등의 연속이었다. 두 힘이 서로를 끌어당기면서 생겨난 긴장은 오로지 너희 세계가 맞이해야 할 몫이였지. 그러나 하늘에서도 찾기 힘든 놀라운 기회가 오늘 오지 않았느냐? 바로 내가 그 오랜 갈등을 끝내고 하늘을 재편하려하니 더 이상의 쓸모없는 논쟁과 지식과 철학은 모두 나의 진노에 녹아내렸노라. 빛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다. 영광 따윈 없어도 어둠으로 살아갈 수 있다. 너희 족속은 바야흐로 적응의 동물이 아니더냐?"

동굴 주인이 조용히 허리를 숙였다. 안개 속의 존재가 계속 말하기를 기다렸다.

"오늘 모인 나의 자녀들이여. 적들에게는 가장 불완전한 이 시기에, 그들의 진영을 흔들어라. 흔들고 불태우며 베고 피를 취하라. 절망이 무엇인지 그들에게 똑똑히 심어주어라. 검은 불이 내려치고 얼어붙은 하늘을 바라 본 채 죽는 순간 너희는 네 주인이 승리하는 것을 목도하리라"

그러자 모든 추종자들이 더 낮게 엎드리며 그 주인에게 복종의 표시를 보였다.


동굴 주인이 절망에게 물었다.

"주인이시여. 최근 일어난 일에 나타난 자가 정말 당신의 대적이 맞다 생각하십니까? 또한 그를 따르는 한심한 풋내기들은 어찌 처리해야 할지요"

그러자 동굴 안에서 커다란 웃음소리가 울렸다. 깜짝 놀란 추종자들이 더욱 낮게 자세를 엎드리고만 있었다.

"하, 피데라가 그런 꼴로 돌아다니는 것을 보니 참으로 우습더구나. 내 애완동물 하나도 힘겹게 꺾는 것을 보니 안쓰럽기까지 하더군. 다만 쉽게 볼 수 없는 장난을 치는 것을 보니 피데라인 건 확실하다. 피데라는 자기 살덩이를 찾기까지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며 그동안 천계를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가증스럽게도 그것을 대신 찾아주려는 그 애비의 그 새끼가 있으니. 지금은 위협이 되진 않더라도 조각을 찾으러 다니고 있으니 사전에 싹을 잘라야 한다. 그것들을 찾아내 이 제단으로 끌고 오라. 너희 손으로 그들의 피를 바쳐 나를 기쁘게 하라!"

동굴 주인이 허리를 숙이고 추종자들은 바닥까지 엎드려 그를 경배했다. 그렇게 짙어진 안개가 다시 점차 뿌옇게 변하더니 흩어지기 시작했다. 동굴 주인은 그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홀을 들고 있었다.


"들었는가... 절망께서 내린 명령을"

동굴 주인의 말에 모든 추종자들이 합창하듯 외쳤다.

"예! 들었나이다."

"피데라의 조각을 찾고 다니는 그 조무래기들을 잡아와야 한다. 산 채로. 주인님이 원하신다."

추종자들이 의식을 모두 마치고 일어서서 자신의 늑대를 찾으러 갔다. 동굴 주인은 제단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다 조용히 읆조렸다.

"바야흐로, 종말의 날이다."



117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당신의 좋아요, 구독은 작가에게 창작의 에너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