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17화 / 11장 성묘 수호대
장편소설 빛의 여정 117화 / 11장 성묘 수호대
백야의 날 이후로 날씨가 매서워졌다. 혹한의 바람이 옷 소매를 파고 들었고 하늘에서는 난데없이 눈이 계속 내리더니 집을 파 묻었다. 비가 내려와 언덕에서 아래로 모든 것을 쓸어 보냈다. 쨍쨍한 하루에 먹구름이 끼더니 우박이 쏟아져 주먹만한 크기로 대지를 내리치기도 했다. 이러는데 무슨 농사가 되겠는가? 농부들은 좌절하고 죽어버린 싹을 가지고 다시 묻어보려는 현실 부정까지 했다. 신에 대한 집착이 더 커지거나 혹은 신을 더 이상 의지 하지 않는 냉소자들이 생겨났다. 이미 최악의 상황으로 와 있거늘 그들에게는 심판의 사후세계가 두렵지 않았던 것이다. 변덕스러운 날씨가 자유자재로 하루하루 변해가며 대륙을 얼리면서 동시에 말려 죽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살고자 천만다행으로 겨울에도 살아남는 겨울수수를 밭에 뿌리고 최악의 기근을 면했지만 그마저도 수수를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아 굶주려 죽는 자들이 속출했다.
아보테의 이그네움이 나와 강렬한 열기와 함께 사람들의 목숨을 연장시켜 주었다. 불확실한 날씨에 점차 금과 은화는 값 어치가 떨어지고 생존을 위한 이그네움만이 그에 대등한 가치가 되어 화폐를 대신 했다. 불씨 운반자들은 대륙의 동남쪽을 훑으며 조공외교를 하며 자국의 이그네움을 주고 상대의 자원을 싹쓸이해갔고 대부분의 세력들이 아보테에 존속되어갔다. 북쪽은 혹한을 견디는 부족들이 살아가고 있었으나 그들도 견디지 못할 추위가 한계치를 넘어 찾아오니 아보테와 관계를 맺기를 원했고 이그네움을 얻기 위하여 얼음 물에 뛰어들어가서라도 물고기를 잡아와야하는 것이 모든 부족원의 의무가 되었다. 점차 걷어가는 자원량은 많아지고 동시에 부족장들의 찌뿌려지는 눈살도 많아졌다. 아보테를 침략하고 있는 아디일라를 비롯한 많은 북쪽 지방의 세력들이 살기 위하여 타 부족을 정복하거나 학살하고 약탈했다. 그들의 호전성은 영원한 추위, 저주받은 추위가 오기 전에도 남 달랐으나 이때부턴 사람이 아닌 짐승의 그 무언가와 같았다.
"하얀 도살자" 북동쪽의 유목부족이자 도적떼인 그들은 서쪽의 절망의 산맥까지 두루두루 돌아다니며 다른 부족들을 약탈하고 멸망시키는 것을 업 혹은 취미삼아 살아가고 있다. 이들의 호전성은 아디일라와 나란히 달렸으며 서로를 지독한 라이벌로 여기고 있었다. 입으로만 떠드는 게 아닌 실제 행동으로써 때만 되면 아디일라를 침략하고 아디일라에게 침략받기를 반복했다. 아디일라에겐 피네로란 왕이 존재하지만 하얀 도살자들은 부족장의 호칭에 만족하며 자기네가 불로야를 섬기는 부족들 중 힘으로써 으뜸임을 자부심으로 살아간다. 전사의 신 불로야는 북쪽 지방 사람들이 모시는 신이며 37번째 메톤이라는 얼음 별이 녹아 세계가 펼쳐지고 그 안에 첫 번째 창조물 불로야가 태어났으며 그가 다른 얼음 별이 녹으면서 태어나는 불로야의 적들을 짓밟아 없애 세상을 구한다는 신화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전쟁이 일상화된 죽음과 피의 명예, 약자를 멸시하는 것 모두 불로야를 섬기는 자들의 특징이라 볼 수 있다.
하얀 도살자들이 불로야에게 영광을 돌리겠답시고 불로야를 섬기는 다른 부족을 멸망시킨 몇몇 사건들에 대해서 서로 합리화하기 바쁘거나 직접 언급하는 날엔 인간 사냥감으로 쫓기게 된다. 결국 또 다른 살육으로 회개하는 차원에서 무마한다. 그 중엔 라베스트리아의 성자들의 무덤을 침략한 사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간 라베스트리아가 추위에도 점차 입지가 탄탄해지는 도시가 되어가는 것을 본 하얀 도살자들은 라베스트리아 주변 부의 작은 마을들을 약탈하고 부수며 적들이 전면적으로 행동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런 술수에 넘어가지 않자 백야의 날 이후, 번성의 영광이 저무는 라베스트리아를 지켜봤던 그들은 본격적으로 도시 침략에 나선다. 천 여명이 넘는 베테랑 병사들이 도시를 에워싸는 건 주류 부족에서도 쉽지 않은 동원력이었다.
반면 라베스트리아 도시의 시민들은 제 몸 하나 지킬 것 하나 없는 상태였고 그나마 성자들의 무덤을 하루도 빠짐없이 지키고 있던 성묘 수호대와 성묘 수도원의 전투 수도사들이 넘어 들어오는 하얀 도살자의 병사들을 막았다. 얼고 녹기를 반복한 성벽의 한 부분을 공성추를 집중해서 부수어버리는 바람에 틈이 생겨 크게 분위기가 요동쳤으나 흐뜨러짐 없이 위치를 고수하며 싸운 성묘 수호대는 적들을 말 그대로 썰어댔다. 조금 재빠르다 싶은 하얀 도살자의 병사들 중 몇몇이 수호대를 피해 안쪽 깊숙히 무덤 인근까지 들어오고 도시의 사람들을 공격하려던 찰 나엔 전투 수도사들이 그들을 박살냈다. 이때 타리우티는 성벽에서 무너진 다른 성벽 사이를 오고가며 진두지휘했으며 두 세명의 거한들과 맞서도 끄덕없이 잘만 버텼다. 도시의 시민들 중 몇몇은 전장의 앞 열에서 저항하다가 쓰러졌다. 성묘 수호대와 전투 수도사들도 길어지는 전투에서 하얀 도살자의 창칼에 점차 쓰러져갔지만 결국 기세가 기울어진 건 하얀 도살자들의 병력이었다. 이들은 묘지의 입구에 깔려진 타일도 밟지도 못하고 후퇴해야만 했다. 성벽이 뚫려버린 도시를 끝까지 지켜낸 시민들과 수호대 그리고 수도사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이 날을 기념했다.
모두들 도망가는 하얀 도살자들을 보면서, 누가 진짜 "하얀 도살자"들인지 욕을 해댔다. 말을 타고 도망가는 부족장 "고이부"는 두 귀로 그 욕을 똑똑히 들었다. 그는 잊지 못할 치욕을 가슴에 새겼고 한이 서려 있는 자신의 칼날을 언젠가는 직접 성묘 수호대에게 선사하리란 맹세를 다짐했었다. 현재, 고이부는 아디일라의 침략 소식에 잠시 계산을 하고 있었다. 지금 집을 비운 아디일라의 땅을 침략할 까? 아니면 갈수록 인력이 줄어들고 있는 성자들의 무덤을 공략할 지 말이다. 최근에 고이부에게 꽤나 아름답고 화려한 여성이 그에게 알현을 요청했다. 그녀는 자신을 하얀 도살자들에게 도움을 줄 마법사라 소개했다. 그리고 자신이 데리고 온, 입이 피로 물들어진 늑대의 털을 손으로 빚으며 대기하고 있었다.
118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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