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18화 / 11장 성묘 수호대
장편소설 빛의 여정 118화 / 11장 성묘 수호대
하얀 도살자의 부족장 고이부를 만나게 된 이름 모를 여성은 주변 남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고 그 시선을 즐기고 있었다. 이 추위에 무희와 같은 노출이 있는 복장을 하고 있음에도 전혀 미동도 없었다. 주변에 덩치 큰 남자들이 가죽과 털을 꽁꽁 싸맨 채 있는 것과 대조되었다. 늑대는 당연히 고이부가 있는 처소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마치 여기서 기다리라는 명령처럼 가만히 쓰다듬고 손을 거두고선 여성은 늑대를 두고 들어갔다. 바깥에서 늑대와 경비병이 서로 눈치를 주고 받았고 미세하게 으르렁 거리는 느낌을 감지한 병사들은 잔뜩 긴장한 채 늑대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고이부는 그의 부하 몇 명과 함께 고기를 뜯고 있었다. 실내에 배치된 모닥불이 열린 천장으로 연기를 올려보내고 있었다. 이곳은 거실인 듯 했으며 안 쪽으로 다른 방들이 보였고 그곳에도 병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고이부는 문을 열고 여성이 들어오자 뼈를 바르다 슬쩍 문을 향해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미소를 짓더니 손가락에 들었던 뼈를 치켜 들고 여성을 가르켰다. 그러자 부하들도 술을 마시고 고기를 뜯다 시선을 그 쪽으로 향했고 고이부를 다시 바라보며 이내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차분히 걸어오는 여성의 발걸음과 그녀의 표정에는 두려움이란 전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지근거리까지 다가오자 웃던 부하들이 당황한 듯 보였다. 고이부는 흥미로운 지 말 없이 지켜보다가 입을 뗐다.
"춥지도 않은가? 잡아온 여자는 우리 부족에도 많아서 창녀는 필요 없는데."
찾아온 손님에게 아쉬운 소리 하나 않겠다는 엄포인지는 몰라도 무례함에도 끄덕없는 그녀는 오히려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족장님. 반갑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제 몸을 팔러 온 게 아니라 능력을 팔러 온 거 라서요"
부하들이 기름기 가득한 입을 오물오물거린 채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고이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뼈를 거두고 살점을 자르고 있었다. 다시 그녀가 말했다.
"제 이름은 사벨, 일종의 마법사 길드라고 할 까요? 소속된 일원 중 한 명이며 길드의 발전과 구성원의 복리증진을 위해 용병이자 자문가로써 활동하고 있습니다"
고이부는 하얀 도살자의 호전적인 분위기와 공포가 일상인 이곳에서도 무모한 잡상인들이 찾아오는 것을 한 두 번 겪은 게 아니었다. 그들 대부분은 설득하지 못하면 자신이 왔던 곳으로 도망 갈 수 없이 후회한 채 노예가 되거나 희생자가 되어야 했다. 무슨 깡인지 몰라도 그 앞에 서 있는 추위도 잊은 얇은 옷을 입고 마법사라 칭하는 사벨이라는 여자는 무슨 꿍꿍이일까? 하며 고이부는 생각했다. 그는 사벨에게 물었다.
"우리는 마법사의 도움은 필요하지 않다! 불로야께서 우리를 인도하시며 불로야께서 우리의 적을 박살낼 힘을 주셨기 때문이지. 그래서 용병도 필요없는데 말이지?"
눈을 가늘게 치켜 뜨며 허리를 앞으로 숙인 채 앉은 고이부는 불의 열기가 얼굴에 닿음을 느꼈다. 불 건너편 사벨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장난이라도 치고 싶은 지 허공에다 손가락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듯 하나하나 튕겼다. 그녀는 답했다.
"한 번 맞추어 볼까요? 흠. 족장님의 마음에는 두개의 선택지가 놓여있군요. 하나는 아디일라, 하나는 라베스트리아. 맞죠?"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고 부하 중 한 명이 다혈질인지 일어나서 칼집을 잡고 칼에 손을 대었다. 고이부는 곧바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놀란 채로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물었다.
"어떤 놈이 발설하더냐? 여기 있는 놈이냐? 말하지 않으면 혀를 잘라버리겠다."
사벨은 정중히 허리를 숙이고 일어서더니 말했다.
"진정하십시오. 누구에게도 듣지 않았습니다. 족장님을 찾아오기 전, 저를 필요로 한 곳이 어디일 까? 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탐구했습니다. 그저 인연이 닿은 것일 뿐입니다"
고이부가 답했다.
"건방지게 나를 염탐이라도 한 것이냐?"
사벨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족장님. 제가 따르는 분께서 계시와 마법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동일하게 살펴보십니다. 그리고 길드가 의뢰를 받기위해 고군분투 하는 모습을 보시고선 가장 필요로 하고 저희가 헌신할 수 있는 곳을 향해 알려주실 뿐이죠"
노려보고 있던 고이부는 잠시 그대로 있었다. 사벨은 흔들리지 않았다. 몇 초간의 정적이 있고나서, 서 있는 부하에게 앉으라며 고이부는 손 짓했다. 그는 궁금해졌다.
"그럼 그게 어쨌다고 내게 온 것이지? 네가 나를 위하여 아디일라와 라베스트리아를 동시에 박살이라도 낼 수 있단 말이냐?"
사벨은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손가락을 살피는 딴 짓을 하다 시선을 고이부에게 맞추고 말했다.
"아디일라는 대륙에서 으뜸인 아보테를 침략하려는 목적이 분명하고 모든 부족원이 전쟁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 기세가 매우 강합니다. 동시에 도시국가 바슬라에서도 아디일라가 남쪽으로 출정하는 바람에 빈 집이 된 그들의 영토를 지켜주는 후방부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둘은 잠시 뭉친 이익동맹입니다. 만약 족장께서 아디일라를 먼저 치신다면 피네로의 목을 자르는 것은 쉬우실 것이라 믿지만 아디일라의 본토를 두고 바슬라와 연이은 전쟁을 치뤄야 할지 모릅니다."
피네로에 대해 악 감정만이 살아있는 고이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고 사벨은 아디일라를 치는 선택지에 대해 에둘러 반대했다. 그러자 고이부는 미간을 찌뿌리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차 풀렸고 무표정한 그의 얼굴은 납득이 간 모양인지 억양없이 물었다.
"바슬라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군. 그 동맹은 언제 뒤틀릴 지 모르는 법이다."
사벨은 그의 말에 동의했다.
"맞습니다. 아보테를 어느정도 정리한 후에는 누가 먼저 뒤통수를 먼저 쳐볼 지 눈치 싸움을 하게 되겠죠"
고이부는 먹던 고기가 사벨에게 정신이 팔려 내키지 않은 지 접시를 멀리 두었다. 잠시 술로 목을 축이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럼 너는 라베스트리아를 치는 게 맞다고 생각하나?"
사벨이 답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도시민, 주민 할 거 없이 라베스트리아를 떠나 거의 사람들이 없습니다. 성벽을 보수할만한 인력도 부족할 따름이죠. 그들의 병사들이 직접 밭을 가꾸고 벽을 보수하고 얼어붙은 강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으며 온갖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찾아오는 자들까지 막아내야 합니다. 빛의 신 피데라를 섬기는 피데라시스 신자들이 그곳에 모여 성지를 만들고 보호하고 있지 않습니까? 자기네 성자들인지 주인인지의 뼈더미를 모신 무덤이 있구요. 수도원의 인력도 빠지고 그곳의 수호대도 크게 줄었습니다. 저는 하얀 도살자가 아쉽게 공략에 실패한 기억을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다시 한번 칼을 꺼내 친히 그들에게 휘두르신다면 그들의 피가 저들이 지키던 무덤에 충분히 적셔질 것입니다. 무덤의 보화는 오로지 족장님의 것이요. 거짓 신 중 하나인 피데라를 섬기는 불신자를 몰아낸 불로야의 참된 아들이심을 만천하에 알릴 좋은 기회입니다."
고이부는 그녀의 말을 음미했다. 그런데 하나 내키지 않은 게 있었다. 어찌하여 사벨은 하얀 도살자가 라베스트리아를 공격해서 대패했던 사건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외부인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소식 중 하나였거늘. 그가 묻자 이번에 사벨이 조용히 그를 바라보다 웃으며 말했다.
"라베스트리아, 본래 불로야님의 땅 아닌가요? 저는 원래 거기 출신입니다. 라베스트리아의 피데라시스들이 개척을 하는 바람에 저는 본향을 떠나 살아남기 위해서 정처없이 떠돌아야 했습니다. 따라서 하얀 도살자의 복수가 저에게도 복수가 되는 셈이죠."
고이부와 사벨이 타오르는 불을 가운데에 두고 복수의 눈동자로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119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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