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19화 / 11장 성묘 수호대
장편소설 빛의 여정 119화 / 11장 성묘 수호대
로이딘 일행이 헤르논을 떠나온 지 2주차를 맞을 시점이었다. 시테온이 빵을 급하게 먹어 체하는 바람에 이틀 내리 고생을 해야했다. 신경은 예민해지고 말도 안한 채 서로 갈 길만 가다보니 어색했다. 다음 날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밝아진 시테온을 보며 다들 안심이 되었지만 말 타고 달린 지 고작 한 주가 흘렀을 뿐이다. 사람들이 자주 다녀 희미하게 드러난 길과 함께 갈림길 사이에 박힌 쓰러지기 일보 직 전인 표지판, 마을의 폐허가 그들이 옳게 가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한 명이 잘못 먹다 속을 완전 비운 뒤 엄청 허기 질 그 날, 루네가 오후에 각자 장소를 정하고 짐을 풀 때 인근 숲으로 활을 매고 달려나갔다. 로이딘과 시테온은 말리려 했으나 루네는 "어린아이 보듯이 잡지 말고 모닥불이나 제대로 피우고 있으라"며 말을 타고 갔다. 로이딘과 시테온은 저 멀리 사라지는 루네가 걱정이 되었지만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저녁의 한기에 몽땅 얼어버릴 거 같아 얼른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주변에 마른 뗄감과 나뭇가지를 구해와 더미를 쌓았다. 이그네움 가루는 무엇보다 마르지 않은 수분을 머금은 뗄감에도 불이 붙는 바람에 야외로 나와있는 자들에겐 희망과도 같았다.
이것저것 나뭇가지로 틀을 만들어 쌓고 그 틈으로 여러 잡동사니를 집어 넣고는 이그네움 기름 조각 몇 개를 그 안에 넣었다. 시테온이 부싯돌을 철 조각으로 긁어 불똥을 튀게 했다. 한 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지라 이미 불은 기름 조각에 닿아 위로 타올랐다. 이그네움에 타는 불은 일반적인 불과 다르게 맹렬히 그리고 집어 삼킬듯이 커지다가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초반에 신경써서 관리하지 않으면 불이 다른 곳으로 붙어 일이 커지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시테온이 자신의 머리카락 끝을 태워 먹는 바람에 그 후론 불을 붙일 때마다 그는 더 이상 장난을 치지 않았다. 모닥불을 넘나들려고도 하지 않았다. 활활 잘 타오르는 불을 관리하고 있는 시테온과 달리 로이딘은 말에서 짐을 내리고 모두의 짐을 풀어 담요로 바로 쓸 수 있도록 배치했다. 그리고 근처 시냇가가 없는지 물을 찾아보고 물을 뜨러 갔다.
고원에서 한 주를 보내는 동안 시냇가는 커녕 물 웅덩이도 보이지 않았던 하루가 있었다. 그때는 물을 어떻게든 아끼고 아낀다고 했으나 물 주머니가 바닥이 되어가자 다들 걱정이 되어 앞으로 나아갈 여력이 없었다. 하루종일 주변을 찾다 찾다가 산 쪽에 작은 구멍이 있어 가보니 동굴 입구였고 동굴의 석순에서 물이 쪼르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감격한 그들은 석순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물을 받아 마셨고 주머니를 채웠다. 말들에게도 물을 주니 풀 뜯어 먹는 것보다 더 크게 입을 벌려 허겁지겁 마셔댔다. 그때 로이딘도 잠시 인내를 내려놓았던 모양인지 대놓고 친구들에게 그냥 당분간은 여기서 머물다 갈 것을 제안했다. 물론 해갈이 되니 다음 날 동굴을 떠나게 되었지만.
루네가 숲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소리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살금살금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녀가 사냥을 나서기로 한 것은 모닥불을 피울 자리를 알아볼 때 멀리서 여러 마리의 동물들이 풀을 뜯다 방향을 틀어 도망가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중 한 마리를 잡는 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화살을 시위에 매긴 채로 한 발 한 발 움직였다. 수풀 사이에 무언가 움직인다면 바로 화살을 날려보낼 준비를 했다. 그녀가 말에서 내린 후 왼쪽 뒤 멀리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로이딘과 시테온이 불을 붙인 모양이다. 서서히 어두워지는 저녁 노을 속에서의 숲 속은 새가 푸드덕 거리는 소리와 함께 세찬 바람 소리 그리고 그 안에서 미세하게 흘러 들어오는 동물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앞으로 나아 갈 수록 흙이 뭉개지는 젖은 땅이었고 거기엔 사슴의 발굽들이 찍혀 있었다. 미소를 지은 루네는 조용히 발굽을 따라갔다. 수풀 사이 사이로 몸을 숨겨 나아가다가 일렁거리는 실루엣이 앞에 보였다. 발굽은 여러 개 였는 데 지금 앞에 보이는 것은 한 마리 뿐이었다. 무리가 잠시 흩어지면서 풀을 뜯고 있는 모양이다. 살며시 다가가는 루네의 모습이 만약 사람이었다면 보이지도 않을 거리였겠지만 사슴은 금새 고개를 치켜들고 한번 바라보더니 도망치려 방향을 틀었다. 발굽이 떠나가기 전 화살이 사슴의 목을 맞추었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힘을 잃은 사슴이 균형을 잃다가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연이어 날아오는 두 발의 화살이 몸통을 맞추면서 사슴을 무력화시켰다. 풀 사이로 달려와 모습을 드러낸 루네와 저 멀리 도망가는 다른 사슴들. 루네는 눈을 희번득 뜨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슴을 잠시 손으로 눈을 가려준 뒤 고통없이 보내주었다.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는다. 오늘은 루네가 잡은 사슴은 살기 위해 먹는 쪽으로 희생되었다. 안장 뒤에 사슴을 매달고 모닥불로 돌아갔다. 멀리서 말이 달려오는 것을 보자 로이딘과 시테온이 안심이 되었다. 시테온이 기대를 하면서 로이딘에게 말했다.
"햐...진짜 잡아온 것일까? 아니면 포로를 잡아온 것일까?"
로이딘도 기대하며 식사를 할 준비를 했다.
"지금 허기로는 후자도 나쁘지 않지"
달려오는 루네와 뒤에 있는 긴 물체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그림자에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반면 루네는 모닥불을 피우고 서 있는 두 사내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감지했다. 그녀는 잠시 자신이 먹이를 주러가는 어미새처럼 느껴졌다. 입만 벌리고 있는 아기새 두 마리. 그녀가 도착하자 뒤의 물체가 사슴인 것을 보고 로이딘과 시테온은 환호했다. 시테온이 말했다.
"좋다 좋아! 로이딘이 말했듯이 식인도 고려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루네가 몸에 끼운 활을 빼면서 답했다.
"그러면 바로 너부터 잡아 먹어야겠지."
배고파서 응대할 힘도 없었지만 사슴을 바라보면서는 기운이 났다. 손질은 시테온이 하기로 했다. 루네도 사냥꾼으로써 쉽사리 잘 해내었지만 텝 오부자의 수습 학생이던 시테온은 동물의 창자로 점괘를 보던 것을 옆에서 보조했기 때문에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해체하는 손질이 일상이였던지라 전문가였다.
시테온은 팔 소매를 걷어부치곤 가죽을 벗기고 내장을 걷어내고 나서 사슴 고기를 잘라내었다. 곧 타오르는 불 위에 나무 막대기로 꽂은 사슴 고기가 익어갔다. 불이 워낙 세서 겉만 타기 쉬워 요리사가 된 로이딘은 이리저리 사슴 고기들을 뒤집고 굽기를 반복해야 했다. 익은 사슴고기에서 육즙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소한 향기가 모닥불 주위 전체를 돌았다. 머나먼 야생에서 곁들어 먹을 것이 있다는 건 사치에 불과했지만 빵은 있었다. 그들은 빵과 함께 간만에 맛보는 사슴 고기를 입에 넣었다. 루네가 자기가 잡은 사슴에 감탄을 했다. 박수를 쳤다. 그녀는 눈을 위로 향하며 입 안 가득 넣고 육즙을 즐기며 괴성을 질렀다.
"우워어! 이 맛이지!"
체면이라곤 생각 안하는 그녀 덕택에 오늘 로이딘 일행은 포식을 했다. 로이딘도 사슴 뒷다리를 뜯으며 행복에 겨운건지 아니면 찬 바람에 눈가가 촉촉해진건지 눈물이 맺히고 볼은 상기된 채 행복한 식사를 했다.
120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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