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빛의 여정 124화 / 12장 첫번째, 시험
장편소설 빛의 여정 124화 / 12장 첫번째, 시험
"주문은 인내다. 아나트라께서 지름길은 없으니 끊임없는 반복을 요구하셨고, 우리는 그저 인내로써 믿음을 발현시켜야 한다." - 전투 수도사 데라닐
"피데인티, 피데라여 피조물이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하소서". 첫번째 외침이었다. "피데인티..." 로이딘의 두번째 외침이 시작되었다. 초상화에서 나온 점토인간 세 명이 로이딘의 주문 암송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도 시험에 임하였던지라 굳어 있었고 진지 해 보였다. 돈테는 가장 굳은 표정으로 로이딘을 지켜보았다. 로이딘은 그들의 시선을 감수하며 허공에 메아리를 외쳤다. 시험은 시험자가 포기하거나 지쳐 기절하게 되면 한 번의 기회를 사용한 것으로 간주했다.
다섯번째 외침이 끝나고 로이딘은 자세를 다시 바로잡고 왼손과 오른손을 살짝 구부려 핀 채 주문을 외웠다.
"피데인티, 피데라여 피조물이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하소서" 이로써 여섯번째. 헤르논 수도원과는 환경 자체도 심적인 환경도 완전히 다른 이곳에서 단 몇 번만으로 주문이 일어나기는 어렵다는 것을 로이딘 스스로 인식한 채 외웠다. 그러나 그러한 잡념들이 주문의 발현을 방해했고 소리의 진동에서 어색함을 느꼈는지 돈테의 표정과 정체를 밝히지 않은 돈테의 여성 동료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횟수는 문제 없었다. 연습장에서 베일런은 침착하게 심지어 해가 저물 때까지 지켜봐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수십 번 혹은 수백 번까지 한 자리에서 외웠던 로이딘이였기에 현재로써 무리는 가지 않았다.
외칠수록 오히려 붕 뜨는 느낌이 들었고 로이딘은 애써 무시하고자 했다. 또한 숫자를 세는 것도 잊지 말아야 했다. 숫자를 세지 않으면 집중이 크게 흐트러지고 온갖 잡념으로 머리를 채운 채 결국 목만 아픈 결과를 만들어서 암송과 동시에 세는 것도 집중했다. 전투 주문과 관계없는 수도사들은 타 종교의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염주를 가지고 다니거나 목걸이로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투 수도사들은 싸우는 도중에 염주알을 돌리고 있을 여유가 당연히 없었으므로 소리 없이 마음으로 세며 집중한다. 발음이 새지않고 깔끔하게 목소리로 외쳐보이는 것. 그렇게 열 여섯번째가 되었다. 허나 집중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오히려 혼탁한 느낌이 들어 점점 로이딘의 마음에 불안이 싹트기 시작했다.
공중에 불이 은수자의 방을 가득 채워 어둠을 몰아냈지만, 여 남은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속삭이는 듯 했다. 로이딘은 자세를 고정한 채 시선만 속삭이는 곳으로 돌리며 마른 침을 삼키고 다시 주문을 외쳤다. 어둠이 남은 방 안의 구석에서 그림자가 스멀스멀 거리며 소리를 냈다. 로이딘은 진땀이 점점 나기 시작했고 주문을 외우면서 저것이 무엇인지, 비명을 지를 것인지 온갖 생각을 하면서 잠시 목을 가다듬었다. 세 명의 증인들은 로이딘의 시선이 변한 것을 개의치 않게 여기며 그저 지켜만 볼 뿐이었다. 그는 다가오는 소리 때문에 집중할 수 없었고 스무번째 주문은 허공에 날리듯 던져버려야만 했다. 돈테의 표정이 좋지 않아 보였다.
잠시 후 다행히 그림자가 잦아들었다. 허나 시선을 수습하기에는 이미 많은 땀을 흘리고 있었고 이제 스물 한 번째에 들어간 주문은 목이 매여 백 번은 외친 것처럼 들렸다. "방금 무엇이었을까?" 또 다시 다른 생각. 다시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자세를 고정하고 외치면서 주문의 단어 하나 하나에 집중하려 해본다. 침을 몇 번이나 삼켰는지 모르겠다. 서른 번째가 되어서 그는 전략을 바꾸기로 했다. 몰입 상태에 들어가고자 주문을 빠르게 반복해서 외치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은 장 단점이 있었는데 빠르게 외우면서 흐트러진 정신을 수습해 집중할 수 있었지만 그만큼 입만 주저리주저리 떠든 채 다른 생각하기도 더욱 쉬운 방법이었다.
"피데인티, 피데라여 피조물이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하소서", "피데인티, 피데라여 피조물이 빛으로 어둠을 뚫게 하소서", "피데인티...."
증인 중 중간에 앉아있는 사내가 자세를 고쳐잡더니 빠르게 외우는 로이딘의 주문을 귀 기울여 들었다. 세 명의 증인들은 조각상처럼 굳은 채로 있었고 표정만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것 같았다. 시험자를 위해 그들은 전혀 말을 하지 않았다.
로이딘이 반복한 지, 육십 오번째 주문. 그때 그의 손에서 작은 빛이 반짝하며 사라졌다. 잠시 멈춘 채 목을 가다듬는 그는 살짝 미소를 지었고 증인들이 이를 알아봐주기를 바랐다. 그러나 요지부동의 증인들은 무표정으로 로이딘을 바라만 볼 뿐이었다. 순간 로이딘은 이 유령들이 몸체만 남겨두고 초상화에서 움직이듯 어디 다른 곳으로 마실이라도 나갔나 하며 의심을 했다. 그러나 돈테의 눈썹이 움직였고 중앙의 남성이 목을 살짝 치켜 들었다. 돈테가 준 물 항아리를 바닥에서 집어든 로이딘이 목을 축였다. 시험은 계속되었고 1번의 기회가 날아가지 않는 한 몇 번이고 계속 시도 할 수 있었다. 다만 증인들은 사람이 아니니 영원히 버틸 수 있겠지만 로이딘은 체력에 한계가 분명한 현세의 사람이었기에 얼마 못 가 끝날 것이다.
육십 오번째 외침을 끝나고서 물을 마시니 고기보다 맛있었다. 물이 옷으로 흐르든 등 뒤로 넘어가든 상관없이 벌컥 마신 로이딘이 후하며 숨을 골랐다. 잠시 마안탄을 했다. 이 역시 주문으로 박자를 맞추었고 흐름이 끊기지 않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번에는 다시 천천히 주문을, 또박또박 외치려 집중 해보았다. 그런데 아까 시야에 들어왔던 그림자가 다시 일렁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의 정신이 계속 이상한 건지 의구심이 들었으나 이내 그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림자가 로이딘의 머릿 속으로 들어와 말을 걸었다.
"피데라의 자녀여. 로.이.딘. 들리느냐? 반갑다. 너를 직접 처음으로 마주하게 되는구나. 나는 어느 곳에서나 살아 있다. 너의 등 뒤에서도 있고 너의 앞에서도 현존하며 밤의 달에 머물고 태양조차 나를 막을 수 없다. 거만한 자의 거울에도 나타나니 결코 너는 나를 피할 수 없다. 나를 알아보겠느냐? 너를 이곳에 영원히 구속하기 위해 짐이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가 될 지도 모르니 왔노라. 나는 절망이다"
로이딘은 순식간에 동공이 커졌고 칠십 일번째 주문을 하다가 도중에 발음을 먹어버렸다. 그가 크게 놀라며 뒤로 물러나자 증인들이 일제히 로이딘의 행동에 주목하며 몸을 그를 향해 비틀며 무슨 일인지 살피려 했다.
로이딘이 혼절하기 직전이라 돈테의 책장을 잡고 몸을 거칠게 기대었다. 여태껏 흐트러짐없이 잘하다가 갑자기 동요하다 못해 쓰러지려 하는 로이딘을 보고 증인들이 당황했다.
로이딘은 또 다른 시험을 동시에 상대해야 했다. 절망이라는 원초적인 존재를.
125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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