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여정 125화

장편소설 빛의 여정 125화 / 12장 첫번째, 시험

by 포텐조

장편소설 빛의 여정 125화 / 12장 첫번째,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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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어느 순간, 어느 때에 잊지 못 할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 부모로부터 매를 맞거나 연인과의 첫 입 맞춤, 혼자 처음 길을 떠나 여행을 갔을 때라던가 그것도 아니면 어둠 속에서 실제보다 더 실감나는 악몽을 꾸었을 때라던가 등등. 지금 로이딘은 자라오면서 맞이 해 보았던 그 어떠한 유형의 공포보다 훨씬 더 끔찍한, 본인의 정신을 통째로 뒤 흔드는 목소리로 시각과 촉각까지 실체적으로 느낀 것만 같았다.


전지전능하며 하늘을 통치하고 있는 신. "절망"이 일개 피조물인 그에게 속삭였던 것이다. 절망의 목소리는 일반적인 목소리가 아니였으며 그 자체로 불가사의한 힘이 느껴졌다. 어지로움이 느껴진 로이딘은 방금 물을 마셨던 내장에서 구토가 올라올 뻔 했으나 간신히 참아냈다. 책장에 기댄 채 마안탄 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찾던 피데라는 정작 오지 않고 결코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말로트"가 찾아온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나는 이대로 끝난 걸까?" 로이딘의 마음 속 혼잣말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고 수 십번 반복 했던 주문은 의미도 없어진 것 같았고 사기가 곤두박질 치어졌다.


돈테가 이를 심상치 않게 여겨 일어나 로이딘에게 다가갔다. 그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괜찮나?"

로이딘이 눈을 찡그린 채 숨을 고르게 하지 못한 채 침만을 삼키고 있었다. 잠시 서 있는 돈테와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두 명의 증인들이 로이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목소리를 듣지 못했고 로이딘이 왜 그러는지 궁금해 했다. 로이딘이 입을 떼 말을 하려던 찰나 순간적으로 돈테가 일기에서 글로 전해준 메시지가 떠올랐다.

"빛의 심판이 연루되어 있을 확률이 있다". 저 두명의 증인 중 한 명이 그 소속일 수 있다는 것. 직감적으로 목소리가 개입했다는 것을 말하면 안 될 것 같단 생각에 신중해진 로이딘이 핑계를 댔다.

"방금 시도한 주문이... 주문이 역효과가 난 것 같아요. 순간적으로 모든 감각이 깨지듯 고통스러웠습니다"


주문을 시전할 때 제대로 집중하지 못해 부작용이 일어나는 현상을 언급한 것이다. 희박한 확률이지만 이럴 때 "마법이 제 주인을 집어삼킨다"는 표현들을 쓰곤 한다. 과잉 시전일 경우 혹은 의식이 흐려질 경우 통제가 어려워 제 멋대로 변형하므로 시전은 또한 상당히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돈테는 그 이야길 듣고 잘 하다가 리듬이 깨진 것을 보고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았는 지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다가 로이딘의 한 쪽 어깨를 잡고 말했다.

"집중해. 괜찮아. 아직 실패는 아니니까. 좀 만 더 집중해보도록"

로이딘은 끄덕였고 돈테는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절망이 머릿 속을 들어와 순간적으로 뒤 흔든 강렬한 경험은 여전히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아무래도 주문 시전 때 방해가 될 것 같았다.


그가 바닥에 있는 물 항아리를 다시 집어 들더니 마시고는 손을 한 번 맞잡고는 호흡을 고르게 했다. 앉아있는 증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여보고는 다시 방 안의 중앙으로 가서 팔을 구부려 편 채 눈을 감고 정신을 정돈했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천천히 입을 뗐다. 그리고 머릿 속에 든 절망의 잡념을 억지로 밀어내려 하지 않은 채 집중해야 할 것에만 집중했다.

"피데인티..."

66번째 주문을 외쳤다. 이전의 시도처럼 반응은 없었다. 다시 단어 한 글자, 한 글자에 집중하며 주문을 외쳤다. 그렇게 70번째 주문에 들어섰다. 스물스물 다시 절망의 목소리가 되풀이 되면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로이딘은 침투되는 절망을 막기 위하여 살짝 다급해져서 빠르게 반복해서 외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80번째에 달한 주문, 간절한 로이딘의 입에서 침이 튀기며 주문이 외워지고 있었다. "너를 이곳에 영원히 구속하기 위해 짐이 처음이자 마지막 인사가 될 지도 모르니 왔노라. 나는 절망이다..." 절망의 음성이 들려왔지만 이번에는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며 더욱 빠르게 외웠다.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손은 바들바들 떨렸으며 표정은 점차 일그러졌다. 다시 증인들이 그의 모습을 주의깊게 보고 있었다. 로이딘은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빠르게 외우던 주문을 끊고는 잠시 멈추어서 크게 숨을 몰아쉬고 내쉰 채 마안탄을 시도했다. 그렇게 들이 쉬면서 마음 속으론 "피데인티", 내 쉬면서 "피데라여" 가슴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정신을 정돈했다. 몇 분 후 진정이 된 그는 천천히 다시 한 번 외쳐 보았다. 89번째 주문의 차례. 순간 그토록 찬란한 빛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방 안을 밝히려고 공중에 떠 있던 불덩이들이 내뿜는 빛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로이딘의 손 안에서 그리고 그의 몸을 감싸고 주변 바닥에서 솟아난 빛들이 증인들의 눈을 순간적으로 멀게 만들었다. 로이딘만이 그 빛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다. 바닥에서 솟아난 빛 기둥들이 은수자의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은수자의 방 안 천장에 부딪힌 빛이 강렬하게 발하여 저 높은 천장을 뚫고 나아간건 지 싶었다. 얼굴을 몽땅 찌그렸던 증인들이 팔로 눈을 가리며 살짝살짝 로이딘의 주문을 살피기 시작했다.


로이딘의 표정은 온화했고 편안해보였고 무엇보다 해냈음에 미소를 지었다. 빛이 은수자의 방을 가득 메우니 불덩이가 비추지 못한 공간의 그림자까지도 모조리 밀어내버리면서 어둠이 사라졌다. 동시에 머릿 속에서 그를 괴롭히던 절망의 목소리도 사라져버렸다. 다만 이게 일시적인건지 아니면 그가 다른 시험을 진행 할 동안에도 계속될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로이딘은 자신의 주문 발현을 기분좋게 느끼고 있었다. 증인들은 빛에 점차 익숙해진 눈으로 그의 주문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돈테는 해맑게 빛 기둥을 구경했고 중간의 사내는 천장에 맹렬하게 부딪히는 빛을, 오른쪽 여성은 바닥을 뚫고 나온 빛 기둥을 살피고 있었다. 그의 주문은 성공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빛 기둥이 점차 밝기를 잃어가며 서서히 사라졌다. 맹렬히 부딪히던 천장의 빛도 다시 불덩이의 빛에게 자리를 건네주었다. 돈테도 미소지으며 말했다.

"실로 놀라운 주문이로다. 그간 볼 수 없었던 유일무이한 주문이야!"

무표정하던 중간의 사내도 다소 놀랍다는 듯이 도중에 끼어들며 말했다.

"설마 선지자의 주문인건가..? 울로메히를 물리친.."

오른편에 앉아있던 여성이 선지자의 증언의 구절을 외쳤다.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로이딘도 그들을 향해 바라보며 따라했다.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126화에서 계속...

"때가 차매 그 빛이 다시 솟아나리라"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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