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957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구백 오십 칠번째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그 개념은 히틀러의 충복, 아이히만에게서 비롯된다. 전범재판에서 아이히만은 단지 수하로써 명령 받은 바대로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학살에 동참한 공직자로써 그 책임을 회피했다. 악은 무언가 비상하거나 혹은 웅대하거나 화려한 것이 아닌 기계 속에 돌아가는 톱니바퀴처럼 단순한 사고와 수동적인 입장에서 지독한 괴물로 탄생할 수 있음을 함의한다.
악의 개념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상대성도 떠오른다. 악은 상대주의적 성격을 띄며 각자의 정의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 철수는 자신을 문 바둑이를 악마라 여기지만 영희는 자신을 지키려 했던 바둑이를 충견이라 생각한다. 문화적 관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예시는 "인신공양"이다. 현재 누구라도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행위를 대부분 윤리에서 벗어난다 생각하지만 당시 아즈텍과 카르타고에서는 이를 신성한 행위이자 공동체를 위한 숭고한 희생을 의미했다.
결정적으로 선과 악을 만들어낸 존재는 바로 진화되어 사유하기 시작한 인간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고정된 개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역사 속 고대 석판에서 "살인하지 말라"라는 문구가 등장한 건 역설적으로 살인을 자연의 행위 중 하나로 여긴 집단이 있었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 타인을 해치는 것은 선악보다는 생존이란 개념이 먼저 앞섰다. 극단적인 상황에서 이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항상 인류는 서로를 적으로 두고 몹쓸 짓을 저지르며 전쟁을 벌여왔다. 누구의 입장이냐에 따라 악이 달라지지만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시대의 윤리와 규범 안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또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 지를 분별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 조차 만국 공통으로 합의된 바는 아니지만 "인권"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보다 뚜렷해진 공통된 악, 생명권에 반하는 개념을 악이라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가끔 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 때 상대성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인간이 설정한 악의 개념에 대한 절대성은 바뀌지 않고 고정되어 있음을, 그리고 확장하여 관점이 다양해질 순 있어도 절대적인 최소 기준이란 게 반드시 필요하며 또한 그것이 소중함을 느낀다. 하루 아침에 밥 먹듯이 뒤집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긴 하지만 적어도 절대성은 악의 상대성으로부터 문명의 붕괴를 지키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957화 오늘의 해석 : 악은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다. 악의 절대성은 개인과 집단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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