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무기사 1부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963

by 포텐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구백 육십 삼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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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활을 잘 쏜다. 국가대표부터 조상님들까지, 심지어 이성계는 신궁으로 불렸었다. 그래서 한국은 활이고 다른 나라인 중국은 창, 일본은 칼을 잘 다룬다는 인식이 있다. 어느 역사서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인터넷으로 여기저기 둘러보다보면 그런 인식들이 통념처럼 자리 잡았다. 위의 통념이 틀린 말까진 아니지만 엄밀히 이야기하면 조금 다른데 왜 이런 고정관념이 생겨 났는지 문화적, 환경적 관점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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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 활,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 단군이래 고조선부터 시작해서 활을 쏘아오던 민족. 정말 활만을 주구장창 사용했나 본다면 통일국가 이후로 그런 성향이 짙어졌다 볼 수 있겠다. 왜냐하면 고구려, 백제, 신라 또 그 이전에 웅진, 가야와 삼한 등등 여러 나라들이 서로 정복전쟁을 하던 시절에는 수비적 태세도 태세지만 대부분은 공세적 입장으로 상대를 정복하고 흡수해야하는 과제들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일국가 신라-고려-조선으로 넘어오면서 국력의 에너지는 외치보다는 내치에 집중했고 공격적인 태세보다는 수비적 태세로 침략자들을 상대했다. 백두대간, 태백산맥 등등 산악 지형이 많은 한반도는 성을 쌓고 적의 침입을 막아내는 것이 유리했다. 더구나 유목민족은 말을 타고 오는 데 후술할 중국사와 비교하면 감당 불가능한 위협이라 태평성대의 시간에 성과 성벽 건설에 집중하다가 적이 오면 성으로 들어가 적들에게 화살을 날리는 원거리 공격으로 맞섰다. 말이 성은 못 올라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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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같은 경우는 몽골과 비슷하게 합성궁(복합궁)으로 나무에다 줄만 다는 단순한 작업이 아닌 여러 재료를 사용해서 굉장히 고되고 복잡한 과정을 거친 조립 수준의 활을 만들어 사용했다. 이는 크기가 작아 일반 궁수부터 기마 궁사까지 범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그래서 걸어가든 말에 타든 활 쏘기가 유리했고 이는 산 성에서 방어하다가 반격으로 적을 타격할 때 기마대로 나가서 화살을 퍼부었다.


당연하지만 활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두루두루 백병전 무기들도 사용했다. 다만 수비적인 전략전술이 환경적인 영향 때문에 클 수 밖에 없었고 대부분 상대해야하는 적들이 아시아 최강대국 혹은 최강대국을 꺾고 넘어온 유목민들이었기 때문에 숙련된 적의 백병전으로 맞 붙을 생각은 하지 않았고 보조적인 개념으로만 인식했다. 조선 중기까지 이러한 인식이 유효하다가 임진왜란이 터지면서 다시금 백병전 무기들에 대한 고찰과 조총이라는 무기가 등장하면서 무기체계가 변화되었다. 2부에서 계속...




963화 오늘의 해석 : 한국은 활, 중국은 창, 일본은 칼? 한국은 산성 방어와 활의 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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