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만 되면 어두운 밤이 되어버리는 요즘, 저녁 추위는 살을 휘감고 뼈까지 시리게 만든다. 도심에서 약속을 마치고 귀가하다가 요망한 네비 녀석이 길을 헷갈리게 알려줘서(내가 판단을 잘못한 게 더 크겠지만.) 옛날 길로 돌아가야 했는데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야산 속 마을 길을 뚫고 지나가는데 온갖 상상이 들었다. 백미러로 누가 달려오지 않는지 본다거나 뒷좌석을 확인하는 경우도 있는데 왠지 모를 공포감에 압도되어 어두컴컴한 길을 어서 뚫고 지나가기를 바랐다.
매번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나 귀찮은 일이 일상에서 태반이다. 손가락 까딱하기에도 귀찮을 때가 겨울이라 그런지 안전한 이불속에서 귤 까먹고 전기장판에 몸을 맡기고 싶다. 그러나 사람이란 게 참 신기하게 알람이 울리면 잠을 더 자고 싶고 가기 싫은데 어떻게든 짜증 가득 찬 표정으로 일어나 활동을 하다가 문득 자각하면 잠기운은 온데간데 사라졌다. 그걸 매번 알면서 제때 일어나자 싶지만 그것도 역시나 어려운 일이었다.
밤이 되고 새벽이 되면 채색할 배경은 수묵화 그리듯이 한 가지 물감만으로도 완성한다. 깊은 어둠이 빛마저 집어삼키는데 이처럼 마을 길을 지나갈 때는 가로등이 없는 구간도 있어 온전히 자동차 라이트로만 의지한 채 다녀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옛날에는 한파로 마당 쪽에 위치한 보일러가 이상이 생기거나 물 모터가 얼어버리는 경우가 있어서 전등 하나 든 채 오들오들 떨어가며 아버지나 형 옆에서 지켜봐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국가대표 양궁선수들이 훈련 중에 담력을 기르기 위해 야밤에 공동묘지를 다녀와야 했다는 스토리가 있다.겨울밤에 몸을 던지는 것은 생각보다 고되고 용기가 필요한 행동이다. 귀신을 믿지 않는 내가 귀신보다 무서운 사람이 쫓아오지 않나 걱정을 하고 아니면 차에 매달리는 악령(?)들을 걱정할 정도로 칠흑 같은 밤을 이겨내는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인간이 어둠을 왜 그토록 두려워했는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자연의 이치에 맞게 시간이 흐르면 새벽은 어느 순간 동쪽에서 해가 조금씩 드러나며 자기의 범위를 잃게 되고 물러나게 된다.
살다 보면 시간이 약이라고, 흐르다 보면 해결해 주는 것도 있지만, 본인이 기꺼이 나서야만 풀어갈 수 있는 문제들도 많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어둠은 불확실의 공간이라 문밖으로 조그마한 전등을 가지고 나서기엔 제 몸하나 지키기 힘들어 보인다. 다만 모터 스위치가 나가서 다시 올려야 하는 경우를 생각하노라면 그런 불안함과 고됨을 견뎌내고 나서서 오늘밤 편안히 온수로 씻을지 아니면 냉골에서 상남자식 샤워를 할지는 나갈지 안나갈지, 그 차이에 달려있다.
내려간 스위치가 마법처럼 올라가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는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일상 속 추위와 어둠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보면 참 난감한 경우도 많고 불편하고 미루고만 싶어 진다. 하지만 그냥 내버려 두기엔 달라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뭔가를 바로잡거나 아니면 그 이상의 것을 추구하고 싶다면 나 자신이 밖을 나가야 함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기 때문에 결국 우리의 선택과 결단 그에 앞서 우리의 생각에 따라 어떻게 할지가 판가름 난다.
만약 나서지 않는 자유를 택했다면 이 역시도 아침은 온다. 다만 무언가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시간이 흘러 날이 밝을 순 있지만 달라진 아침은 결코 오지 않는다. 아침 정오 저녁의 시간은 매번 바뀌지만 주어진 위치와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어제의 어둠을 달리하고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싶다면 우리는 전등을 들고 나서야만 한다. 분명 나서자마자 추위와 무서움이 몰아닥쳐 나오게 된 것에 후회가 몰려와 급히 돌아와서 이불속으로 몸을 숨길수도 있겠지만 이 또한 경험임을 자각하고 다시 나서게 될 땐, 보다 두툼한 옷으로 무장하고 나간다면 멀지 않은 미래에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게 되리란 소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