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에 고민이 많아진다. 그러면서 온갖 조건들이 달리고 또 달리는 데 그럴수록 나의 숨을 옥죄게 된다. 괜히 이것저것 생각나고 과거를 생각하면 이불 킥 할만 한 그런 순간들이 많아진다. 저녁이 되고 자정이 될 때 몰려오는 자책감은 어느덧 일상이 되어버렸고 후회는 이미 굳은살처럼 매번 남겨진다. 아마 계속 그렇게 살아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젠 그 자연스러움을 느껴버린다.
"이것 하지 말아야지", "저것 하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 너무 많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내 심신에 넣어놓았던 것 같다. 아다르고 어다르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생각하는 순간 너무 스스로를 구속해 버린다. 실제로도 어떤 식으로 할지 말지 즉 단어가 생각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이 논쟁 중이긴 하지만 여하튼 개인적으론 안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 이것저것 할게 많아진다.
그런데 "어떤 걸 해야지"라고 한다면 그것만 하면 되는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예를 들어 "화장실이 더러워지게 하지 말아야지" 하는 순간 창문의 거미줄 그리고 구석에 묻은 때가 매 순간 신경 쓰이고 지우느라 정신없지만 "화장실을 깨끗이 해야지"라고 하면 그냥 청소 한번 하면 된다. 그리고 습관형성에서도 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면 괜히 휴지를 어지럽힌다더거나 비누를 아무렇게나 놓지 않게 된다. 그냥 정리정돈 하자라는 마음이 수십 가지 조건을 하나로 묶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은 하는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하는 것 같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신경 쓰다 보니 괜히 신경만 날카로워지고 그러는 것 같아서 해야 할 것에만 몰두하는, 그리고 모든 조건을 완벽히 이루기엔 불가능하므로 기본적으로 할 것에만 집중해야 함을 느낀다. 그런 생각도 들긴 한다. 완벽을 내려놓아야 한다라는 핑계로 대충 하고 넘긴다던지 진행하면 위선일 뿐인 것도 안다.
시간은 흐르고 도전적인 일도 많이 몰려오는 데 신중하다 못해 위축되어 있어 능동적인 것이 필요함을 느끼는 오늘이다. 너무 능동적이어서 스스로 오지랖이 넓은 것 같다면 어느 정도 가만히 머무는 연습도 필요하겠지만 나는 너무 수동적이라 능동성을 요구한다. 위축된 자신을 보노라면 누가 스스로를 위축시켰는지 보자면 예전의 아픈 과거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나 자신이 기여한 점도 분명히 있음을.
누가 뭐라 안 했는데도 괜히 스스로 상처받았거나, 영 아니다 싶은 느낌을 받는 것도 고칠 필요가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설령 인간관계에서도 상처줄만 한 혹은 불편한 상황이 맞아도 그때는 당당하게 나 자신을 독려할 필요가 있고 문제가 된다면 그건 가끔 환경 탓도 있기에 어디에 잘못을 두기보다는 내가 그냥 시선 신경 안 쓰고 나가야 함을 느끼게 된다. 분명 그런 상황을 겪다 보면 누군가 그 잘못을 나에게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험도 겪어봐야 알 수 있고 많이 겪어봐야 방법도 알게 된다. 뻔뻔함끼리 만나 서로 부딪힌다면 무서움 혹은 두려움에도 충분히 의견을 개진하는 아니면 할 소리는 하는 괜히 집에 와서 오해 사지 않았나 끙끙 앓는 것보다 그냥 이야기할 때가 때론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