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성장일기 140
벽돌시리즈 백 사십 번째
요즘엔 포스트아포칼립스 콘텐츠가 흥행하고 많이 나온다. 포스트아포칼립스란 전지구적인 이슈로 인류가 재난, 전쟁, 질병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나서 그 후 간신히 살아남거나 잔존해 있는 환경을 배경으로 한 콘텐츠를 이야기한다. 가령 아포칼립스 상황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천재지변 대홍수라든지, 화산폭발, 극심한 가뭄등 어쩌면 현재 기후위기와 밀접한 주제일지도 모른다. 또는 인간끼리의 갈등 아닌 갈등으로 세계대전 수준으로 핵무기와 첨단무기로 인하여 전멸 수준의 상황, 흑사병이나 코로나 같은 더 극심한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를 가정으로 한다.
예전에 메르스를 기억하는가? 코로나는 더했고, 전염병의 피해 그리고 공포는 대놓고 전염병 영화들이 한때 유행을 탔던 것을 떠올려 보면 심각한 문제다. 다만 전염병의 메커니즘을 보노라면 전염률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살상률이 낮은 질병들이 인류를 계속 괴롭히는데 아프리카의 에볼라 바이러스 같은 경우는 걸렸다 하면 골로 가는 치명적인 살상률을 자랑하지만 상대적으로 전염성이 떨어져 그나마 다행이다.
이유는 즉슨 전염의 매개인 숙주, 즉 인간이 다른 이들을 전염할 만큼 충분히 살아남지 못한다면 전염원도 도중에 삶을 같이 마감하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퍼뜨려야 하는데 먼저 죽어버리면 전염률이 크게 떨어진다. 반면 인플루엔자 같은 질병들은 사람을 죽일 만큼 강력하긴 하나 한번 걸렸다 하면 작살나는 수준이 아니라 야금야금 갉아먹는 식이라 그 시간 동안 다른 이들에게 전파시킬 수 있기에 반대의 경우가 성립된다.
이처럼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코로나로 인해 공포와 위축이 되었던 마스크 사회가 어느새 노마스크 시대로 다시 돌아왔다. 그렇지만 언제 또 마스크를 써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고 전지구적 감염병은 언제든지 생겨날 수 있기에 포스트 아포칼립스 콘텐츠들이 그런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흥행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생존주의"적 일상이나 주요 취미로 삼을만한 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중앙집권적이고 통제도 잘되거니와 시민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작디작은 땅덩어리에 오밀조밀 살아가기에 하나의 운명공동체와 같아 상대적으로 정부나 공적 업무의 효율성이 높은 편이다. 반면 미국이나 호주 같은 경우는 생존주의적 일상이 주된 취존의 영역이며 실제로 그런 삶을 사는 것이 보편적이다. 본디 조상들부터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이 광활한 땅덩이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골머리와 인프라 깔기에 혈안이었다.
지금도 각 주마다 거의 독립국이다 보니 마을마다 기관마다 거리가 멀다 보니 자연으로부터, 어느새 나타난 외부인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내야 하는 방위적 수단이 필요하거나 필수가 되어있다. 그래서 총기문제도 이와 연관되어서 결코 풀 수 없는 복잡한 실타래가 되어있다. 여하튼 미국 같은 경우는 자유방임적인 나머지 반지성주의적 음모론도 만연해 있어서 생존주의에 도가 지나칠 정도로 심취해 있는 사람들도 많다.
진짜 포스트아포칼립스 같은 상황을 가정해서 비상식량을 구비해 놓는다던지, 조금 돈 좀 벌었다 싶으면 자기 집 앞마당에 벙커를 설치해 놓고 흐뭇하게 바라본다던지 하는 경우도 있다. 가끔은 허리케인이나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위에 서술했듯 거리가 멀어 공권력 개입이 느슨해진 차원에서 그 간격을 각자도생으로 메꿔나가야 하는 처지이기에 생존주의가 애들 땅따먹기식 장난은 마냥 아니다.
영화 존윅의 파라벨럼의 본래 어구인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처럼 너무 생존주의에 빠지면 별의별 환상 같은 경우에 휘말려 위기의식이나 음모론에 심취할 수 있어 문제가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최근에 문도 허술하거나 침수하기 좋은 관리 안된 민간인 대피소를 보노라면 아직 "휴전"중인 우리나라도 생존주의는 딴 세상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