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나름 떠들썩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그때 당시에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인 "2012"도 인기를 끌었다. 정교한 마야문명의 달력에 따르면 2012년이 종말의 날이라고 해서 인터넷에서 한참 화두가 되어었다. 내가 속한 20대는 프로그램에서 가끔 언급하는 사건인 다미선교회 사건을 들어만 봤거나 관심이 없거나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흰옷을 입고 1992년에 휴거(승천)할 거라 믿어서 온갖 허튼짓을 하면서 다음날이 되기까지 사람들을 신경 쓰게 했던 사건을 말이다.
마야 문명 그리고 아즈텍 문명을 처음 접했던 게 역사 게임을 할 때였던 것 같다. 남미의 고대 중세문명을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문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반대로 당시 언더독 마인드를 가지고 개성을 좋아하던 터라 원주민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비단 나만의 취향이 아니었던 것이 서구 커뮤니티에선 원주민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는 덕후들을 지칭하는 용어도 있었다.
언더독 현상(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현상)에 대해 심취한 나머지 원주민이 마치 고귀한 척하는 다른 문명화된 국가들에 비해서 모두가 평등하고 아늑하고 자연에서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던 사람들이고 다른 나라가 찾아와서 괴롭혔다고 한때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은 어딜 가든 사람 사는 세상은 똑같다는 결론을 가지고 있다. 뭔가 신비롭고 뭔가 달라 보이고 평화로운 정글 속 문명, 원주민 부족들도 치열한 정치판과 전쟁을 치른 점을 보노라면 말이다. 영화 아바타는 말 그대로 영화일 뿐이다.
마야 문명과 아즈텍 문명이 멸망한 이유는 전자는 확실하지 않지만 기후환경 문제가 닥친 것이며 후자는 정치적 자폭을 하는 바람에 스페인에게 멸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두 문명의 공통점은 인신공양을 했다는 점이 무시할 수 없는 자폭의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마야 문명의 멸망설에 대해 분분하지만 대체로 기후환경도 있지만 그 점이 두 문명의 수명을 앞 당긴 원인이다.
마야 문명이나 아즈텍 문명 그리고 중남미 문명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인신공양을 대규모로 벌였다는 점이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일 수는 있겠지만 인신공양 제사는 그 당시 종교적이든 문화적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받아들여도 당하는 입장에선 그리 달갑지 않은 문화였다. 그래서 주변의 적들이 생길 수밖에 없고 제 아무리 강력한 힘을 자랑했던 마야라도 어느새 가뭄이 찾아오자 밥먹듯이 했던 전쟁과 내전은 더욱 더 증폭된다.
아즈텍 문명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특히 영화 아포칼립토를 보면 계단식 피라미드 정상에서 사제들이 희생자의 심장을 꺼내 하늘에 올려 보이는 제사들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정글로만 가득했던 중남미 환경은 답이 나오지 않은 장소다. 아니 지금도 중남미 다큐멘터리를 보면 답이 나온다. 생존왕 베어그릴스가 등장하는 정글 서바이벌은 정글이 왜 초록 사막이라고 불리는 이유인지 납득이 간다.
그래서 이런 초록사막 혹은 초록 지옥인 정글에서 그때 당시 살아남기 위해 정치적인 이유와 종교적인 이유로 사람을 제물로 그것도 몇천 몇만 명의 단위로 바친 것은 납득이 전혀 가지는 않는 야만적인 행위이지만 그들 나름대로 먹을 거 없는 곳에서 어떻게든 신에게 의지하여 자기네가 살아남기 위한 발악이 문화화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윤리적인 측면을 보더라도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은 그때 당시에도 마찬가지다.
꽃전쟁이라 불리는 아즈텍의 전쟁양식은 포로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포해서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인데 이러한 점이 주변 도시국가들에게 굉장한 증오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보편적인 문화 특성상 그들도 아즈텍인을 잡아서 제물로 바치긴 했지만 아즈텍이 워낙 규모가 크다 보니 악명도 비례할 수밖에 없었고 스페인 콩키스타도르(정복자)들이 들어왔을 때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아즈텍 수도 테노치티틀란이 무너지게 하고 황제가 죽임을 당하고 멸망하게 하는데 일조했다.
아무리 문화상대주의적인 관점으로 포용한다 해도 이런 점을 볼 때는 어느 정도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게 필요함을 느끼고 생명윤리라는 것은 어떻게 보느냐에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것을 규정짓는 것도 인간이기에 인간 자체에 대한 소중함을 지키는 기준은 세상이 천지개벽으로 달라진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기준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