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성장일기 177
대학원생의 성장일기 백칠십 칠 번째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전을 부치면서 뉴스를 보니 물가는 오르고 삶은 팍팍하다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많이 움직이고 있었다. 설날 밥상에 오를 뜨거운 정치사회적 이슈들도 많고 여차하면 설날이 진흙탕싸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시사프로그램에서 모 정치인이 하는 말이 공감이 갔다. 자기는 시사프로그램에 자주 섭외되어 나오지만 반대쪽에 앉아있는 게스트와 설전을 벌이고 아무리 이야기를 한다한들 결코 설득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반대쪽 게스트에게 이야기를 한다기보다 지켜보고 있는 관객 혹은 청취자를 타깃으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말이 뭔가 와닿았다. 어쩌면 설날에 예민한 이슈에 대해서 혹은 평소에 인간관계에 대해 돌이켜볼 메시지이기도 했다. 말을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각자의 입장에 따라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 있다. 모임을 적지 않게 진행하다 보니 더 와닿은 것도 있었다.
말도 들을 사람한테 해야 통하는 것 같다. 애초에 문을 꽁꽁 닫고 목적조차 다른 접근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다면 전혀 효과가 통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 생각도 해본다. 사냥을 가는데 안개 낀 숲 속에서 들고 간 물건이 산탄총이다. 그래서 사슴 잡자고 난사를 하는 꼴밖에 되지 않고 총알이 중구난방으로 흩어져버린다. 그래서 스코프(망원경)가 달린 소총을 들고 한 목표만 제대로 골라 노려서 집중 타격하는 게 효율적인 건 상식이다.
서로의 상호작용도 마찬가지다. 말이 통하지 않을 것만 같다면 굳이 산탄총을 꺼낼 필요가 없다. 오히려 말하는 사람의 위신만 깎이는 것 같단 생각도 든다. 그리고 상대방이 듣는 둥 마는 둥 한다거나 반론에 반론으로 끝없는 싸움이 계속된다면 분노만 쌓이고 그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감정이 달아올라 할 수 있겠지만 다들 놓치면서도 잘 아는 부분인 화만 내면 오히려 설득은커녕, 도리어 오해와 관계만 나빠질 뿐이다.
가끔 조언을 해준다거나 호랑이 선생님을 만나면 옛날부터 느꼈던 부조리함, 특히 나때만 해도 공교육 과도기라 체벌이 여전히 살아있을 적 때리는 것도 그렇지만 한 인격을 무참히 짓밟을 정도의 모욕이나 혹은 분노로 다그치는 것을 보며 굉장한 거부감이 들었고 시골 교사들이 굉장히 저질이구나라는 편견도 있었었다. 그래서 그런 환경을 겪어보고 또 상처받기 쉬운 영혼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런 비난은 더욱더 비수가 되고 증오만 가중되어었던것 같다.
개인적으로 설득하는 것 아니면 적어도 이야기가 통하게끔 하는 것 이전에 상대방이 그럴 의지가 있는지도 중요하고 어수선하지 않은 환경도 중요한 것 같다. 그 후에 이야기를 진행하면 요즘 인간관계에서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함부로 분노를 남발하지 말 것이라는 점을 가슴 깊이 새기려고 한다. 스스로 뭔가 다혈질적인 면도 있는 것 같아 여겨 작년에 있었던 배신당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려다 괜히 자살골만 넣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역사를 통해 배우는 처세술 관련 책을 읽으면서 상당히 반성할 점이 많았다. 들을 사람이 아닌데, 산탄총을 남발하는 것은 무사히 넘겼어도 정작 나 자신이 흥분해 산탄총을 남발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이다. 책 속에서 가장 받아들이려고 했던 점은 "분노"를 적재적소에 혹은 필요할 때만 써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것과 연관 지어 애초에 말을 하기 직전에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절반이라도 간다는 점을 실천하려 한다.
근데 그건 또 있다. 가끔 우리가 뭐 하브루타(유대인 토론문화)니 남들이 예스할 때 나는 노한다느니 아니면 강의실에서 질문할 사람 중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지 않는다 등의 자기의 주장을 개진하는 것에 대한 눈치와 위축된 인식이 이것과 관련되어 있을 수도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결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의견을 주장하는 것과 개인적으로 혹은 관계 속에서 상호교류하며 적극성을 가장한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고는 당연히 다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