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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텐조 Feb 10. 2024

새해 복은 나도 포함이야!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178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백칠십 팔 번째


새해 인사 연락을 먼저 주는 경우 혹은 받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오늘은 설날이라 제사를 지내거나 친척이 방문해서 서로 새해 복과 덕담을 주고받는다. 물론 세뱃돈은 있어야 이 분의 덕담이 유효하다(?). "아무튼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다들 열심히 서로 이야기를 하고 인사차 하지만 정작 나에게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스스로에게 안부는 잘 전하고 있는지도 의구심이 들었다.



스스로에게 얼마나 관대한가? 사람들이 100이면 8,90은 자기 자신에게 너무 냉혹한 나머지 일상에서 자책과 후회로 많은 시간을 의식하지 않은 채 보낸다 생각한다. 뭐 자기 계발서에서는 수천 가지 생각이 하루에 떠오른다 하지만 개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질이 중요하다. 그중에 의식하는 생각은 과연 얼마이며 그중 흘러 넘기는 생각은 또 얼마고 워낙 자연스러워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또 얼마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상황이 궁지에 몰리거나 누군가에게 자의든 타의든 이기적인 면모를 보이거나 자존심 때문에 자기 합리화를 할 때도 많다. 흔히 정신승리하는 경우는 스스로에게 새해 복의 범주가 아니라 그건 그냥 가뜩이나 낮은 자존감에 일시적 피막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심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격려하거나 잘 살펴보았는지 생각해 보면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것은 나 스스로에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다이렉트로 연결된다.


"참 복 없게 생겼다.", "지지리 복도 없다 정말" 같은 이야기는 많이들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 뭔가 꺼림칙하고 당사자가 만약 듣는다면 굉장히 불쾌할 뿐 만 아니라 웬수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마치 돌려 까기 하듯 아니면 다른 형태로 스스로에게 365일 동안 매일 하고 있지 않은지 보노라면 꽤 있다는 생각도 든다. 복 있게 생겼다는 말이 있듯이 복도 복이 있을 만한 사람에게 찾아가는 느낌처럼 복 받을(?) 태도가 과연 있는지 말이다.



위험해요! 복이 안들어 온다구요!


우리 모두 나르시시즘을 가지자!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 도널드 트럼프가 되어서 "스스로를 다시 위대하게!"라고 외치자는 것도 아니다. 가끔 글에서 정신건강을 언급하면서 균형 잡힌 사고관이 중요하다고 말을 했는데, 저울 추가 한쪽으로 기울어지면 당연히 반대쪽이 너무 약한 건 아닌지 검토하고 스스로 그쪽에 무게가 실리게끔 다시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게 꽤 중요한 일생 과제인 것 같다.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게 쉽지는 않고 또 굉장히 어색하다. 하지만 그 내용이 무엇이든 간에 스스로를 격려하거나 에너지를 부여하는 형태로 접근하다 보면 나름 할만하다. 역시나 안 맞는 옷과 같이 불편하고 또 뭔가 억지 같고 별거 아닌 것으로 치부해 금세 얼마 안 가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본래의 패턴으로 돌아가는 게 자연상태인데 따져보면 하루에 수천 가지 생각을 한다 치면 1년 365일은 과연 얼마나 될 것이며 그리고 어떤 중요한 변곡점에서 느꼈던 부정적인 감정과 함께 올라왔던 자기 이미지가 최소 몇 년간 자리 잡을 텐데 그걸 고려한다면?


에밀 쿠에 의 "자기 암시"라는 19세기 프랑스 사람이 쓴 고전이 서점 책장에 꽂혀있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래서 사서 읽어 보았다. 에밀 쿠에가 있을 당시 그때가 어림잡아 100년 이상이 되었다. 그가 주장하는 자기 암시는 자기 계발서에서 자주 말하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든지 플라시보 효과와 결부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결이 조금 다르고 엄밀히 말하면 틀렸다. 무조건적인 자기 긍정적 암시를 하라는 셈인데 내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언인지는 읽는 분들이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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