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생각해 본다. 작심삼일도 오래 해봤기 때문에 문제가 무엇인지,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컸던 게 아닌가 말이다. 죄책감, 무기력, 우울감은 제외하고 말이다. 같은 접근 방법으로 해봐도 도무지 되지 않는 다면 달리 하는 것이 정석이지만 가장 힘든 것은 어느 순간 다른 방법으로 해본다는 것은 마치 도박과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몇 년째 씨름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조금만 더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에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 그리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 그동안 했던 것이 틀렸음을 인정하게 되는 자존심이 한 몫한다.
아직도 나는 모르는 것은 케바케의 영역 속 포기를 어느 순간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나마 습관 만들기도 어느새 손도 안 대다가 하게 된 것을 보면 그 오묘한 타이밍이 궁금하기도 하다. 다만 그런 건 있다. 변화하고자 하는 욕망은 매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글을 쓰면서 느끼는 점은 어쩌면 "손도 안 대다가"가 뭔가 포인트가 될 수도 있다. 즉 여러 번 씨름 한 끝에 질려서 안 하는 시점이 다른 방법으로 할 수 있는 타이밍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한다.
포기를 하는 사람은 용기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모험을 하는 것이니 말이다. 사생활에서 적지 않은 시간을 투자했던 자기 관리의 방법을 기꺼이 내려놓고 달리 접근하겠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정도 사회적 성공이나 결실을 거둔 사람들은 여기까지 이끈 자기의 습관에 대해 자랑스러워할지 모르지만 부분적으로 또 다른 변화의 욕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포기하고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은 내가 말하고 싶은 시작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래서 일상에서 어떤 영감을, 어떤 성찰을 하고 결심을 하는 것. 그리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 그리고 그 행동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각자마다 처한 순서가 달라서 누군가는 결심을 해야 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결심은 했으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전형적인 결심은 했지만 실제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의 글을 쓰기까지 달라진 것은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프로작심러라 작심 하루, 반나절로 끝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고민이 많았다. 그리고 다시 같은 방법으로 시도하기까지는 언제나 성찰이나 심정변화를 겪을 때뿐이었다. 기분에 따라 고취가 되어서 시도하다가 이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반복했던 것이다.
이 점을 20대 초반에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느낀다면 어디겠는가? 더군다나 지금 말하는 것도 누구나 다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자기만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결코 쉽게 할 수 없다. 나는 무기력이 계속되었다가 이제야 어느 정도 나의 것으로 받아들였지만 그때 당시로 타임머신 타고 돌아간다 쳐도 분명 똑같은 실수를 저지를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의 오늘 일기에서 내게 상기시키고 싶은 것은 시작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작심삼일이라는 것도 힘든 사람도 많다. 애초에 결심조차 힘든 사람도 있으므로 결심을 "시작"하든, 행동을 "시작"하든, 시작의 지점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굉장히 민감하고 예민한 최중요 포인트다. 마치 연약한 새싹을 옮기는 작업과 같은데 이 새싹을 안전히 옮기고 키우기까지를 따지기 전에 이 시작이라는 녀석을 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지금이나 내일이나 10년 뒤나 몇십 년 뒤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해본다.
지금은 정론으로 잡힌 우주 탄생이론인 빅뱅 이론을 들어봤을 것이다. 약 140억 년 전 무의 세계에서 지금은 드넓은 별들의 세계가 되기까지 아주 좁디 좁은 한 곳에서 쾅(BANG)! 하고 터져 나와 우주가 끝도 없이 퍼지게 된 사건을 말이다. 나만의 쾅! 하는 부분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