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생의 성장일기 21
벽돌 시리즈 이십 일 번째
첫 번째 : 안개를 걷다.
어두운 이야기이자 현실을 꺼내보고자 한다. 9월 10일 오늘은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는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또 이미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고자 함이다.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며 부딪히고 깨진다. 이미 흘러 담을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러 후회할 수도 있다.
또 혼자 무인도에서 사는 것이 아닌 이상 대인관계로 인해 어마무시한 상처를 입으며 살아간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에 반드시 누군가와 접촉하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부모든 친구든 남이든 간에 말이다. 자기 삶의 시간이 어떻게 될지 또 전혀 몰라, 다가 올 불확실의 결과는 현재의 삶에 비추어 볼 때 그리 희망적이지 못할 수 있다. 삶은 비극이다. 누군가는 심지어 "아예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걸"이라 외치며 반출생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두 번째 : 선택 끝
그러한 삶의 무게와 불확실한 미래를 마주한 채 본인을 바라보노라면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힘이 없다. 보이지 않는다. 세상은 역동적으로 움직이는데 나만 슬로우비디오처럼 멈춰져 있고 마치 고통을 충분히 즐기라는 듯한 지독한 시간의 선물이 나의 머리를 옥죄어 온다. 이윽고 절망을 바라보노라면 더 이상의 희망의 조각은 온 데 간데 보이지 않는다. 슬로우비디오의 고통 속 환경은 그의 선택을 재촉한다. 누구나 한두 번쯤은 극단적인 상상을 할 수도 있고, 너무 힘든 나머지 자해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엔 진짜이며 나의 현 상황이 되어 버렸다. 화산폭발마냥 짓눌려있던 감정의 해방은 아예 자기를 버리고 현 세계의 탈출을 시도할 수 있다.
보이지 않는 이 상황에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고,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옛날에 나 또한 대학교 도서관 5층에서 문득 그 생각이 강렬히 들었고 모든 에너지가 사라진 상태였다. 그런 처절함과 고통 속에서 이겨낸 것은 나를 살리기 위해 책을 읽은 것이며 나를 실험 삼아 심리학을 적용해보고자 했다.
끊임없는 안갯속 속삭임은 일수하는 깡패처럼 나의 에너지를 빈틈없이 빼앗아 갔다.
세 번째 : 다시 원점으로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느껴본 분은 아시겠지만 정말 살아도 사는 것 같지 않고 어딘가에 꽉 갇힌 느낌이 든다.
또 어떻게 하면 나아질지도 머릿속으로는 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족쇄를 차고 그 무게가 심히 감당이 안 돼 어쩔 도리가 없다. 주변에서는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곧 나아질 거다" "힘내라 넌 할 수 있다"라고 이야기해 주는데, 물론 누군가 그렇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어디이냐 마는.
요 잡초마냥 뿌리까지 지독하게 파고든 절망에겐 그런 말과 위로로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극복한 건 인내심을 가지고 함께해 준 가족과 치료와 심리학 책들이었다.
불안하고 우울하다 보니 정신과에 가서 약을 지어먹었다. 신기하게 플러스의 일상이 되진 못하더라도 마이너스의 감정에서 제로의 일상이 되어주었던 게 약물치료였다. 이 이야기를 밝히는 데는 물론 쉽지 않았다.
아직도 여전히 정신과 가는 사람들, 우울한 사람들은 마치 나약하고 의지가 없고 문제 있는 사람들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오히려 의지가 투철하기에 극단적인 시도를 하고 누구보다 민감하기에 현 상황을 이겨내고 싶어 한다. 여튼 약물치료를 병행한 일상에서 내가 집중했던 건 심리학 그리고 심리치료 이론들이었고
그것을 통해서 나는 거의 매일 일기를 쓰며 성찰하고 누구는 쉽사리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그것을 나는 일기와 해나갔다.
이는 나의 사례이고 다른 분들의 과거나 현재는 분명 다르기에 겪고 있는 힘듦과 좌절의 감정은 비교할 수 없다. 스스로 위로하기에는 이미 너무 커져버린 상황에서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라도 가지면서 심리치료나 상담 내지는 최소한의 약물처방을 받으시길 적극 권장해 드린다. 몇몇 사람들은 내 상태가 그 정도까진 아니다라고 생각하실 수 있다. 나도 그랬는데 썩으면 썩었지 나아지지는 않더라.
그런 조치조차 부담이 된다면 지역사회에서 운영하는 상담기관을 방문하거나 하루는 답답한 마음에 서점을 방문해서 어느 정도 심리학과 연관된 자조서를 읽으면서 스스로 독서치료도 해볼 만하다.
불확실한 미래와 절망 그리고 개인이 넘기 힘든 심적 무게들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쉽사리라는 단어에 주목하고 싶다. 즉 어렵다는 것인데 이 뜻은 즉슨 "어렵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하루아침에 어떻게 이겨내고 좋아지겠나. 심지어 감기 아니 하다못해 어디에 손가락에 상처 나면 일주일은 가는데. 외적 상처들은 점차 아무는 게 보이니 그나마 낫지만 내적상처들은 보이지 않으니 더 미칠 지경이고 간지러워 그만하고 싶기도 한다. 쉽지 않은 이 시점에서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는 기이한 현상도 일어날 수 있다. 왜냐? 상담 잘 참여하다가 어느 순간 이것조차 효과 없다고 중도포기해 버린 내담자가 이제는 상담과는 영영 만날 기회조차 가지지 않는 경우처럼 말이다.
이걸 듣거나 보는 이는 머리 아프고 복잡하다. 탈선한 기차를 다시 정상궤도에 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방치하면 상황은 더 나빠지니 참 난감하다. 주변의 가족과 지인, 몇 없는 친구들이 사연을 들으면 그렇게 느낄 것이다.
그런데 말하고 싶은 건 어렵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고 또 미래를 알 수없기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오늘은 절망적이면 내일은 희망적일 수 있다는 반대의 상황도 충분히 존재한다. 절망 한쪽만 바라보고 이게 진짜 현실이다라고 이게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봤을 때 엄연히 틀린 주장이다.
"나는 단 한 번도 기쁨을 느껴본 적이 없다." 틀렸다. 이미 당신은 일상에서 여러 번 경험했던 감정이다.
상황이 복잡하다는 뜻은 지금의 상태를 결정짓거나 나아가야 할 해결방법도 다양하다는 것이다.
단일적인 요소로만 판단하기에는 시기상조이며 틈바구니에 흘리는 중요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는 말이다.
주관이 곧 진리이다. 실존주의에서 나오는 내용인데 나는 이 말이 자기 삶에서 정답이라 생각한다.
오그라들지만 나 스스로 만든 명언 아닌 명언이 있다.
즉 천국에서 지옥을 만드는 자가 있고 지옥에서도 천국을 만드는 사람이 있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천국을 만들 수 있다. 아무리 좋은 환경이라도 누군가는 지옥으로 만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