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리는 악역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53

by 포텐조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오십 삼 번째



악역은 작품을 풍성하게 하는 절대적인 핵심과도 같은 존재들이다. 주인공도 중요하지만 악역이 없다면 이야기의 역동성은 결코 성립되지 않는다. 빌런들은 현실에서 결코 보고 싶지 않은 캐릭터들이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극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상의 악역들은 악"역"이 아니라 그냥 악이기 때문에 도덕윤리적, 법적으로 크게 문제 되는 인물이며 반사회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 법적 구속을 당해 이미 교도소에 갔을 사람들이지만 별개로 내가 인상 깊었던, 작품을 더욱 풍성히 만들었던 악역을 한번 다루어보고자 한다.




내가 접했던 게임이나 소설 그리고 영화나 드라마 등 모든 작품을 통틀어 딱 2명의 악역이 떠올랐다. 다들 연기들을 잘하고 워낙 뛰어난 캐릭터성을 가지고 있는 악역들도 많지만 그래도 내가 접했던 가장 임팩트 있었던 인물 2명만 들고 와봤다. 첫 번째는 미국의 게임사였던 웨스트우드스튜디오의 레드얼럿 2에서 등장했던 유리(YURI)다. 작품의 스토리는 소련이 전 유럽을 침공함으로 영국만을 남기고 몽땅 차지하게 될 뻔했다는 것이 1의 스토리다.


그래서 레드얼럿 2는 연합군에 의해 세워진 소련 지도자가 다시 유럽과 미국을 위협하게 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이때 소련 지도자 옆에서 보좌하는 인물이 위 사진의 인물인 유리다. 레닌과 라스푸틴을 교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느낌을 주는데 지도자를 뒤에서 조종하고 앞서 플레이어는 주인공으로써 진행하다 보면 최종 흑막으로써 그를 맞이하게 된다. 유리는 미국의 사령부를 "마인드 컨트롤"이라는 기술로 병사들을 조종해 적군끼리 배신하게 하고 세뇌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 접했던 게임 속 유리는 충격과 신선함 그 자체였다. 그동안 악역이라 한다면 권모술수에 능하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행동반경에 제약이 있었고 물리적으로 싸움을 잘한다거나 하는 표면적인 입체감만을 느꼈었는데 유리라는 캐릭터는 그것을 완전히 깬 마치 권력 그 자체, 흑막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로 보였다. 머리 위에 쓰인 귀여운(?) 머리띠로 자신의 최면능력으로 사람들을 홀리고 자기의 수하로 부리는 능력은 어느 작품에서 보기 힘든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다른 작품들은 미치광이 과학자가 악역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뭔가 국가를 좌지우지하는 사이비 교주 그 자체여서 이런 인물은 어느 작품에서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게임이라고 해서 유치할 거 같다면 착각이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을 섭외해서 게임 곳곳에 영상을 삽입해서 자기가 그 현장에 있고 영화 속에서 수동적으로 보고만 있는 게 아닌 게임이란 작품에 참여하는 플레이어로서 이들의 열연에 함께 빨려 들어가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007의 팬으로서 총 25편의 무수한 스토리에서 내가 생각하는 악역에 가장 근접한 컷을 보여주었던 24편의 스펙터 프란츠 오버하우저다. 타란티노 감독의 장고의 슐츠, 바스터즈의 한스란다 대령으로 열연을 보여주었던 크리스토퍼 발츠가 연기했다. 스펙터의 스토리는 개봉 전에 대본 유출사건도 있어서 소란도 있었고 대중의 주목에 따라 평가도 의심을 받았고 개봉하고도 흥행과는 별개로 평면적인 작품으로 혹평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스펙터의 프란츠 오버하우저를 뽑은 이유는 저 장면 딱 저것 때문이다. 제임스본드가 다국적 범죄조직인 스펙터를 추적하던 도중 이탈리아에서 열린 스펙터의 회의 장면인데 그동안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조직의 수괴, 비밀조직의 두목을 이렇게 분위기 있고 압도적으로 보여준 장면이 없었기에 굉장히 인상 깊게 작품 속 몇 분 안 되는 그 장면들이 나머지 2시간 정도의 액션보다 인상 깊었다.


본드가 몰래 비밀의 전당 2층의 군중 속으로 잠입해 지켜본다. 난간 넘어 1층까지 열린 공간으로 스펙터 조직원들이 가득 차있고 일어서서 아래에서 진행하는 길고 거대한 탁자에 위치한 간부들의 회의를 지켜본다. 공간의 조명은 어둡고 발언자의 목소리만 동굴에서 울려 퍼지듯 한 이곳에서 열심히 자기들이 어떤 사업을 진행하고 현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때 앞에서 거대한 아귀 같은 문이 열리며 오버하우저와 그의 수행원들이 걸어오며 상석의 의자를 빼주며 오버하우저를 앉게 한다.


이때 어두운 공간의 특성도 특성이지만 상석 쪽의 인물들은 그림자에 가려 거의 보이지기 않는다. 오버하우저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옆에서 회의 마이크를 가져다주자 "내가 방해가 된 거 같군요. 계속하세요."라는 짧은 말 한마디를 던지는데 이때 모든 조직원과 회의 구성원들이 단 한 사람을 바라보며 거대한 전당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 장면도 훌륭한 분위기를 뽐냈다.


나중에 오버하우저는 얼굴을 드러내며 전형적인 "사실 내가 계획했던 거야"라는 평면적인 캐릭터로 소모가 되어 참으로 안타깝기도 했지만 어찌 됐든 다른 걸 다 떠나서 근래 봤던 영화들 중 오버하우저가 등장하는 첫 장면과 회의 장면은 정말 유령(SPECTRE)과 같은 조직의 분위기를 뽐내는 명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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