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54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오십 사 번째
감정적인 사람은 쉽게 그 감정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고 이성의 자리로 오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감정은 불과 같다는 글을 최근에 쓴 적이 있는데 대개 불을 떠올려 보면 큰 산을 한방에 덮어버리며 대형 화재사고와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드는 파괴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감정도 마찬가지로 분노와 슬픔, 억울함, 당황스러움 등도 내적인 동요에 커다란 충격으로 인식함으로 임팩트있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불과 같은 현상들은 앞뒤 안재고 커다란 장면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개개인이 어떤 충격적인 사건을 겪게 되면 그 장면만 떠올리고 이불킥을 하거나 욕을 내뱉는 경우가 흔한데 그 부분이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준에서 어긋나는 가장 결정적인 부분이었기에 충격의 폭도 더 크게 다가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판단의 주체는 어찌 되었든 내가 결정하는 것이고 그 기준이라는 것도 결국 나에 의해 마련되어 있었던 부분이 크다.
이성적으로 납득을 해보려 해도 감정은 오래간다. 나도 그렇다. 무언가 복수심이라던가 증오라는 감정도 그렇고 애틋함이나 부끄러움도 마찬가지로 여운이 오래간다. 마치 잔불이 남아 잿더미 위에서 계속 타닥타닥 타고 있는 듯해 보인다.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은 불의 영역은 감정의 영역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그런 현장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가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불은 부정적인 의미로만 뜻하는 것이 아님을 말씀드린다.
파괴적인 상징으로써의 불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은 이 또한 어떤 목적으로 사용하느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무인도에서 얼어 죽기 일보 직전인 사람이 불을 피워내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마침내 피워내는 것도 인간의 승리이듯, 그리고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는 희망의 불꽃이라는 비유가 있듯이 불도 불 나름이다. 그래서 우리의 부분 중 감정으로 상상해 보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크지만 우리가 개선할 부분에서도 불은 사람을 살리는 무인도의 불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죽하면 탐험가들은 물도 물이지만 파이어스틸이나 라이터는 필수라고 이야기하는 점도 불 만들어내기가 무진장 어렵다는 것을 방증한다. 손에 물집이 나도록 마른풀과 티끌을 나무 홈에 모으고 모아 열심히 비비며 마찰력으로 조그마한 불똥 하나 만들어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다만 계속 희망고문하듯 연기만 내다가 불똥 한번 튀어 마른 풀이나 티끌에 붙게 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불꽃이 삽시간에 마른풀에서 장작으로 붙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의 성장과 경험, 그리고 극복의 차원도 나는 이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불씨가 성장을 가시화하는 포인트인지 아니면 막 행동을 시작하게 된 부분인지, 무엇인지 각자 정의하는 바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실행적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불씨는 산불과 같은 "불"이다. 즉 크기만 다르지 똑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아무짝에도 쓸모없어 보이는 오늘의 행동이 별 동기나 극적인 포인트라고 여겨지지는 않지만 행동은 "행동"이다.
시작으로써 의미를 둔다면 뻔한 이야기일 테지만 그것보다 좀 더 복잡해 보인다. 왜냐하면 행동 그 자체의 기능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조그마한 실천을 한다는 것으로 목적달성을 위한 단 하나의 행동으로 측정 할수 없다는 느낌이 든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처럼 아무짝에 쓸모없어 보였던 행동이 나중에 볼 때 어떤 변화를 만들어 냈는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걷잡을 수 없는 유의미한 성과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볼 때 행동은 불과도 같다.
여기서 또한 행동은 어떤 선악의 개념으로 가치판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행동이든 정말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행동이든 간에 그것이 곧 모든 것을 집어삼킬 하나의 불씨가 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볼 때 현재 하는 일이 부담이 된다면 최대한 부담을 낮추고 하기 쉽게 만들어 내는 것이 어쩌면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희망의 불씨라고 상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