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일기 벽돌시리즈 256
성장일기 벽돌시리즈 이백오십 육 번째
쟤 미쳤나 보다. 미친 X라는 단어가 때론 칭찬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초점 잃은 눈으로 무언가에 집중하는 사람을 보면 섬뜩하기까지 한다.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빙의된 듯 빠져버린 현상을 트랜스라고 부른다. 트랜스상태란 일종의 최면과 같아 의식이 일상에서 분리된듯한 독특한 현상이나 느낌을 경험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일에 집중하다가 그런 트랜스가 찾아오면 때로는 축복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미지나 영상으로 접하는 혹은 텍스트로 접하는 미친 사람 혹은 홀린 사람들은 평소 본인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흔한 클리셰로 온갖 것을 다하고 나서 정신을 차리면 이는 자기 자신이 한 것임을 부인한다. 그런 현상이 공포나 스릴러 영화에서 볼 뻔 한 장면이 아니다. 영화처럼 극적이지는 않지만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만한 상태며 심지어 외부 변수가 아닌 스스로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에 미쳐라"란 책 제목처럼 그렇게 미치기가 쉽지가 않다. 어떤 일부의 일에 미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제는 흔히 알려진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이란 개념이 곧 이런 상태를 뜻한다 볼 수 있다. 어느 정도 조건이 충족이 되어야만 몰입을 경험할 수 있다. 몰입을 하게 되면 시간에 대한 지각이 흐려지고 어느새 정신 차려보니 시간이 금세 가버린 경험을 하기까지 주어진 과제와 자기 능력에 대한 적정선을 찾아야만 가능하다.
생각해 보면 과제의 난이도도 그렇지만 애초에 과제를 어떻게 설정하고 소화할지를 과연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과제가 주어지면 언제까지 어떻게 할지는 생각을 하지만 과제 그 자체에 대한 정의를 안 했던 것 같단 생각이 뇌리에 스쳤다. 몰입에 빠지기 위해선 과제에 대한 분명한 정의가 필요하다. 그게 되어야만 난이도를 설정한다거나 어떻게 할지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고 그런 부분을 떠나서도 과제 자체를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으로 착각하든 정의하든 내 통제권에 들어왔다는 것이 중요하다.
과제에 대한 분명한 정체를 밝히는 것, 이것이 명확한 목적의식을 상기하거나 설정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것을 왜 하는지에 대한 이유보단 방금 전에 이야기했던 모든 부분을 포함해야만 과제에 대한 몰입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불확실함을 두려워하고 싫어하기 때문에 약간의 빈틈이라도 보인다면 가뜩이나 불안정한 동기에 물이 새는 것과 같다.
한쪽 추를 맞췄으니 이제 "나 자신"이라는 반대쪽 추를 맞춰야 한다. 크게 과제와 나, 이 두 가지 몰입 조건이 필요조건인데 여기서 "나 자신"은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나의 능력에 관한 것이다. 막상 칙센트미하이의 몰입을 읽어보면 뭔가 뻔해 보이는 개념을 이론으로 설명해 놓았는데 적절한 과제와 적절한 능력이 맞춰져야만 이 몰입을 느낀다라는 설명이 다른 사례들과 함께 이야기를 해주지만 여전히 난감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건 내가 찾아낼 수밖에 없다. 객관식 시험 점수처럼 명확히 누군가 당신의 능력에 대해 말해주질 않으며 그리고 모든 과제에 따른 당신의 능력을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각자 처한 입장에서 맞이한 특정 과제에 대한 본인의 능력을 알아내야만 가능한 일이다. 결국 시행착오를 통해서 하다가 알아내는 수밖에 없는데 시행착오로 알아보려다 어쩌다가 몰입을 몰입으로 여기지 않고 시간을 보낸 경우도 많을 수도 있음을 본다면 누구나 몰입할 수 있다.